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위기론’ 뒤 미소 짓는 자, 누구?

언론 ‘기금 고갈론’ 보도는 “공포 마케팅”… ‘노후 빈곤 해소’ 맞춰 논의 대폭 열어야

2018-08-21 22:00       손가영 기자 ya@mediatoday.co.kr

연금학자들은 국민연금 제4차 재정추계 발표 전후로 가열된 ‘국민연금 고갈 위기론’ 보도에 “국민연금의 목적과 개념을 제대로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는 지난 17일 장기재정 전망 결과 ‘국민연금 고갈 시점이 2060년에서 2057년으로 3년 앞당겨졌다’며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안을 내놓았다. 발표는 이후 일제히 ‘2057년 기금 고갈’이란 제목으로 보도되면서 국민연금 고갈 위기는 기정사실처럼 알려졌다.

일부 언론은 발표 전부터 기금 고갈 위기를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지난 14일 ‘국민연금 국내 주식투자로 올해 1조 5572억 까먹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지난 20년 간 국민연금 연평균 누적 수익률은 5.41%다. 다른 나라 연기금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성적이다. 600조원이 넘는 연기금 모두를 주식에만 투자하는 것도 아니다. 중앙일보는 이 가운데 올해 1~5월 간 특정 주식투자 수익률이 떨어진 것만 떼어 내 강조했다.

▲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이 지난 17일 대한상공회의소 앞에서 국민연금 급여인상 논의와 지급보장 명문화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우리나라처럼 적립식 연금제도에서는 먼 미래의 언젠가는 기금 소진 시점이 도래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고갈 위기론은 공포 마케팅이다.  그러나 국민연금 수익비는 적게는 1.2부터 많게는 7.8까지 나온다. 가입자가 연금 설계기간 40년 동안 100만원의 보험료를 냈다면 65세 이후에 받는 연금수령액은 적어도 120만원에서 많게는 780만원까지라는 뜻이다. 민간연금보험의 수익비가 잘해야 0.9를 넘지 못하는데 반해 공적 연금인 국민연금은 훨씬 좋은 미래투자다. 여기에 국민연금은 저소득층 가입자의 수익비가 고소득층 가입자의 수익비보다 높게 설계돼 있어 그 자체로도 소득재분배 효과를 안고 있다. 

언론이 내세운 ‘미래세대 착취’ 프레임도 비판 받았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국민연금은 ‘세대 간 연대’지 ‘미래세대 약탈’이 아니”라고 했다. 정부는 1988년 국민연금 도입 당시 미래 가입자가 받게 될 연금액을 상당 부분 적립하는 ‘부분적립방식’을 택했다. 1988~2017년 간 조성된 기금 785조원 중 연금지급액 164조원을 제외하면 622조원 기금이 적립된 데다 300조원이 운용수익금이다.

김 교수는 “애초 ‘완전부과방식’을 도입했다면 적립금 785조원이나 수익금 300조원은 발생하지 않고 그만큼 미래세대 부담이 늘어났을 것이다. 현행 제도는 이미 후세대 부담을 낮추기 위한 장치가 마련된 제도”라고 지적했다. 또한 김 교수는 “미래세대 불안감을 고려한다면 국민연금은 공공임대주택·국공립어린이집 대량 확대 등 이들에게 이익을 주는 연기금의 공공투자를 해야 한다”며 “2050~2070년 젊은 세대에 부담이 너무 쏠린다면 그때 가서 30~50년 단위 채권을 발행하는 등 사회적 합의를 통해 얼마든지 분산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보도가 ‘기금 고갈’에 쏠리면서 정작 국민연금의 본래 목적은 가려졌다. 국민연금은 노후소득보장제도다. 노후소득을 개인에게만 맡길 경우 노후빈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헌법에 명시한 OECD 많은 국가들이 연금제도를 택하고 있다. 한국은 2010년 기준 GDP대비 연금지출 비중이 0.9%로, 일본 9.7%, 유럽연합 27개국 평균 12.6%에 못 미친다.

한국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2014년 기준 48.8%로 OECD 37개국 중 가장 높다. 2순위 호주의 25.7%와도 차이가 크다. 국민연금 명목상 소득대체율은 40%이지만 평균 가입기간이 24년인 점을 고려하면 실질 소득대체율은 23~24% 수준에 불과하다. 평균소득을 번 24년 가입자가 받을 한 달치 연금은 52만원, 1인 가구 최소 노후생활비 104만원에 한참 못 미친다. 김 교수는 “더 중요한 과제는 소득대체율을 50%로 끌어올리는 것”이라 말했다. 소득대체율 50%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학계에선 고갈 위기 심각성을 두고 평가가 다양하다. 김 교수는 “기금 중 289조원(47%)이 국내 채권에, 131조원(21%)이 국내 주식에 투자된 상황”이라며 재정추계위가 상정한 기금 고갈 가능성을 낮게 봤다. 반면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다수 기고문에서 “애초 급여를 충족하기 위해 필요한 보험료 16~18%의 절반(9%) 가량만 걷는 현행 구조에다가 인구·경제 변수까지 악화했다”며 “현 세대의 각성이 절박한 때”라고 진단했다. 보험률 인상쪽에 무게를 실었다.

▲ 민주노총이 21일 국민연금의 쟁점과 개혁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민주노총

국민연금 본 목적에 맞춰 논의 방향을 대폭 넓혀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