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사직서 써” 임산부 죄인 취급 심각하다

퇴사 강요, 전환배치·일감축소 모멸감, “블랙리스트” 협박까지… 직장갑질119 “이러다간 임신파업 못 막아”

2018-08-26 15:54       손가영 기자 ya@mediatoday.co.kr

#1. “한 달 치 월급 줄 테니 퇴사해라.” 1년 육아휴직 후 복직한 A씨가 회사로부터 들은 말이다. 회사는 육아휴직은 퇴사를 전제로 줬다고 했다. A씨는 노동부에 진정을 넣어 겨우 구제 받았으나 복직 직후 기술영업부로 갔다. A씨는 10년 넘게 경리업무만 한 직원이었다. 근무환경도 고통이었다. 회사는 A씨에게 직원 B씨와만 대화하고 다른 직원과의 대화는 금지했다. B씨는 지시에 따라 A씨와의 대화를 모두 녹음했다.

#2. “임산부 중 하혈 안 하는 사람 어디있느냐.” 약사 C씨는 이런 말을 들으며 병원 상사로부터 육아휴직을 허가받지 못했다. C씨는 임신 중 출혈 문제로 유산 위험이 크다는 진단을 받은 터였다. 상사는 오히려 C씨를 탓했다. 그는 “내가 일할 땐 의자도 없이 하루 종일 서서 일했다” “그래도 20년 동안 단 한 명도 유산한 사람 없다” “육아휴직은 임신한 사람 편하자고 있는게 아니다” 등이라 말했다.

올해 2사분기 출산율이 0.97명을 기록하는 등 한국사회가 심각한 출산율 저하 위기를 맞고 있지만 직장 여성 모성보호 수준은 여전히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노동상담 사례를 발표한 직장갑질119는 “정부가 모성보호 갑질을 강력히 처벌하지 않으면 세계 최저 출산율이라는 재앙을 막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 회사 내에서 워킹맘 차별을 개선하고자 동료 노동자들과 목소리를 내고 있는 한 작업치료사.(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합니다.) ⓒ민중의소리

직장갑질119가 지난 1여년 간 출산휴가, 육아휴직 사용 등과 관련된 상담사례를 분석한 결과, 총 300건 중 신원 확인이 된 사례는 56건, 이 중 46.4%(26건)가 육아휴직 후 불이익을 받은 사건으로 나타났다. 육아휴직 후 퇴사강요는 16건, 임산부 괴롭힘은 13건 순이었다.

한 임산부 직원은 육아휴직 후 집에서 77km가 떨어진 곳에 강제전보됐다. 휴직 전엔 중간관리자인 파트장 보직을 맡았으나 전보되며 4년 차 직원의 업무를 맡았다. 직속 상급자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렸다.

직장 내 괴롭힘에 “내가 무능한 것 같아 죽고 싶었지만 아이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고 호소한 피해자도 있다. 올해 2월 직장갑질119를 찾은 한 여성은 육아휴직 후 원직복직 못하고 다른 직원의 보조로 배치받았다. 이 여성은 상급자로부터 “육아휴직 대체자가 그동안 일했다. 몇 개월이나 쉬다 왔으니 일 빼앗을 생각하지 말라”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면 우선 잡일이나 하라”는 말을 들었다.

사직을 강요한 사례도 흔했다. 한 직원은 육아휴직 복귀 직후 회사로부터 “계약직원을 정직원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회사를 그만 둘 계획이 없느냐?”고 사직을 권고받았다. 지난해 11월 상담한 여성 C씨 경우, 회사는 C씨 육아휴직 중 그의 사내 인트라넷 아이디를 삭제하고 그가 회사를 나갔다고 내부에 알렸다. C씨는 정규직 전환을 구두로 약속받고 수 년간 허위계약서로 계약을 갱신해 온 비정규직이었다.

▲ 개티이미지.
직장갑질119 조사결과를 종합하면 이런 부당 대우엔 여성의 출산·임신에 대한 비하가 깔려있다. 유산 후 회복이 더뎌 산부인과 진료를 다니던 한 피해자는 상급자로부터 “또 임신 하려고요?”라는 말을 들었다. “저 계약직원은 멍청해서 피임을 못해 바로 임신했다” 등의 폭언 사례도 확인됐다.

향후 재취업에 불이익을 준다는 협박 사례도 있었다. 한 유치원 교사는 ‘올해 임신을 하면 모성보호를 위해 중도에 퇴사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입사했다. 이후 임신에 성공해 퇴사를 신청하자, 원장은 “퇴사하면 머리채를 잡아서 흔들겠다” “블랙리스트 만들어서 동종업계 사람들에게 뿌리겠다”고 협박했다.

한국의 육아휴직 이용률은 2012년 기준 22.6%다. 이중 남성의 육아휴직율은 3% 정도에 불과하다. 직장갑질119는 “대부분의 직장인 여성에게 임신은 축복이지만, 직장생활에 있어서는 악몽”이라며 “대부분의 여성들은 배가 부를 때까지 임신 사실을 숨기는 것이 현실이다. 임신을 회사에 알림과 동시에 ‘출산전후휴가를 언제 사용할 것인지’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을지’ ‘육아휴직을 얼마나 사용할 수 있는지’ ‘육아휴직 후 복귀에 문제가 없을지’ 등 회사와의 눈치싸움이 시작된다”고 밝혔다.

직장갑질119는 대응방안으로 “이기심을 장착하라”고 강조한 뒤 “회사가 부정한다고 나까지 태아를 부정해선 안 된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해야, 사용자의 갑질과 횡포에 침착하고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며 “출산전후휴가 및 육아휴직에 대한 모든 정보도 미리 숙지하라”고 조언했다. 

이 단체는 또한 △객관적으로 대응하고 적절한 간격을 유지할 것 △ 경과를 기록하고 증거·녹취를 모을 것 △문제 발생 시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할 것 △사직의사를 표하지 말 것 등을 조언했다.

직장갑질119는 현재 급격히 떨어진 출산율을 ‘여성 노동자의 출산파업’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2017년 출생율은 35만7000여 명으로 2016년보다 12% 감소해 통계조사 이후 최저값을 기록했다. 2017년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도 1.05명으로 사상 최저를 찍었다. 2018년 2분기엔 출산율이 0.97명을 기록하는 등 올해 평균은 1명 미만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직장갑질119는 “정부는 공공기관에서 산전후 휴가와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 불이익, 괴롭힘이 벌어지는 사업장에 대해 무기명 설문조사와 근로감독을 실시해야 한다. 동일한 임금을 주더라도 동일한 업무 또는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업무를 강요하거나 따돌리는 사용자를 조사해 처벌해야 한다”며 “정부가 모성보호 갑질을 강력히 처벌하지 않으면, 세계 최저 출산율이라는 한국사회 미래의 재앙을 막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