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일방적 ‘DNA 채취’ 열어준 DNA법 “헌법불합치”

헌법재판소, ‘DNA법’ 8조에 “반론 기회‧구제절차 없어, 과잉금지원칙 위반”

2018-08-31 13:06       손가영 기자 ya@mediatoday.co.kr

헌법재판소가 반론기회 등 구제절차 보장없이 유죄확정된 사람의 DNA를 일방으로 채취하게 한 DNA법(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동안 검찰은 노사분규, 대정부시위 사건에서 이 법을 남용해왔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30일 ‘DNA감식시료 채취 영장’ 발부 절차를 규정한 DNA법 8조가 채취대상자의 방어권을 규정하지 않아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했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헌재는 “유죄판결이 확정된 자라 하더라도 DNA감식시료 채취 영장 발부 절차에서 재판청구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헌재는 법률 공백 상태를 고려해 2019년 12월31일까지 현행 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밀양송전탑 주민들이 검찰의 DNA 채취와 겁박에 항의해 면봉을 검찰지청을 향해 던지고 있다.ⓒ민중의소리
▲ 용산참사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개선위원회와, 금속노조쌍용차지부, 인권단체연석회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7일 오전 서울 서초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쌍용차 노동자와 용산 철거민에 대한 검찰의 DNA 채취를 규탄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현행 DNA법 8조는 검사가 채취에 동의한 대상자에게 채취 거부권을 고지하고 서면동의 받을 의무만 두고 있다. 채취에 반대한 자의 반론 진술권, 영장발부 불복절차 등은 정해져 있지 않다. 채취대상자는 검찰이 법원에 청구이유를 소명하고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면 강제채취를 따를 수밖에 없다.

시민사회는 검찰이 이를 악용해 무분별하게 DNA를 채취해왔다고 비판해왔다. 검찰은 정부‧대기업과 분쟁에서 기소돼 유죄선고된 사회적 약자에게도 강력범죄자라는 이유로 DNA 채취를 시도했다. 2011년엔 용산참사 유족, 쌍용차 노조원이 강제로 DNA를 채취당했다. 2013년엔 한진중공업 구조조정 저지를 위해 고공농성했던 김진숙씨, 2015년엔 장애인단체 활동가 문아무개씨, 한국GM 노조원 등이 채취를 요구받았다.

헌법소원을 낸 측도 노사분규를 겪은 구미 KEC노조(금속노조 KEC지회)와 대형쇼핑몰을 점거한 민주노점상전국연합 구성원들이다. KEC지회 조합원 48명은 2015년부터 2년간 강제로 DNA를 채취당했다. 이들은 2010년 노사분쟁 중 직장폐쇄로 출입금지된 공장을 점거해 건조물 침입 등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노점상연합 회원들은 2013년 서울 구로구 한 아울렛이 인근 노점을 철거하자 항의하려고 건물 안에서 집회를 했다. 이들은 폭력행위처벌법상 집단주거침입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판결 뒤 영장을 발부받아 이들의 DNA시료를 채취했다.

지난 23일엔 한신대 학생들이 수원지검으로부터 DNA시료채취를 요구받아 논란이 됐다. 이들은 2015년 학교 당국의 비민주적 운영과 총장비리를 폭로하며 교내 농성에 돌입해 법원에 넘겨졌다.

DNA법은 살인‧강간 등 강력범죄자의 재범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로 2010년 7월 시행됐다. 법무부는 당시 아동‧청소년 상대의 성폭력 범죄, 강간 및 추행, 살인, 조직폭력, 마약 등을 거론하며 ‘강력범죄자 DNA를 저장해 미제사건을 해결하고 유사사건 때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며 필요성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