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연속근무 가능한 드라마 제작 계약서

파견법 시행 20년 맞이 ‘꿀잠’ 개관 1주년 특별토론회

2018-08-17 13:17       이정호 기자 leejh67@mediatoday.co.kr

파견법과 함께 한 현주씨의 19년 “지금은 3~14일 호출형 파견”

이현주씨(38)는 1999년 10월 고등학교 3학년때 현장실습으로 작은 회사에 들어가 2년을 다녔다. 회사 사정이 나빠져 퇴사하고 2003년 파견업체를 통해 기륭전자에 들어갔다. 2005년 노조가 만들어지자 해고(계약해지)돼 복직투쟁을 시작했다. 2008년 복직을 요구하며 한 달 넘게 단식도 했다.

생계 때문에 2009년부터 다시 직장을 구했다. 서울 구로공단 근처에서 파견 노동자로 6~12개월 정도 전자회사와 핸드폰 조립업체 4곳을 옮겨 다닌 끝에 2013년 5월 다시 기륭전자로 복직했다. 행복도 잠시, 그해 12월 회사 대표가 야반도주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됐다. 다시 2년을 싸웠지만 또다시 생계가 발목을 잡았다.

▲ 조혜승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부지부장이 드라마제막 현장의 노동실태를 소개하고 있다. 맨 왼쪽은 기륭전자 출신의 이현주씨     사진=이정호 기자 leejh67@

현주씨는 2016년 8월 핸드폰 케이스 제조업체로 들어갔다. 그러나 6개월 뒤 사장은 “물량이 없다”며 “출근하지 말라”고 했다. 현주씨는 “핸드폰 케이스는 보통 8월부터 1월까지 물량이 많아 그때만 고용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했다. 핸드폰 조립업체 3개월, 안경업체 2개월, 화장품 제조업체 4개월을 다녔지만 모두 자발적 퇴사가 아니었다. 물량이 없다며 출근하지 말라는 해고 통보는 파견노동자 현주씨가 업체 사장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현주씨는 지금은 3~14일짜리 호출형 알바로 생계를 이어간다. 현주씨는 “주휴수당 안 줄려고 나흘만 일 시키고 자르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김대중 정부 때 만든 파견법은 1998년 7월1일부터 시행됐다. 1999년부터 노동시장에 나온 열아홉 청년은 마흔을 바라보는 장년이 되도록 20년 가까이 파견법과 함께 지냈다. 현주씨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노동시장이 팍팍해지는 것같다”고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쉼터 ‘꿀잠’은 16일 밤 서울 영등포구 꿀잠 회의실에서 ‘파견법 20년이 가져온 변화’라는 주제로 개관 1주년 특별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5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와 김태욱 금속노조 법률원장(변호사)가 발표자로 나섰다.

고용관계 부정하고 24시간 연속근무 가능한 계약서 난무

현주씨 다음으론 지난달 4일 노조를 만든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조혜승 부지부장이 나와 방송계 비정규직들의 노동실태를 증언했다.

조혜승 부지부장은 지상파 3사와 tvN, JTBC, OCN 등 6개 채널에서 방영되는 월화, 수목, 주말, 일일 드라마 32개의 제작현장이 무법천지라고 했다. 100여 명 가까이 협업해서 일하는 드라마 촬영장에서 정규직이라곤 지상파 방송사의 연출자(감독)과 촬영감독 1~2명 뿐이고 나머지 모두가 비정규직이라고 했다. 대부분 외주제작사와 턴키계약을 맺고 일하고 있다.

조혜승 부지부장은 한 독립PD가 지상파방송사 보도국과 맺은 계약서 일부를 소개했다. 여기엔 “본 계약은 갑과 을간의 업무위임계약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을은 갑에 대해 고용관계를 주장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방송사가 일을 시키는데 방송사에 노동자임을 요구하면 안 된다는 계약을 맺는 이상한 구조다.

드라마 제작 스태프의 계약서엔 하루 24시간 언제든 일 시킬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이 계약서에서 ‘근무시간’은 ‘24시간 기준’이라고 명시돼 있다. 여기에 단서 조항이 있는데 “야외촬영 마지막 날 촬영 종료시간 기준 익일 02:00 이후 종료시 1일 비용의 50%를 지급한다”고 돼 있다. 조혜승 부지부장은 “나흘 야외촬영하는 스케줄일 경우 3일 동안은 새벽에서 시작해 다음날 새벽까지 24시간 부려 먹는데, 마지막 날 마칠 때는 새벽 2시 넘겨서 끝나면 다른 촬영에 못 가기 때문에 그 피해를 일부 보전해준다는 뜻”이라고 했다.

▲ 한 드라마제막스태프가 맺은 불공정 계약서

다음으론 흑자인데도 정리해고 하고 생산공장을 모두 해외로 옮긴 기타 제조업체 콜텍 정리해고 노동자 김경봉씨가 11년 복직투쟁을 설명했다. 파견업체의 천국으로 불리는 반월시화공단에서 노동자 권리찾기모임을 운영하는 이미숙씨도 이야기를 이어갔다.

▲ 경향신문 기자의 요청에 따라 토론회를 마친 꿀잠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포즈를 취했다. 사진=이정호 기자 leejh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