‘노회찬의 죽음’ 이후 한국 정치, 어떻게 바꿀까

[인터뷰]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에게 물은 한국정치 제도개선안
“정치자금법, 강자를 더 강하게 만드는 제도”, “2016년 선거법 개악에 참여한 민주당, 이번에는 개혁에 참여하라”

2018-08-06 18:49       정민경 기자 mink@mediatoday.co.kr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7월23일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현행 정치자금법의 여러 가지 제한이 그를 옥죄였고, 법을 개선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치자금법 외에도 소수정당에 불리한 선거법 개혁을 위한 목소리도 나온다. 미디어오늘은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의당 싱크탱크 ‘정의정책연구소’ 이사장)를 만나 노 의원의 죽음 이후 정치권에서 필요한 변화를 짚어봤다. 인터뷰는 8월3일 서울 강남 부근에서 1시간동안 진행됐다.

“노회찬 의원의 죽음이 단순히 ‘드루킹’에게 후원금을 받은 사건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정치자금법에서, 더 나아가서는 ‘삼성 X파일’ 문제와 연결된 일이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거대 정당의 현역의원이 가장 혜택을 받는 법이다. 노 의원의 경우 정치신인은 아니었지만 거대정당의 다선 의원도 아니었기에 정치자금을 조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노 의원은 유서에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경제적공진화모임)로부터 모두 4000만 원을 받았다. (…)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 절차를 밟아야 했다”고 썼다. 당시 그는 4·13 총선 예비후보였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그는 이미 2016년 2월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선거 후보자 신분으로 1억5000만 원을 모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치자금법 안에서도 후원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긴 했다. 그런데도 정치자금법이 문제인 이유는 뭘까.

“노 의원은 2013년 삼성 X파일 사건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근 3년이라는 세월을 실업자로 살았다. 개인적 빚이 있었고 생활비, 정치활동을 위한 돈이 필요했다. 예비후보로 등록하기 이전에도 돈이 필요한 기간이 길었다. 정치자금법은 현역의원이거나 예비후보가 아니면 정치자금 받을 수 없다. 의원직을 박탈당하고, 현역의원이 아니어서 돈을 받을 수 없었던 어려움은 정치자금법 때문이다.”

▲ 8월3일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손 교수는 ‘정치에는 돈이 들어간다’는 어쩌면 당연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와 관련해 손 교수는 자신이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를 준 일화를 소개했다. 몇 년 전 손 교수는 진보적 성향을 가진 교수들을 중심으로 ‘돈 없는 선거’를 하자는 서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손 교수의 생각에 당연히 서명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 저명한 원로 진보 정치학자 A씨가 서명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손 교수는 A씨에게 전화로서명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A씨는 “민주주의에는 돈이 들어간다”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금권정치는 심각한 문제지만 비현실적으로 정치인들을 ‘잠재적 전과자’로 만드는 것이 지금의 선거법이다. 필요한 돈은 받되, 자금의 투명성을 강조하고 어디에 지출했느냐에 엄격해야 한다. 후원회를 통해 자금을 받고, 정치신인이나 지망자들 역시 후원금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금액의 상한선 등에 대해서는 더 논의가 필요하다. 선거제도의 비대칭성, 즉 현역의원들만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는 구조적 조건들은 풀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정치자금을 썼느냐, 안 썼느냐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썼느냐다. 손 교수는 노 의원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낸 법안인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를 위한 국회법 개정안 발의’도 언급했다. 손 교수는 “직위에 따라서 아무런 제한 없이, 항목이 없이 무조건 주는 방식은 잘못 됐다”며 “특활비는 정치 자금법과는 결이 다르다. 정치인의 후원회는 풀어서 정치신인 등에 자금을 쓸 수 있게 만들어주고, 특활비는 규제를 강화하거나 없애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 7월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의원의 빈소를 찾은 시민들이 시민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사진= 노컷뉴스
소수당에 대놓고 불리한 현행법… “강자에게 더 힘을 주는 체제”

정치자금법 중 대놓고 소수정당에 불리한 조항도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국고보조금을 정당에 배분할 때 원내교섭단체 구성 여부를 우선으로 한다. 전체 보조금의 50%를 교섭단체에 우선 배분하고 나머지를 다른 당에 배분한다. 소수정당은 교섭단체의 조건(국회의원 20석)을 채우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번에도 노회찬 의원의 죽음 이후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은 국회의원 19명이 돼 교섭단체 자격을 상실했다.

손 교수는 정치자금법 개선을 넘어서 ‘교섭단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교섭단체에게 기금 반을 먼저 주고 나머지를 나눠주는 건 ‘이중특혜’다. 영국 등은 ‘교섭단체’가 없다. 한국도 교섭단체를 없애야 한다. 교섭단체 제도는 강자에게 더 힘을 주는 체제다. 교섭단체는 돈 배분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회 운영을 거대 정당들이 독점하게 만든다. 결국 교섭단체를 없애는 방식으로 가야한다. 너무 어렵다면 현실적으로 기준을 낮춰야 한다고 본다.”

“2016년 선거법 개악에 참여한 민주당, 이번에는 개혁에 참여하라”

정치자금법과 함께 개선돼야할 또 다른 법은 선거법이다. 이번 6·13 선거에서 정의당은 서울시의원 선거에서 10%의 지지를 얻었지만 1석을 얻었다. 만약 6·13 지방선거에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면 서울시에 정의당 시의원이 10명이었을 것이다.

“미국식 선거를 받아들여서 그렇다. 미국은 비례대표가 없다. 아주 반민주적 선거제도다. 하다못해 2000년대 들어서 두 번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표를 더 많이 받은 후보가 졌다. 루쏘는 ‘현대 대의민주주의는 투표하는 날만 주인이 되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가 된다’고 말했지만 대의민주주의도 등급이 여럿인데 미국은 최악중 하나고 우리선거제도도 정치가 국민을 제대로 대의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손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법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5년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였던 문재인 당대표도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려 했으나 실패했기 때문이다.

“2015년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총선부터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고 했다.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도 이 제안을 받았으나 당시 새누리당이 적극 반대했다. (이후 문 대표는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결국 2016년 민주당은 오히려 비례대표를 축소하고, 지역구를 늘리는 방식의 개악에 합의했다. 이제는 문재인 대통령과 문희상 국회의장이 선거개혁에 긍정적이고 전향적인 태도를 가졌기 때문에 기대해보고 싶다.”

▲ 국회 본회의장 모습. 사진=민중의소리

선거법 개혁의 사정은 2016년과 달라졌다. 당시에는 새누리당이 적극 반대를 했지만 현재의 자유한국당은 새누리당과는 달리 현행 선거법에 피해를 입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은 서울시의원 선거에서 25.4%를 득표했는데 6석을 얻었다.

“자유한국당이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 같다. 전향적으로 선거법 개혁에 동의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반대로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이 제도를 통해 90%를 싹쓸이했다. 오히려 기득권이 돼서 선거법 제도에 반대하는 상황이 생길까봐 우려스럽다.”

특히 손 교수는 정치권에서 선거법 개혁을 한답시고 ‘중선거구제’를 들고 나오는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중선거구제는 아주 나쁜 선거제도다. 선거구가 커지게 되면, 돈이 많이 들어가고 정치신인의 진입장벽은 더 커진다. 계파갈등도 심해진다. 한 선거구에서 1명 뽑던 것이, 한 지역에서 3~4명을 뽑게 되니까 거대당 소속의 경우 주류 계파가 아니어도 당선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계파갈등이 심해진다. 아예 대선거구제로, 즉 순수비례대표를 가지 않을 바에는 중선거구제로 가는 것은 오히려 엉뚱한 방식으로 개혁하는 척을 하면서 개악을 하는 것이다. 굉장히 걱정된다.”

한국 정치권에서 정치자금법과 선거법 개혁 외에 필요한 또 다른 변화가 무엇인지도 물었다. 손 교수는 당장 ‘국가보안법 폐지’를 들었다.

“이제 ‘김정은 만세’를 부른다고 해서 대한민국 체제가 흔들리는 때는 아니지 않나. 과감하게 사상의 시장에서 걸러지도록 해야 한다. 통진당 해산사건도 시대착오적이었다. 아무리 틀려도 자유민주주의 핵심은 틀린 사상도 주장할 수 있는 걸 보장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폐지를 해서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의 ‘프리덤하우스’는 보수적 연구기관이지만 가장 오래 각 나라의 민주주의의 정도를 비교해온 기관이고, 우리나라 이 기준에서 아직 1.5등급이다.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 오명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