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신화의 주인공들

[미디어오늘 1165호 사설]

2018-09-01 09:41       미디어오늘 media@mediatoday.co.kr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 27일 알츠하이머 진단을 내세워 법정에 나오지 않아 논란이다.

경향신문은 1980년 8월19일부터 ‘새역사 창조의 선도자 전두환 장군’을 4회 연속 게재해 돌풍을 일으켰다. 전역하지도 않은 현역군인을 전임 최규하 대통령 하야 발표 직후 ‘생사관(生死觀)선 의리와 정직의 성품’으로 칭송하며 차기 대통령으로 부각시켜 ‘새 시대의 새 영도자’로 이름 붙인 언론의 사기극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후 모든 신문이 앞다퉈 ‘인간 전두환’ 시리즈에 뛰어들었지만 내용은 대부분 경향신문을 베끼는데 그쳤다. 김길홍 경향신문 기자의 희대의 특종 이후 조선일보는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의 행동 - 인간 전두환’이란 제목의 기사를, 한국일보는 ‘전두환 장군 의지의 30년 - 육사 입교에서 대장 전역까지’를, 동아일보는 ‘우국충정 30년 - 군생활을 통해본 그의 인간과 새 시대의 기수 전두환 대통령’을, 중앙일보는 ‘솔직하고 사심없는 성품 - 전두환 대통령 어제와 오늘 합천에서 청와대까지’를 실어 전두환 찬양 시리즈 각축전을 벌였다.

▲ 1980년 8월22일 경향신문 1면. ‘참신한 改革意志(개혁의지)로 새 歷史創造(역사창조)’라고 써있다.

김길홍 기자는 당시 실세인 권정달 보안사 정보처장과 경북 안동 동향이었다. 김 기자는 ‘신아일보’ 청와대 출입기자였는데 신아일보 폐간 정보를 듣고, 1980년 7월22일 경향신문 정치부장 대우로 발 빠르게 옮겨 5공 언론창출의 주역이 됐다. 이후 전두환 찬양열전으로 일약 신군부 실세로 부각, 1982년 허화평 정무수석과 이수정 언론담당 1급 비서관 밑에서 2급 비서관을 지냈고 1984년 허문도가 문화공보부 차관에서 정무수석으로 옮김과 동시에 1급으로 승진했다. 1988년 총선 땐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1992년 고향 안동에서 출마해 겨우 당선됐지만 다음 선거에선 낙선했다. 

경향신문만큼 격변했던 언론사도 드물도 1980년 김길홍 기자의 전두환 찬양보도가 있기 직전인 1980년 6월 신군부에 저항하던 6명의 경향신문 기자가 계엄당국에 연행됐다. 

전두환이 ‘참군인’으로 둔갑한 건 1968년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 초입까지 진격한 1·21사태 때 세운 공로다. 그러나 당시 전두환이 실제 한 일은 언론보도와 많이 다르다. 보안사 주요직책을 거치고 1972년 박정희의 지시로 윤필용 사건을 만들어낸 육사 16기 H씨는 “윤필용 사건 때 전두환은 칠성회 명단을 팔아먹고 박정희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무릎 꿇고 용서를 빈 ‘전향자’였다”고 했다.

김신조가 자하문 쪽으로 청와대를 급습했을 때 주요 경비병력은 경복궁에 주둔한 수도경비사령부 30대대(대대장 전두환)였다. 기습 당일 비상이 걸렸는데도 전두환 대대장은 연락이 되지 않았고 상황이 끝난 뒤에야 나타났다. 당시 전두환은 술집에 있었다는 게 통설이다. 대대 참모 장세동이 그나마 병력을 움직였으나 경찰이 한바탕 격전을 치른 뒤였고, 다급했던 경찰이 시내버스에 수류탄을 까 넣어 애꿎은 시민들만 죽었다. 예하 안현태 중대장은 이미 죽은 시체를 작전 중 사살로 꾸며 훈장까지 받았다.

전두환 대대장은 처벌 받아야 마땅했지만 직속상관인 박종규 경호실장의 총애로 구제돼 청와대 측근에 계속 남아 출세가도를 달렸다.

▲ 사진은 유일하게 생포된 김신조의 모습. 총 31명이 서울에 침투했으나 그중 김신조 단 한사람만이 투항해 살아남았을뿐 도주한 2명을 제외한 나머지 28명은 모조리 죽음을 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1968년 1월21일자 동아일보)
1·21사태와 전두환을 엮어 포장한 건 동아일보였다. 동아일보는 1980년 8월29일 3면 ‘새 시대의 기수 전두환 대통령’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68년 1·21사태때 더 큰 비극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던 숨은 공로자가 전 대통령이었다”며 “체포된 김신조는 박격포에서 쏘아대는 조명탄 때문에 흩어져 도주했다”고 보도했다.

아직도 우리 언론은 가짜뉴스로 온국민을 현혹시켰던 전두환 신화의 주인공들이 파 놓은 깊은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