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이사 또다시 ‘정치권 나눠먹기’

MBC 불공정보도·부당노동행위 관련자들 방문진 이사 낙점 논란
여야 6대3 ‘나눠먹기’ 관행 여전…KBS·EBS 이사 선임까지 우려

2018-08-20 17:44       노지민 기자 jmnoh@mediatoday.co.kr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신임 이사 명단이 공개된 지난 10일 언론계는 실망과 반발로 들끓었다. 지난 정부 MBC 불공정 보도와 부당노동행위 책임자로 지목된 인사들이 이사로 선임된 가운데, 이들이 선임된 배경에 자유한국당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여야 추천 비율 6대3이라는 관행도 벗어나지 못했다. 언론계 안팎에선 우려했던 최악의 선임이라는 비판과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이효성·방통위)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방통위는 10일 비공개 전체회의에서 방문진 후보자 24명 중 9명을 11기 방문진 이사로 선임했다. 신임 방문진 이사들은 강재원 동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김경환 현 이사, 김도인 전 MBC 편성제작본부장, 김상균 현 이사장, 문효은 전 다음 부사장, 신인수 법무법인 여는 변호사, 유기철 현 이사, 최기화 전 MBC 기획본부장, 최윤수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 등 9명(가나다 순)이다. 감사로는 김형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가 선임됐다.

11기 방문진 이사·감사 임기는 지난 13일부터 2021년 8월12일까지 3년이다. 이사장은 16일 첫 이사회에서 이사들 호선으로 결정되나, 연장자를 우대하는 관행에 비춰볼 때 김상균 이사장이 연임할 가능성이 높다.

최기화·김도인 전 본부장은 MBC 구성원들이 가장 우려했던 인사들이다. 이들은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이른바 ‘김재철·김장겸 체제’ MBC 경영진으로서 MBC 신뢰도 하락, 부당노동행위를 주도했다고 비판받아왔다. 10기 방문진은 그 책임을 물어 지난 1월 최 전 본부장의 이사직을 박탈했고, 김 전 본부장은 자진 사퇴했다. 과거 MBC 경영진으로서 부적격이라 평가 받았던 이들이 MBC를 관리·감독하는 방문진 이사로 돌아온 셈이다.

▲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방송문화진흥회. 사진=김도연 기자

최기화 전 본부장은 지난 2015년 자사 보도를 비판하는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본부장 김연국·MBC본부) 민주방송실천위원회 보고서를 찢어 쓰레기통에 버린 일 등과 관련해 형사 재판을 받고 있다. MBC본부는 10일 “이 재판은 법원이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시작됐다. 법원이 검찰에 공소를 직접 명령한 만큼 유죄 선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최 전 본부장은 MBC를 취재하는 기자에게 욕설을 한 일,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장충기 문자’ 등으로도 논란이 됐다.

김도인 전 본부장은 지난 2012년 김재철 전 MBC 사장 체제에서 라디오국장·편성국장을 거쳐 편성제작본부장에 오른 인물이다. MBC PD협회는 10일 성명을 내고 “김도인 전 본부장은 제작 일선에서 많은 논란을 빚어온 인물이다. 시사프로그램 제작진에게 따로 연락해 아이템과 인터뷰이를 강요하는 등 부당 지시를 일삼았고 반발하는 PD에겐 인사 불이익을 내리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사 개인의 자질 논란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들 이사 선임이 ‘자유한국당 오더(order)’에 따른 것이라는 의혹이다. MBC본부는 “자유한국당 추천 김석진 방통위원은 방통위 회의 전날인 9일까지도 여러 차례 국회에 들어가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로부터 이른바 ‘오더’를 받았다”며 “결국 형식만 공모와 검증이었다. 사실상 정치권이 시키는 대로 한 것이다. 애초에 국민 의견을 듣는 절차는 왜 밟은 것인가”라고 방통위를 겨냥했다.

방통위는 앞서 방문진 이사 선임 절차를 개선하겠다며 이사 후보자 전원 이력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시민 의견을 수렴을 공언했다. 누가 이사 후보로 지원했는지조차 공개되지 않았던 과거에 비해 진일보했지만, 추천 단체를 명시하지 않은 ‘공개용 이력’을 게시하고 의견을 남기려면 복잡한 실명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하는 점 등이 한계로 지적됐다.

법적 근거 없는 여야 추천 6대3 관행은 결국 이번에도 해소되지 못했다. 최 전 본부장과 김 전 본부장이 자유한국당, 강재원 교수가 바른미래당 추천으로 알려진 가운데, 연임이 결정된 기존 방문진 이사 3명(김상균 이사장, 김경환 이사, 유기철 이사)과 신인수 변호사, 최윤수 변호사, 문효은 전 다음 부사장 등 6명은 여권 추천으로 분류되고 있다. 방통위가 이번에도 ‘정치권 거수기’ 오명을 벗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방통위는 KBS·EBS 등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줄줄이 앞두고 있다. KBS 신임 이사진은 이달 중 선임이 예정돼 있고, EBS의 경우 16일 이사 후보자 공모를 마감한 뒤 후보자 정보 공개 및 시민 의견 수렴을 진행한다. 이들 방송사 이사 선임 역시 방문진 사례에서 드러난 정치권 나눠먹기 관행이 유지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언론·시민단체들은 방통위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며 방통위원 총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방문진 이사 명단이 나온 직후 성명을 내고 “(방통위는) 적폐 인사들에게 다시 한 번 MBC를 망칠 칼자루를 쥐어준 것으로도 모자라 지역성과 성평등, 다양성 구현 또한 실패했다”며 “법을 지키지 못한 방통위원들은 당장 방문진 이사 선임을 철회하고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정치권의 후견주의에서 자유로운 새로운 방통위가 국민 참여를 보장하는 가운데 투명하고 공정한 원칙과 절차에 입각해 공영방송 이사를 선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 241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방송독립시민행동 또한 같은 날 성명을 내고 “방통위는 방송 정상화, 적폐 청산이라는 시대정신을 외면하고 정치권과 결탁해 위법한 관행으로 방송·정책을 후퇴시키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한 뒤 “현 방통위원들에게 방문진 뿐만 아니라 곧 선임을 앞둔 KBS와 공모 중인 EBS 이사 선임도 맡겨선 안 된다. 정치권 개입을 원천 차단하고 국민 참여를 보장하는 가운데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과정을 다시 밟아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