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익과 ‘불란셔 제빵소’

[기자수첩] 드라마 줄거리에 파고드는 PPL, 역사왜곡만큼 불편하다

2018-08-26 07:04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등장하는 ‘불란셔 제빵소’는 짐작하겠지만 조선시대에 존재할 수 없는 빵집이다. 파리바게뜨 PPL(간접광고) 때문에 극에 삽입된 곳이다. ‘불란셔 제빵소’는 극중 고애신(김태리 분)과 쿠도 히나(김민정 분)가 만나는 곳이면서 구동매(유연석 분)가 왕사탕을 먹는 곳이자 함안댁(이정은 분)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꽃 빙수를 맛본 곳이기도 하다.

‘불란셔 제빵소’에 등장하는 메뉴는 하나같이 색이 곱고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이게 카스테라라는 서양 떡이다. 먹어 보거라. 꼭 조선의 무지개떡같이 생기지 않았니.” 지난 18일자 방송에선 고애신이 글로리 빈관 여종업원에게 무지개 카스테라를 썰어주며 친 대사다. 언론은 파리바게뜨의 매출이 급증했다며 PPL효과를 강조하는 가운데 극에 자주 등장한 ‘가배’ 또한 커피업체 PPL이라며 친절한 상품 소개에 나섰다.

▲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tvN
얼마 전 ‘미스터 션샤인’이 구한말 한미관계를 왜곡했다는 어느 교수의 한겨레 칼럼이 화제를 모았다. “작가는 세계 2차 대전 이후에나 가능했을 법한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이미지를 이제 갓 세계열강으로 부상하던 세기의 전환기에 덧칠했다”는 칼럼의 지적이 와 닿았다. 그러나 이 같은 역사왜곡보다 더 불편한 대목은 ‘불란셔 제빵소’다. 역사왜곡만큼 드라마의 줄거리에 파고드는 간접광고도 시청권 입장에서 적지 않은 문제다.

혹자는 중간광고를 두고 시청권을 침해하는 중대 사안이라고 비판하지만 적어도 중간광고는 극에 ‘침투’하지 않는다. 중간광고는 작가와 PD가 머리를 싸매가며 어떻게 PPL을 대본에 자연스럽게 녹일까 고민하게 만들지 않는다. 앞서 2017년 공전의 히트작이 된 ‘도깨비’는 드라마라는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홈쇼핑 프로그램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PPL이 가득했다. 작가와 PD만 탓할 문제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 tvN 드라마 '도깨비'에 등장했던 PPL 장면. ⓒtvN
불후의 명작이 된 드라마 ‘모래시계’(SBS)가 2018년에 등장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작가와 PD는 강우석(박상원 분) 자취방에 놓인 책상과 볼펜, 박태수(최민수 분)의 가죽재킷, 학생 운동권이던 윤혜린(고현정 분)의 청바지까지 PPL로 녹여야 했을 것이다. 지금 같은 시대라면 PPL이 어려운 ‘추노’(KBS)같은 드라마는 애초에 탄생조차 못했을지 모른다. 자연스러운 PPL 삽입이 작가와 PD의 능력으로 인정받는 이 세태는 정상이 아니다.

언제부터 우리는 드라마를 보며 저게 PPL인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을까. 왜 이런 ‘피곤함’을 매번 감수해야 할까. 극 중 이완익(김의성 분)을 볼 때마다 매국노 이완용을 떠올리고 조선을 떠올리다가도 ‘불란셔 제빵소’를 보면 내일 출근해야 하는 ‘현실’로 돌아오는 느낌이다. 유진 초이(이병헌 분)의 오르골과 나루터 주막의 삼계탕, 일명 치킨수프도 실은 어느 기업의 신제품이란 사실에선 내가 뭘 보고 있는 건지 허무해질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