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 불법사찰 잡은 대학생은 왜 ‘강도’가 됐나

[인터뷰] 기무사 대위 ‘폭행’ 가해자로 몰린 안중현씨 “사찰 폭로했다 1년 감옥살이, 정상적 삶 포기했다”

2018-08-29 14:54       강성원 기자 sejouri@mediatoday.co.kr

2009년 8월 초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선 경찰특공대가 투입돼 파업농성 중이던 쌍용차 노동조합을 강제 진압했다. 그런데 이때 경찰만 쌍용차 집회에 투입된 게 아니었다.

국군 기무사령부(기무사) 대원들은 2009년 8월5일 평택역에서 경찰의 폭력적인 노조 진압을 저지하는 집회 참가자들을 몰래 촬영하는 등 민간인을 사찰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장을 몰래 촬영하던 한 남자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집회 참가자들이 증거 확보를 위해 그의 수첩과 캠코더를 빼앗았고, 이후 기무사가 군형법 등을 어기고 민간인을 무차별 사찰하고 있었음이 세상에 공개됐다.

명백한 불법 행위를 저지른 건 기무사 대원이었음에도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됐다. 기무사 소속 신근섭 대위는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대학생 안중현씨를 자신을 폭행하고 소지품을 강탈한 범인으로 지목해 고소했다. 안씨는 사건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기무사 직원들의 진술만으로 그를 긴급 체포했다. 검찰은 안씨를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상과 강도상해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2010년 11월18일 항소심에서 민간인 사찰 기무사 대위에 대한 강도상해죄 무죄로 풀려난 안중현씨. 2010년 12월14일 방송된 MBC PD수첩 ‘기무사 민간인 사찰, 그날의 진실’ 편 갈무리.
1심 법원은 안씨의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죄는 무죄라고 판단했지만, 신 대위의 신분증과 수첩을 빼앗은 혐의는 유죄라며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안씨는 항소심에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죄와 강도상해죄는 무죄, 폭행 가담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풀려났다. 안씨는 기무사 직원의 진술 외에 폭행 관련한 직접적 증거도 없다며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안씨는 2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실제 내가 가담하지도 않은 일로 기무사 사찰 폭로에 대한 보복으로 억울한 희생양이 됐다”며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1년 가까이 감옥에서 보낸 걸 생각하면 정말 화가 난다”고 술회했다.

안씨는 “이후 나는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취직해서 살기는 어렵게 됐다”며 “기무사나 국정원이 늘 나를 사찰하고 있을 거로 생각했고 메신저와 문자도 당연히 누군가 다 볼 수 있을 거라고 여기게 됐다”고 말했다.

안씨는 현재 서울의 한 대형유통업체 노조 상근자로 일하지만, 과거의 일에 부모님이 더 억울해 한다고 했다. 안씨는 “부모님이 기무사와 관련한 뉴스가 나오면 꼭 나에게 카톡으로 보내주신다”며 “재심으로 명예를 회복하고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해보진 못했다”고 말했다.

▲ 경기도 과천에 위치한 국군 기무사령부 입구. ⓒ연합뉴스
안씨가 감옥에 구속되고 재판을 받는 동안 그를 범죄자로 몰았던 기무사 신 대위는 처벌이나 징계는커녕 되레 2010년 4월 소령으로 승진했다. 기무사의 민간인 불법사찰을 폭로했던 이정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은 “기무사는 특별한 사정을 제외하고는 민간인에 대한 첩보 수집과 수사를 할 수 없어 직무범위를 일탈한 불법사찰 책임자를 엄중 문책하라”고 요구했지만, 기무사는 신 대위를 강도 피해자로 만들어 진급까지 시켰다.

이에 안씨는 “재판 때 나온 사진과 동영상 등 증거를 보면 민간인을 사찰했음이 명확한데도 검찰과 법원도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고 무기력했다”고 지적했다.

안씨는 “재판부는 폭행 사건과 관련이 없다면서 동영상 음성감식 요청도 무시했다. 사실상 기무사와 한통속이었던 셈”이라며 “재판부는 기무사의 행위가 정상적 공무집행이 아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불법사찰은 지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무사의 불법사찰 행위는 형사처벌이 아닌 이후 피해자들이 국가(법무부 장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통해 인정됐다. 2011년 1월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김인겸 부장판사)는 민주노동당 당직자와 시민단체 관계자 등 기무사 사찰 피해자 15명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국가는 피해자들에게 각 800만 원~1500만 원씩 총 1억260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민간인 신분의 민노당 당직자, 시민단체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미행과 캠코더 촬영 등의 방법으로 지속적으로 이뤄진 점에 비춰볼 때 이는 기무사의 직무범위를 일탈한 위법 행위”라고 판단했다.

기무사 사찰 피해자 중 한 명인 엄아무개씨는 이후 불안감과 우울증 악화에 시달리다 2012년 8월 해당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기 한 달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반면 2009년 기무사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민노당 당직자를 촬영한 적이 없다”고 위증한 기무사 간부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지난 2009년 기무사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봉엽 당시 기무사 방첩처장은 평택역 쌍용자동차 집회 현장에서 기무사 대원의 불법사찰 의혹과 관련해 “민주노동당 당직자를 촬영한 적이 없다”고 위증했다. 2010년 12월14일 방송된 MBC PD수첩 ‘기무사 민간인 사찰, 그날의 진실’ 편 갈무리.
그때 기무사 방첩처장이었던 이봉엽 전 기무사 참모장(예비역 소장)은 국회에 나와 “(촬영한 지) 5분도 안 돼 20여 명의 젊은이들이 와서 우리 요원을 시위대 중앙으로 데려가서 구타하면서 (캠코더를) 뺏어갔다”며 “그래서 찍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그때 화면을 보면 특정인을 찍은 사진은 없다”고 주장했다.

기무사는 민간인 불법사찰 외에도 지난 2009년부터 2013년 초까지 인터넷 댓글 부대를 운영하며 특정 정치인 등에 대한 비난·지지 활동을 해온 혐의로 국방부 사이버 댓글 사건 조사 태스크포스(TF)의 수사를 받았는데 이 전 참모장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지난 6월14일 배득식 전 기무사령관을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같은 혐의를 받은 이봉엽 전 참모장의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상규 민중당 상임대표는 “기무사는 이번에 드러난 세월호 유족 사찰 정도에 그친 게 아니라 예전부터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정치 개입과 법 위반을 자행해 왔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기무사의 정치개입과 불법사찰을 근절하려면 군과 연결돼 있어도 민간인을 수사하지 못하게 명확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 [단독] MB 청와대, 기무사 민간인 사찰 여론동향도 보고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