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KBS 성폭력 사건 증거은닉”

2014년 ‘KBS 카메라기자로부터 성폭력’ 호소 이후 무고죄 기소된 부현정씨 기자회견… “검찰, 성폭력 가해자 ‘진술 번복’ 담긴 피의자신문조서 증거 제출 안해”

2018-08-17 19:22       노지민 기자 jmnoh@mediatoday.co.kr

KBS 사내 성폭력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가해 지목인에게 불리할 수 있는 증거를 은닉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국미투생존자연대는 17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014년 KBS 사내 성폭력 피해 호소인을 무고죄로 기소한 검찰이 가해 지목인의 진술 번복이 담긴 경찰 피의자신문조서(피신조서)를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기자회견에는 KBS 파견직 시절 강제 입맞춤 등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부현정씨와 부씨 변호인단, 여성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부씨는 지난 2014년 5월 직장 내 상급자였던 최아무개 카메라기자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며 최씨를 강제추행죄로 고소했다. 이후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 받은 검찰은 이듬해 최씨에 대해 혐의 없음 처분을 했고, 최씨는 2016년 부씨를 무고죄로 고소했다. 검찰 기소로 재판에 넘겨진 무고 건은 대법원 계류 중이다. [관련기사 : “파견직 부씨가 성추행 사실 알렸을 때, KBS는 뭘 했나”]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용원 변호사는 “심리 도중 증거를 꾸준히 수집하면서 부씨 무죄 뿐 아니라 가해자 강제추행의 명확한 증거로 볼 수 있는 중요한 증거가 검찰에서 은닉됐고 법원에 제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보공개청구를 했으나 부당한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대법원에 상응하는 대검찰청에 은닉된 증거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게 됐다”고 밝혔다.

이날 변호인단은 지난 2014년 경찰이 작성한 최씨 피의자신문조서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최 기자 진술은 “걸었을 때 부현정씨가 저한테 안겼고 저도 깊이 포옹을 했습니다. 입을 맞춘 것은 아닙니다”(2014년 6월11일)→“저는 키스를 안 했기 때문에...”(2014년 6월27일)→“부현정씨가 저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와서 입을 맞췄고요”(2014년 10월10일) 순으로 바뀌었다.

▲ 17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지난 2014년 KBS 파견직 시절 최아무개 카메라기자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부현정씨와 변호인단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17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지난 2014년 KBS 파견직 시절 최아무개 카메라기자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부현정씨와 변호인단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발언하고 있는 김용원 변호사(가운데)와 부현정씨(우측). 사진=노지민 기자

변호인단은 검찰 수사 과정도 부당하게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가해자 진술이 180도 달라졌는데 한 마디도 추궁 조사를 하지 않았다. 피해자인 부씨에게는 왜 두 사람이 술을 마셨느냐고 추궁하는 등 가해자 진술을 사실인 것처럼 전제했다”고 말했다.

김용원 변호사는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 대해서만 시행했다. 원래 거짓말 탐지기는 가해자가 거짓말을 할 때 이를 증명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며 “조사 결과가 ‘판단 불능’으로 나타나 피해자가 거짓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까지 드러났는데 결과적으로 피해자를 무고로 기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건은 판단에 어려움이 있는 사건이 아니다. (대검찰청은) 지금이라도 왜 부당수사가 있었는지 책임자를 처벌하고 지금이라도 가해자를 구속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씨는 지난해 8월 1심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 판결, 지난 1월 2심에서 항소 기각 판결을 받았다. 변호인단은 “국내 상고심에서 가장 큰 파기환송 사유가 ‘채증법칙 위반’이다. 믿지 말아야 할 증거를 믿고 믿어야 할 증거를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피해자 진술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조사가 없었다는 점에서 ‘심리 미진’ 사유도 있다”며 대법원 파기환송 사유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항소심 변호를 맡았던 이은의 변호사는 “2심에서 증거조사 요청이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날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조용히 눈물을 흘리던 부씨는 “저는 가해자가 처벌받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기자회견을 마친 변호인단은 △검찰은 은닉한 증거를 즉각 대법원 담당 재판부에 제출하고 △부당수사 과정을 수사해 책임자를 처벌하고 가해자를 강제추행죄로 구속 기소하는 한편 △검사는 공익 대표자이므로 증거 미제출은 직무유기죄 해당한다는 주장을 담은 항의서한을 대검찰청에 제출했다.

한편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최 기자는 비슷한 시기 또 다른 파견직을 대상으로 한 직장내 성희롱 가해 사실이 인정된 바 있다. 이에 피해자가 KBS에 최 기자 징계를 요구했으나 KBS는 징계시효인 2년이 지났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