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테러 30년’ 여전한 군사문화가 양승태 파동 불러

[서평] <펜의 자리, 칼의 자리>(오홍근, 메디치미디어, 2018.8.6)
피해자 오홍근 중앙경제 사회부장 “잔존 ‘문사문화’가 양승태 대란 낳아”

2018-08-12 12:19       이정호 기자 leejh67@mediatoday.co.kr

[서평] <펜의 자리, 칼의 자리>(오홍근, 메디치미디어, 2018.8.6)
피해자 오홍근 중앙경제 사회부장 “잔존 ‘문사문화’가 양승태 대란 낳아”

“군사문화는 승리·능률·일사불란 등을 추구하는 문화로 알려져 있다. 기본적으로 졸권(졸병의 기본권)은 없”다. “양승태 대법원이 ‘졸권’이나 ‘인권 최후의 보루’를 지켜 줄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은 바로 찌든 군사문화의 발로로 보인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정확하게 ‘박근혜 사령관의 법무 참모’를 자임했는지도 모른다.”

지난 6월7일 칼럼니스트 오홍근씨(76)가 프레시안에 쓴 ‘그(양승태)는 박근혜 사령관의 법무 참모였나’라는 제목의 칼럼 일부다. 여든을 바라보는 노인은 정확히 30년전 칼럼 하나 때문에 칼로 허벅지가 34cm나 찢는 테러를 당했다. 30년 전 오씨는 중앙일보 자매지 중앙경제신문 사회부장이었다. 오씨는 <월간중앙> 88년 8월호에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이 칼럼에 불만을 품은 정보사령부 현역 군인들이 1988년 8월6일 출근길의 오씨에게 다가가 테러를 자행했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서 자행된 테러는 우발적인 것도 아니었다. 장성 둘을 포함한 현역군인 10여 명이 시나리오를 짜고 사전모의한 테러였다.

▲ 1988년 8월6일 출근길에 현역 군인들에게 테러 당해 병원에 입원한 당시 중앙경제신문 오홍근 사회부장

오씨는 30년이 지난 오늘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우리 사회 깊숙이 박혀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는 ‘군사문화’의 폐해를 지적했다. 오씨가 지난 6월7일 쓴 프레시안 칼럼의 작은 제목은 ‘양승태 대법원의 군사문화’였다. 오씨의 말대로 강산이 세 번 바뀌었지만 ‘군사문화’는 아직도 건재하다.

30년전 오씨를 테러한 정보사령부와 사촌 격인 국군 기무사령부가 2016년 활활 타오르는 광화문 촛불 뒤에 숨어 군화발로 촛불을 짓밟는 계엄령 선포를 검토한 문건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세월호 참사 초기에도 인양 반대 여론을 꾸며내고 희생자를 수장시키자는 야만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역사의 반복성에 새삼 놀란다.

최근 오씨와 오씨의 동료·후배들이 ‘88 언론테러 기억모임’을 정식으로 구성하고, 그의 ‘테러 30년’을 기념하는 책을 냈다. 그래서 <펜의 자리, 칼의 자리>란 책은 지난 6일 출판됐다. 오씨가 테러 당한 1988년 8월6일을 기억하자는 뜻에서. 출판사 ‘메디치미디어’는 30년 전 중앙경제신문 사회부 기자로 오씨의 테러사건을 직접 취재해 보도했던 후배기자 김현종씨가 이끌고 있다.

한국 현대사는 병영 안에 머물러 있어도 시원찮을 군사문화가 자주 탈영했다. 오씨는 최근 열린 한 좌담회에서 군사문화가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려 적폐가 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집단 세 곳을 들었다. 오씨는 “보수정당과 정치검찰도 있지만 언론도 빼놓을 수 없다”며 “그들이 군사문화하고 어깨동무하고, 정치권력하고 야합하고 여기까지 끌고 오면서 단물 빨아먹었다”고 했다.

30년 전 중앙일보가 삼성그룹의 공식 계열사였으니, 오씨가 일하던 중앙경제신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씨는 30년 전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 달쯤 병원에 있다가 퇴원을 하니까 회사 분위기가 이상하더라고요. 삼성 비서실에서 오홍근 때문에 삼성 망하게 생겼다는 이야기가 들려요. 그때가 한창 방산 수주할 때에요.” 한국형 전투기 사업이랍시고 F-16을 도입하던 시기였다.

오씨의 회상은 다시 이어진다. 당시 “중앙일보 사장이 수도권 장군들을 5~6명씩 그룹핑해서 매일 저녁 냉면 그릇에다 맥주 소주 붓고 술대접을 하면서 돕니다. ‘저희가 가해잡니다. 이해해 주세요’ 이랬다는 거죠.” “그분 지금은 돌아가셨습니다만, 신문사 사장으로 얼마나 속이 불편했겠어요. 수행 직원이 만취한 이 양반 어깨를 끼고 차를 태워요. 그러면 타면서 ‘야,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하면서 운다는 거지. 그 얘길 듣고 어떻게나 가슴이 아프던지.”

여기서 잠시 오씨가 쓴 30년 전 <월간중앙> 8월호 칼럼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를 살펴보자. 얼마나 대단했길래 군인들이 테러까지 감행했을까. 칼럼은 88년 노태우 정부가 여소야대 국면에서 정기승 대법원장을 임명했는데 국회에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부결(1988년 7월2일)돼 경색된 정국을 진단하면서 시작한다.

오씨는 “문제의 핵심은 6공화국의 집권층이 국민과 사법부와 입법부를 보는 시각이 잘못돼 있다는데 있다. 그 같은 시각이 바로 군사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썼다. 군인들이 발끈할 만하다.

오씨의 30년전 칼럼은 집권층의 군사문화에 저항하는 학생운동도 “폭력은 안 된다”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대학 총장실을 부순 서울대생들의 행동을 보고 “개탄스러운 노릇”이라고 비난했다. “학생 폭력은 나쁘다. 그러나 학교와 교수들에게도 문제가 있었다”는 식의 양비론에 그쳤다. 오씨는 학생들의 이런 과격한 행동도 ‘군사문화’에서 출발한다고 지적했다.

지금 다시 읽어보면 주류 언론이 상식적인 수준에서 쓸 만한 내용의 칼럼이었는데도, 오씨의 칼럼을 본 군인들은 “사회의 모든 악행과 부조리가 군사문화에 기인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군을 일방으로 매도하고 민·군을 이간시킨다”며 그에게 도심 한복판에서 테러를 자행했다.

가해자들은 어떻게 됐을까. 테러범들은 군사법원에서 “군에 대한 충정”이었다는 판단을 받고 선고유예로 풀려났다. 피해자인 오씨만 오랫동안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이러니 군사문화가 아직도 그 끈질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