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기술자들

[미디어오늘 1164호 사설]

2018-08-26 05:10       미디어오늘 media@mediatoday.co.kr

1948년 제헌헌법 초안을 작성했던 유진오 박사는 독일 바이마르 헌법의 영향을 받아들였다고들 한다. 우리 헌법 안에 담긴 복지국가 담론도 여기서 출발했다. 그러나 지난해 돌아가신 법학자 한상범 교수는 우리의 제헌 헌법은 일본 메이지헌법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아 만들어졌다고 반론했다.

계엄과 긴급명령, 긴급재정명령, 긴급재정처분 등이 대표적인 메이지헌법의 잔재다. 특히 계엄제도는 메이지헌법을 그대로 따왔다. 그만큼 쿠데타 세력에 악용될 여지를 너무도 많이 제공했다. 유진오는 일본제국 파산이 군벌의 횡포와 문관 지배의 실패로 말미암았음을 간과했다.

▲ 1955년 고려대학교 총장 시절 유진오. 사진=국가기록원 홈페이지
예산제도도 메이지헌법을 그대로 답습했다. 우리 헌법에서 재정민주주의나 재정 입헌주의 규정은 너무도 취약하다. 이런 헌법은 1850년 프로이센 헌법이나 1871년 독일제국의 헌법 정도밖에 없다. 그 결과 1961년 박정희는 쿠데타 이후 공공요금까지 행정부가 맘대로 했다. 독일도 낡은 제국헌법을 버린지 오래됐다.

우리는 세금은 철저히 조세법률주의에 입각해 걷지만, 그 세금으로 쓸 나라 예산은 국회에서 안건으로 처리하고 만다. 그러니 해마다 처리시한을 넘긴 쪽지예산에, 부실한 예결산 감시가 반복된다. 반면 미국은 예산안도 해마다 법으로 제정한다. 우리도 이젠 재정민주주의에 입각해 예산안을 미국처럼 법으로 승격시켜야 한다.

대통령의 형사상 면책특권제도는 대통령 중심제인 미국에도 없는 이상한 제도다. 일본 메이지헌법 때 천황의 신성불가침설을 잘못 도입한 경우다. 역대 정치권력은 대통령의 사면제도를 마치 전제군주의 은사권처럼 남용해왔다.

일제의 법제는 이 나라에서 군사정권의 수립과 유지에 근거가 됐다. 1961년 쿠데타 직후 박정희는 국가재건최고회의를 만들었는데, 이 초헌법적 불법기구에 면죄부를 준 건 헌법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앞다퉈 최고회의의 합법성을 설파했다. 결국 쿠데타를 법학으로 합리화해 준 셈이다. 1963년, 1972년, 1980년에 개정된 헌법은 각각 1961년과 1972년, 1979년 세 번의 군사 쿠데타에 면죄부를 줬다. 법 기술자들은 5·16 이후 지금까지 옷을 갈아입으며 곡학아세의 전형을 보여줬다.

▲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 16일 오전 8~9시 경 중앙청 앞에서 박정희와 이낙선 소령, 박종규 소령, 차지철.
후안무치는 법원으로도 전염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재심 및 국가사과 권고 결정을 내린 사건 44건 가운데 재심 법원이 무죄 확정판결한 1960~1980년대 시국사건 17건의 판결문에서 사과의 뜻을 담은 건 오송회, 아람회 단 두 건에 불과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헌’은 우리 사회에 화두였다. 정치권을 따라 언론도 개헌 뉴스를 쏟아냈다. 지난 3월말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해 국회에 제출한 개헌안을 놓고 언론은 ‘국무회의를 패싱’해 중대한 흠결이 있다고 했다. 법제처 심사도 3일만에 이뤄졌고 주무장관인 법무부장관도 배제됐다고 했다. 해외 순방중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전자결재한 것도 문제 삼았다.

개헌안 내용은 관심 밖이었다. 그러다가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선거구제 개편’을 개헌의 핵심이라고 하자 그대로 옮겼다. 한국당이 책임총리제에 기반한 분권형 개헌안을 발표하자 이 역시 그대로 옮겼다.

20년 넘게 개헌 얘기가 나올 때마다 언론은 권력구조나 선거제도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번 개헌 보도는 연임제와 중임제 차이를 설명하는데 그쳤다. 언론이 시대 흐름에 맞게 지방분권이나 재정민주주의, 소수자 보호에 관심을 기울이기는 바라지도 않는다. 계엄과 긴급명령, 대통령 면책특권, 대통령 사면제도처럼 전제군주시대에나 있을 법한 헌법을 30년 넘게 머리에 이고 사는 국민들 생각도 좀 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