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싶다’와 이재명, 그리고 언론의 자유

[기자수첩] PD협회, 부실보도 성찰 없이 성명으로 이재명 언론관 지적…언론의 자유만큼 언론의 책임도 중요

2018-08-25 18:38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이재명 경기도지사측이 ‘조폭연루설’을 제기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그알) 제작진 등 4명을 지난 13일 고발했다. 자신이 조폭과 특별한 관계가 아니라는 취지다. 방송의 허위 여부는 법원의 몫이 됐다.  

지난 16일자 SBS PD협회 성명을 보면 PD들은 지금도 이 지사의 태도를 문제 삼고 있다. 앞서 그알 제작진도 이 지사의 태도를 지적했고, 방송에서 이 지사가 ‘위쪽’에 전화했다는 발언을 공개하기도 했다. 한국PD연합회는 지난 23일 이 지사에게 고발을 철회하라는 성명을 냈다. 두 단체 모두 주장의 근거로 ‘언론 자유’를 거론했다.

지난달 21일자 그알 ‘조폭과 권력-파타야 살인사건, 그 후 1년’ 편 방송의 구성은 조금 특이했다. 앞부분엔 과거 그알이 취재했던 파타야 살인사건의 뒷얘기가 나온다. 끔찍한 살인사건을 다루던 방송은 성남국제마피아파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조직원이 경영하는 코마트레이드가 나오고 이곳 관계자들이 유력 정치인을 만나거나 경찰 등에 돈을 제공한 모습도 보여준다.

▲ 이재명 경기지사의 조폭연루설을 주장한 지난달 21일자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화살은 은수미 성남시장을 지나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향했다. 74분짜리 이야기를 보고 나면 이 지사는 ‘살인사건을 일으킨 조폭 조직을 변호하고 특혜를 준 사람’이 된다. 이는 왜곡이다. 명확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알은 이 지사가 성남국제마피아와 결탁해 살인사건 용의자를 풀어주도록 부당한 압력을 수사당국에 행사했거나, 역으로 성남국제마피아가 이 지사의 권력을 이용해 특별한 이득을 취한 증거를 제시해야 했다. 이 지사가 어떻게 성남시를 움직여 조폭에게 특혜를 줬고, 이 과정에서 이 지사가 얼마나 개입했는지 가늠할 만한 증거도 내놨어야 했다.

결국 그알 제작진은 처음에 세웠던 가설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게 제보의 내용이었든 제보의 내용을 근거로 추정한 PD의 가설이었든. 여러 사람의 입을 빌어 의혹을 다시 한 번 제기했을 뿐이다.

증거가 없으니 방송은 드라마로 흘렀다. 그알은 성남국제마피아 조직원들이 기소된 사건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며 변호사 이재명의 이름을 클로즈업했다. 진행자 김상중씨가 이마를 부여잡으며 “아~ 조금 당혹스럽습니다”라는 연출까지 보여줬다. 이재명이 인권변호사 출신인데 뒤에서는 인권을 말살한 조폭을 돕고 산다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장면이다.

▲ 이재명 경기지사의 조폭연루설을 주장한 지난달 21일자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진행자 김상중씨가 이마를 부여잡으며 이 지사와 조폭이 연루됐다며 당혹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선 ‘인권변호사’라는 개념이 있다. 부패한 독재 권력이 지배한 세월을 겪으며 법조인들도 기득권에 서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권변호사’가 인권침해 피해자·약자만 변론해야 하는 건 아니다. 변호사들이 피고인을 대리할 때는 그 사람이 무죄라거나 정치·도덕적으로 무결해서가 아니다. 국민이라면 그가 조폭출신이든 살인자든 그들에게 인권이 있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어서다.

이 지사는 SBS PD와 통화하면서 자신의 친척이 중학생 때 조폭에 연루돼 변호를 섰다는 말을 했는데 이 내용도 전파를 탔다. 이는 성남에 조폭이 많고, 변호사가 다양한 이유로 사건을 대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방송에 꼭 필요한 내용이었는지 의문이다. 방송 이후 남는 건 ‘이재명 친척도 조폭이었대’ 밖에 없다. 

그알 제작진은 이 지사와 2시간 넘는 통화를 했다며 그 중 이 지사가 ‘팩트를 철저하게 확인해달라는 뜻에서 위쪽에 전화를 했다’는 내용을 공개했다. 방송에서 이 부분이 나가면 외압 논란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통 언론에 외압이 행사되면 그 사실은 보통 은폐된다. 압력사실을 방영한 것 자체가 지난 정권에서 수없이 목격한 장면과 다르다는 뜻이다. 

SBS PD협회는 “이 지사 언론관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는 제목의 성명에서 “‘뉴스를 없애버리겠다’ 거나 ‘사장 본부장 목을 잘라야 한다’고 막말을 퍼부은 야당의 전 대표의 언론관과 무엇이 다르냐”, “지난 정권의 청와대 홍보수석이 공영방송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압력을 가하고서도 그저 도움을 요청했을 뿐이라고 변명했던 사실” 등을 언급하며 실제 보도 탄압이 일어난 사례를 이 지사와 연결했다.

▲ SBS 그것이 알고싶다 '조폭과 권력- 파타야 살인사건, 그 후 1년' 편. 사진=SBS

그러나 사실상 KBS 사장의 인사권을 가진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과 이 지사와 SBS의 사례는 다르다. 더욱이 SBS 구성원들은 최근 10년 사이 가장 높은 보도 자율성을 얻어냈다. 실제로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이 지사의 전화를 받은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외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사자들이 외압이 없다고 말한 이상 성명에 등장하는 ‘언론사 윗선에 전화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이제 강경한 언론관을 고쳐야 한다’ 등의 내용은 보좌진이 이 지사에게 할 만한 얘기다.

언론사 보도 책임자나 대표가 이런 식의 요청·항의를 받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고발성 탐사보도의 경우 요청이나 항의가 일상일 수밖에 없다. 혹 외압으로 느끼더라도 이를 제작물에 넣는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동료 PD들이 부실한 보도를 성찰하기 보다 이런 성명을 냈다. 

한국PD연합회는 한발 더 나갔다. SBS PD협회에서 ‘법적 절차를 통한 이의제기는 이 지사의 권리라며 언급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PD연합회는 “대승적인 자세로 언론자유를 옹호하는 게 크게 보아 이 지사 자신에게도 이로울 것”이라며 고발 자체를 취하하라고 했다. 역시 “외압으로 비칠 수 있다”는 표현을 쓰며 외압에 굴복하지 않은 SBS 경영진을 칭찬하기도 했다.

두 언론단체가 이 지사에게 ‘언론의 자유’를 근거로 ‘외압’을 비판하고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무리한 공세다. 적어도 2018년 SBS는 경기지사의 전화 몇 통으로 보도가 흔들리는 조직이 아니다. 두 단체는 그알 PD가 약자라는 전제에서 성명을 내놨지만 실제 피해를 입은 건 SBS가 아니다. 부실보도로 피해자가 나타날 경우 언론은 자유를 주장하는 대신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