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보도간첩’이라니

[미디어오늘 1162호 사설]

2018-08-11 11:52       미디어오늘 media@mediatoday.co.kr

1955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난 김병진은 재일교포 3세다. 김병진은 1973년 간세이 가쿠인대학에 입학하면서 ‘재일한국학생동맹(한학동)’에 가입했다. 한학동은 박정희 유신체제를 반대했다. 그러나 북한과 연결된 간첩 질은 아니었다.

김병진은 1980년 연세대 국문과에 편입했고, 1982년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결혼도 하고 삼성종합연수원 일본어 강사로도 일했다. 김병진은 1983년 7월9일 토요일 오후 갓 태어난 아들과 아내를 보려고 바쁘게 귀가했다. 집 앞 골목길에 포니 승용차 한 대가 서 있었다. 보안사 수사관 이○○이 그를 연행했다. 이렇게 김병진은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납치됐다.

김병진을 맡은 김○○ 보안사 대공처 수사2계장은 학군단 출신으로 육사 출신에 밀려 진급에 피가 말랐다. 2계는 주로 조작하기 쉬운 재일교포 유학생을 능숙하게 요리했다. 고려대 이종수, 연세대 김태홍 등이 먹이가 됐다.

▲ 송영무 국방부장관이 기무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행된 김병진은 나흘째 되던 날 무너졌다. 고문 앞에서 그는 북한 공작원이 됐다. 그래도 북한 갔다온 물증이 없자 보안사는 그를 강제로 특별 채용했고, 1984~1986년 약 2년 동안 재일교포를 간첩으로 조작하는 일에 투입시켜 통역과 번역을 맡겼다.

김병진은 보안사를 퇴직한 바로 다음 날인 1986년 2월1일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일본으로 탈출했다. 오사카 공항에 도착한 김병진은 제일 먼저 원고지를 샀다. 이렇게 그는 2년 동안 보안사의 만행을 기록해 출판했다. 수사관 실명을 실은 이 책은 간첩누명을 쓴 수많은 재일교포의 결백을 증명했고, 얼마전엔 양천구청장의 고문전력을 고발하는 성과도 올렸다.

김병진은 1983년 보안사가 발표한 서성수 등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 선전전에도 활용됐다. 보안사는 재일교포 서성수를 잡아 간첩으로 만들었다. 서씨 수사가 끝나자 보안사는 KBS와 MBC에 있는 보안사 파견직원을 통해 선전전을 준비했다. 방송국 실무진들에겐 기생 파티를 벌여주고 거액의 격려금을 내렸다. 사기극의 사전교섭은 언론계에 서식하는 타락한 기자와 프로듀서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보안사 과장은 김병진에게 “당신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하고 목소리도 바꿀거야”라고 말했다.

김병진은 서빙고 건물 뒷마당으로 끌려나와 보도 기자와 카메라맨 5~6명 앞에 섰다. KBS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리허설이 시작됐다. 보안사 과장과 계장 등 2계 수사관들이 둘러섰다. 김병진은 외운 대사를 연기하듯 읽었다.

▲ 병상에 누운 김병진씨. 이매진출판사 제공

상식이 있다면 기자들도 이상한 기미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KBS 기자는 수사관에게 “세세한 부분은 조금 틀려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보도 간첩’이니까요”라고 말했다. 기자라는 인간이 ‘어차피 보도 간첩’이라고 말하다니.

이렇게 김병진은 1983년 10월19일 오전 10시 ‘KBS 주부뉴스’에 ‘서성수 등 3개망의 간첩단 일망타진’이란 이름으로 얼굴까지 드러났다. KBS는 김씨의 아들 얼굴까지 공개했다. 갓 백일 지난 김씨 아들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찍은 사진이었다. 과장은 김병진에게 “국민이 실감 나게 받아들이게 보도하라고 지시가 내려왔어. 그래서 너의 얼굴을 냈어.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네”라고 말했다.

TV에 아이 얼굴까지 나오자 김씨의 아내는 자리에 누웠다. 동네 주민들은 간첩이라는 김씨가 보안사로 출퇴근하는 걸 보고 방송이 거짓이라고 여겼다.

김병진을 고문했던 계장은 그 해 중령으로 승진했고, 과장도 대령으로 승진했다. 그 보안사가 지금의 기무사다. ‘보도 간첩’을 만들던 기자들은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