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적’ 표기 고집, 70년대 렌즈로 현재 보는 것”

[인터뷰]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 조선 등 국방백서 북한 ‘적’ 삭제반대에 “국방은 military로만 하는 게 아니다”

2018-08-23 18:31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kr

북한을 적으로 규정한 국방백서에서 적 표기를 삭제하려 하자 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가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은 군을 정치화시키고 정신분열증에 걸리게 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폈다.

이 같은 주장에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북한을 시대상황에 맞게 표기해야지 ‘70년대식 렌즈’로만 현재를 보려하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국방부는 올 연말에 제작되는 2018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적이라고 표현한 대목을 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 때인 2016년 발간한 ‘2016 국방백서’에는 북한에 대한 규정이 34쪽 ‘제2절 국방정책’의 ‘국방목표’ 부분에 나온다. 국방백서는 “북한의 상시적인 군사적 위협과 도발은 우리가 직면한 일차적인 안보위협이며 특히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1), 사이버공격, 테러 위협은 우리 안보에 큰 위협이 된다”며 “이러한 위협이 지속되는 한 그 수행 주체인 북한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방백서는 “이와 동시에 우리의 평화와 안보에 대한 주변국의 잠재적 위협과 초국가적·비군사적 위협에 대한 대응능력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간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국방부는 적이라는 표현을 빼고 ‘심각한 위협의 상대’ 정도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은 23일 “적 문구 대신 심각한 위협 상대 정도로 입장을 정한 것 같다”며 “다만 우리 군의 훈련교재나 정신교육, 훈화 교재에는 ‘적’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두려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23일 정례브리핑에서 “현재 이 사안에 대해서는 결정된 것은 없고, 국방백서에 북한군 표현에 대해서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충분한 검토를 거쳐서 12월 발간 시에 결정할 예정”이라며 “교육 교재도 아직은 구체적으로 그것 역시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은 적극 반대했다. 조선일보는 23일자 사설에서 “지금 휴전선에서 남북 군대 100만명 이상이 대치하고 있다. 적이 아니면 왜 이렇게 하고 있나. 적대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현실에서 엄연히 적대 상태가 존재하는 것은 다른 얘기”라고 주장했다. 조선노동당 규약의 당면 목적에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 해방과 인민 민주주의 혁명 과업 완수’라는 문구를 들어 조선일보는 “북에선 여전히 우리 국군이 적인데 우리는 북한군이 적이 아니라고 한다면 안보가 어떻게 되나”라며 “일선 장병들이 정신분열증을 느끼지 않겠나”라고 되물었다.

▲ 지난 2016년 발간된 2016 국방백서 34쪽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대목. 사진=2016 국방백서
조선일보는 군마저 경계심을 버리면 우리 안보는 누가 지키느냐며 군은 안보의 '마지막 보루'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왜 이렇게 성급하게 난리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잘못된 경제 정책은 수정할 기회가 있다. 안보는 잘못을 깨닫는 순간 이미 늦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백승주 국회 국방위 자유한국당 간사와 정양석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같은당 간사, 윤영석 같은당 수석대변인은 22일 오후 공동명의로 적 삭제 검토를 규탄한다는 논평을 발표했다.

이들은 “국군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임에도 최후가 아닌 최우선적으로 북한의 위협에 대한 군사적 대비태세를 무너뜨렸다”며 “군통수권자는 대한민국 국군이 두려워하고 충성해야 할 대상이 국민이라고 공언하면서, 대북정책 기조에 맞춰 국군을 정치화시키고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전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를 걸고 북한 지도부에 읍소하고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현 정부의 모습은 반드시 역사적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남북관계 변화의 시대적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은 23일 인터뷰에서 “국방백서는 그동안 시대상황에서 대해 유연하게 대처해왔다. 주적이라고 했다가 심각한 위협이라고 했다가 적이라고 바꿨다”며 “남북관계가 4.27 평화선언 이후 호전되고 있는데, 북한을 꼭 ‘우리의 적’이라고 쓸 필요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 2016 국방백서 표지
안 위원장은 “시대 상황에 맞게 적절히 표현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적으로만 써야 적인 것은 아니다. 백서를 발간할 때마다 시대상황에 맞게 바뀌어왔다. (적이라는 표현을 빼는 것이) 시대상황에 맞다”고 밝혔다.

남북군대가 엄연히 대치하는데 적이 아니냐는 조선일보 주장에 안 위원장은 “그 말 자체가 일리가 없지는 않으나 북한은 우리와 이중적 형태의 관계에 있다. 최대의 적이면서 통일을 이뤄야 할 상대이다. 이중적 형태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숙명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군 장병이 정신분열증을 일으킬 것이라는 조선일보 주장에 안 위원장은 “일선 장병의 교육과 훈육 교재엔 적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하지만 국방백서는 대외적인 의미의 문서이다. 북한을 적으로 생각하면서 평화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왜 이리 성급하냐는 주장에 안 위원장은 “성급한 것이 아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전쟁발발 운운했으나 언제 그랬느냐는 듯 북미 회담이 열렸고, 폼페이가 네차례나 방북하는 사변적 사건이 벌어졌다. (적 표기 삭제를) 갑자기 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살면서 흑과 백은 명백히 구분되지 않는다. 흑 속에 백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는 자유한국당 주장에 대해 안 위원장은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북한이 우리보다 선제적으로 평화제의하기도 하고, 장사정포를 뒤로 무르겠다고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 과거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들이다. 핵이나 미사일(제거)와 평화선언이 수레의 두 축처럼 같이 가야 하지만 선언적 의미가 있고, 내(부)적으로 가야 하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군을 정치화시키고 무력화시키는 일이라는 자유한국당 주장에 안 위원장은 “한 나라의 국방이라는 것은 ‘dime’ 요소, 즉 ‘Diplomatic·Information·Military·Economic(외교·정보·군사·경제)’ 가운데 밀리터리(군사)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전반적인 요건을 봐야지 군사력만으로 봐서는 안된다. 대외적으로 ‘심각한 적’이라 쓰면 외교적으로는 협상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안 위원장은 “북한에 대한 표현도 시대에 맞게 변경해야 한다”며 “70년대 냉전적 사고를 가진 그 시대의 렌즈로 보면 (현재가) 잘 안 보인다”고 평가했다.

▲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더불어민주당)이 지난 5월11일 첨단기술군 육성을위한 소요기획 발전방향 세미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안규백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