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기자 훈계했던 전두환은 어디 있을까

알츠하이머 발병 이유로 재판 불출석 두고 논란…가장 가깝게 접근한 2016년 인터뷰 회자, 비교적 자신 의사 뚜렷하지만 과거 기억 잘 못하기도

2018-08-28 12:03       이재진 기자 jinpress@mediatoday.co.kr

전두환씨가 알츠하이머 투병을 이유로 재판에 불출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그가 법정에 나올 수 없을 만큼 증상이 심각하느냐는 의구심을 바탕으로 재판의 책임 입증을 피하기 위해 핑계를 대고 있다는 비난이 확산되고 있다.

전씨는 자신의 회고록에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헬기 사격을 했다고 증언한 故 조비오 신부를 “광주사태 당시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던 만큼 조비오 신부가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것은 왜곡된 악의적 주장”이라며 “조 신부는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유가족은 지난해 4월 전씨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 전씨는 불구속 기소됐고, 27일 재판이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씨 측 민정기 전 비서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1995년 옥중 단식으로 쓰러져 주치의로부터 뇌세포 손상이 우려된다고 했고, 2013년 압수수색으로 전씨가 한동안 말을 잃고 기억상실증을 앓은 이후 알츠하이버 증세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90세를 바라보는 고령 때문인지 근간에는 인지 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방금 전의 일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이러한 정신건강 상태에서 전 전 대통령의 정상적인 법정 진술이 가능할지도 의심스럽거니와 그 진술을 통해 형사소송의 목적인 ‘실체적 진실’을 밝힌다는 것은 더더욱 기대할 수 없다고 하겠다”고 재판에 출석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 2015년 6월29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환담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씨의 입장에 대해 2013년부터 증세가 악화됐다면서 어떻게 지난 2016년 회고록을 출판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부터 2013년 이후 전씨의 정상적인 행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번 재판은 5. 18 계엄군의 잔혹성, 그리고 사격명령을 내린 책임자 처벌 등 전씨를 법정에 세워 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에 한발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는데 전씨가 투병을 이유로 불출석하면서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법원은 이날 전씨가 출석하지 않자 “2013년 전후 알츠하이머를 앓았다고 하는데 지난해 4월 회고록을 출간한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하면서 투병이 불출석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법원은 오는 10월 재판을 연기하고 바로 구인장을 발부하는 대신 소환장을 보냈다.

2013년 전후 전씨의 행적으로 보도한 언론에 따르면 지난 2012년 6월 8일 전씨는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발전기금 200억원 달성 행사에 참석해 육사생도의 사열을 받고 경례를 하는 모습을 보여 논란이 일었다. 2015년 10월엔 대구공고 체육대회에 참석해 참석자와 악수를 나눴고 2016년 4월 13일 20대 국회의원 투표를 하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주민센터를 찾았다. 그리고 2017년 5월 9일 전씨는 대통령 선거 투표를 하기 위해 연희동 주민센터를 방문하고 “좋은 사람, 훌륭한 분이 대통령으로 선출됐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전씨가 과연 법정에 서지 못할 만큼의 증세가 나빠졌는지 아니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지난 2016년 신동아와의 인터뷰다.

신동아는 2015년 연말부터 전씨의 인터뷰를 추진해 전 수도경비사령부 보안반장이었던 김충립 목사를 접촉한 뒤 인터뷰를 성사시켰다. 신동아는 2016년 4월 27일 전씨의 연희동 자택에서 3시간 동안 인터뷰했다. 신동아는 “전두환·이순자, 30년 침묵을 깨다!”라는 제목으로 5편에 걸친 시리즈 기사를 내놨다. 인터뷰엔 전씨와 이순자 여사, 정호용 전 의원, 고명승 전 3군사령관, 윤덕대종사, 김충립 목사가 참여했다.

신동아 인터뷰는 주로 이순자 여사가 답했지만 전씨도 비교적으로 뚜렷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예를 들어 대권을 잡기 위해 12. 12 쿠테타를 일으켰다는 지적에 대해 전씨는 “나는 원래 정치인이 아니고 군인이란 말이야. 군인으로서 그때 나라가 어렵고, 내가 대통령이 안 될 수가 없어서 한 건데, 내가 대통령이 하고 싶어서 된 건 아니오. 대통령 하고 싶으면 뭐 하러 군대 들어갔겠어요. (대통령 되려는) 계획이 전혀 요만큼도 없었어. 그렇기 때문에 약속한 대로 하고 딱 한 번(대통령 단임) 하고 나왔잖아. 사람들은 내가 계획을 다 세워서 한 줄 아는데, 내가 그렇게 머리 좋은 사람이었다면 (대통령 자리에서) 나오지도 않았겠지” 라고 말했다.

전씨는 발포명령 최종 책임자로 지목되는 것에 대해서도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 그때 어느 누가 국민에게 총을 쏘라고 하겠어. 광주사태 때 내가 보안사령관이었을걸? 보안사령관은 정보 수사 책임자요. 어떤 정치인, 어떤 대통령이 되려다 못 된 사람이 그런 모략을 그쪽(5·18 책임 전가)으로 풀었는지 몰라도, 내가 광주사태를 일으킨 걸로, 주동한 걸로 나쁜 소리를 하는데 내가 이후 대통령이 됐으니 그러는 거지”라고 부인했다.

이순자 여사가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 추징금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자 전씨는 “왜 쓸 데 없는 소리를 해”라며 이 여사의 발언을 가로막기도 했다.

전씨는 인터뷰를 마칠 무렵 신동아 기자에게 훈계를 하기도 했다. 전씨는 “근데 자네들도 언론인이니까, 앞으로 국민들에게 교훈적인 의미에서 (기사를) 남기는 게 좋을 거야. 어느 나라든지 국가원수를 지낸 사람에 대해서는 국민적 예우가 있어야 돼. 집안은 아버지 어머니 잘 모시고, 나라는 대통령 지낸 사람이면 조금 잘못이 있더라도 죽일 정도가 아니면 좋은 교훈 정도만 남기되, 자꾸 물고 뜯는 게 아냐”라고 말했다.

이순자 여사가 남은 재산 29만 1000원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은 고액 체납자로 재판정에 나가 재산을 신고했는데 변호사가 휴면계좌에 붙은 이자 29만원을 실수로 적어내서 판사가 ‘29만원 밖에 없는 사람이 골프를 어떻게 치냐’라고 한 말 때문이라고 하자 전씨는 “아주 나쁜 놈들이야”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전씨를 가장 가깝게 접근한 언론의 인터뷰였기 당시 건강 상태를 비교적 소상히 알 수 근거가 될 수 있다. 인터뷰 전체 내용을 보면 2016년 4월까지만 해도 전씨는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데 문제가 없고, 자신의 감정까지도 털어놓을 수 있는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인터뷰에서 배수강 기자는 세 대목에 걸쳐 전씨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고 썼다.

배 기자에 따르면 김충립 목사가 보안사령부 장교 시절 전씨가 자신을 발탁해 정호용 특전사령관의 정보보좌관을 지낸 인연을 말하자 전씨는 “아, 그랬어요”라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 전두환씨를 인터뷰한 신동아 기사 내용.

배 기자는 “전 전 대통령은 한 가지 주제로 대화가 오래 이어지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듯 자꾸 되묻곤 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질문하면 ‘내가 그때 뭐하고 있었더라…’ 하는 식이었다”고 전했다. 배 기자는 “이순자 여사는 기억을 되살려 비교적 또박또박 답변했지만, 전 전 대통령은 가끔씩 기억을 잘 떠올리지 못했고 몇 차례 했던 말을 반복했다”고 전했다.

인터뷰에서 “기자들이 건넨 명함을 담배 말듯 돌돌 말아 이마에 가져다 대고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는 대목 역시 보통 사람의 행동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게 참석자들의 증언이다.

배 기자는 27일 통화에서 “자꾸 했던 말을 반복한 경우는 있었다. 예를 들어 80년 5월 달 시점 같은 걸 얘기하다보면 다시 물어보곤 했는데 (기억상실)증상이 심한 건 아니었다”고 말했다.

신동아 인터뷰가 주목을 받은 것은 알츠하이머 투병 상태를 짐작할 수 있는 가장 최근의 인터뷰이기도 하지만 5·18 민주화운동의 북한군 개입설에 대해 전씨가 공식 부인해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당시 인터뷰에서 전씨는 “5·18 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북한군 침투와 관련된 정보보고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전혀”라고 답했다.

이순자 여사는 이어 “지금 그 말(북한군 침투설)을 하는 사람은 각하가 아니고 지만원이란 사람인데, 그 사람은 우리하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독불장군이라 우리가 통제하기도 불가능해요. 그걸 우리와 연결시키면 안 돼요”라고 말했다.

이에 고명승 전 3군사령관은 “북한 특수군 600명 얘기는 우리 연희동에서 코멘트한 일이 없다”고 하자 전씨는 “뭐라고 600명이 뭔데”, “어디로 왔는데”, “난 오늘 처음 듣는데”라며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고 인터뷰는 전했다.

신동아 인터뷰 내용대로라면 전씨는 북한군 개입설을 전혀 모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회고록에서는 “연고대생으로 알려졌던 600명의 시위대가 북한의 특수군이라는 주장이 몇몇 연구가들에 의해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 10여년간 집중적인 조사와 연구, 출판 활동 등을 통해 5·18 광주사태와 관련된 진실을 규명해나가고 있는 지만원 시스템공학 박사는, 광주사태가 ‘민주화 운동’이 아니고 북한이 특수군을 투입해서 공작한 '폭동'이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결정적 남침 기회를 노려 우리 대한민국의 내부 혼란을 집요하게 획책해온 북한이 폭동사태로 번진 5·18 광주사태 때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두말이 필요 없는 일이다”라고 썼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회고록을 쓴 장본인이 따로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신동아 인터뷰에서 전씨는 회고록 작성 여부에 대해 “이 양반(이순자 여사)이 먼저 하고 있고, 난 준비도 안 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이순자 여사는 “대통령 부인으로서, 평범한 여자로서, 남편이 대통령 되는 바람에 겪은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쓰고 있어요. (우리에 대한) 오해가 많은 것도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아 국민과 청와대의 거리가 가까워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썼어요” 라고 설명했다.

전씨가 아닌 이순자 여사가 주도적으로 회고록을 썼고, 회고록 내용이 소송으로 비화되자 전씨의 알츠하이머 투병을 들어 법정에서 입증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월간조선과 인터뷰했던 민정기 전 비서관은  2016년 신동아 인터뷰 당시 북한군 개입설에 전씨가 전혀 모른다고 했다가 회고록에서는 북한군 개입 의혹을 제기한 이유에 대해 “신동아 기자와 만난 자리는 5·18 문제를 거론할 만한 자리가 아니었다”며 “당시엔 회고록 원고작성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 가고 있었을 때였다. 그 방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려워 기자 질문을 그냥 얼버무리려고 ‘모른다’고 답하셨다고 들었다. 또 회고록을 준비 중인 만큼 나중 책을 통해 입장을 밝히면 된다고 생각하셨다”고 해명했다.

민정기 전 비서관은 기자출신으로 1976년 최규하 국무총리의 공보비서관을 맡았다. 민 전 비서관은 전씨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초부터 퇴임 후까지 공보비서관으로 일했다. 월간조선은 그를 “전두환 회고록의 준비 작업에 처음부터 참여했고, 최종적으로 원고를 다듬고 완성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