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주 무죄 판사 “공산주의자 개념 하나 아냐”

[판결문]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당부 판단 유보하고 공론장으로 넘겨… “공산주의자, 北 유화 정책 주장하는 사람에도 써”

2018-09-01 14:45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김경진 판사는 “적폐 판사”라는 비판을 들었다. 다른 쪽에선 “대한민국을 구한 판사”라고 평한다. 김경진 판사는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발언으로 명예훼손 재판에 넘겨진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게 지난달 23일 무죄를 선고했다.

고 전 이사장은 “사법부가 좌파 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에서 편파 판결이 많았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바로 섰으면 한다. 다른 판사들도 용기를 내줬으면 좋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검찰은 ‘공산주의자’ 발언에 “공론장에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 악의적 발언”이라며 지난달 27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이번 형사 1심과 지난 민사 1심 결과는 달랐다. 지난 2016년 9월 법원은 문재인 대통령(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이 고 전 이사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명예훼손 혐의를 인정해 3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고 이사장이 당시 발언한 강연의 전체 내용과 흐름, 사용 어휘 등을 고려하면 다소 과장된 정치 수사를 넘어 명예훼손적 의견을 단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봐야 한다. 문 전 대표 명예를 훼손하고 인격권을 침해한 불법 행위”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형사재판을 맡은 김경진 판사는 어떤 이유로 고 전 이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걸까.

▲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사건은 2013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 전 이사장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회의장에서 열린 ‘애국시민사회진영 신년하례회’에서 다음과 같은 취지로 발언했다. 

“문재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부림사건 변호인으로 활동하면서 부림사건 관련 인맥이 됐다. 노무현 정권 하에서 청와대 비서실에 근무하면서 제가 검사 시절 부림사건을 담당하는 등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려고 한 것에 불만을 품고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 부림사건 관련 인맥은 전부 공산주의 활동을 하던 사람이기 때문에 문재인도 공산주의자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건 시간 문제다.”

부림사건은 1980년대 전두환 군사 정권의 대표 용공 조작 사건이다. 부산 지역 독서 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해 불법으로 감금, 폭행, 고문하고 공산주의자로 조작했다. 지난 2014년 재심사건 상고심에서 피해자들은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2013년 신년하례회에서 나온 고 전 이사장 발언은 사실관계가 잘못됐다. 문 대통령은 부림사건 당시 변호인은 아니었다. 1999년 부림사건 피해자들이 재심을 청구할 때부터 관여했다. 

김경진 판사는 판결문에서 “(고 전 이사장 발언이) 1982년 부림사건 변호인이었다는 건지 재심 당시 부림사건 변호인이었다는 건지 구체적으로 특정한 적 없을 뿐 아니라 부림사건 변호인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문재인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하시키는 내용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고 전 이사장은 신년하례회에서 “노무현 정권 하에서 5년 동안 내내 핍박 받다가 검사장직을 그만뒀다”고도 주장했다. 문 대통령이 노무현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하면서 고 전 이사장에게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주장인데, 김 판사는 이 역시도 “발언 자체만으로 문재인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가 침해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구체성을 띠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김 판사는 “문재인이 과거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던 점을 보면 공안 분야에 관해 종전과 다른 시각을 가진 새로운 인재를 희망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부당하다거나 잘못됐다고 볼 수 없다”며 “부림사건 수사 및 공판에 관여했을 뿐만 아니라 27년여의 검사 생활 중 오랜 기간을 공안 업무에 종사해왔기에 구 정권 하의 공안 세력을 비칠 수 있는 고영주에 대해 인사상 부정적 의견을 제시한다는 것이 인사 검증에 관여하는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만한 내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고 전 이사장은 참여정부로 정권이 바뀔 시기 광주고검 차장검사였다. 2003년 3월 대구고검 차장검사로 발령이 났다. 그 다음에 ‘청주지검 검사장’을 지냈고 2004~2005년까지 ‘대검 감찰부장’을 역임했다. 2006년 1월 ‘서울남부지검 검사장’을 끝으로 검찰에서 퇴직했다. 핍박 받았다 하기엔 지검장, 대검 감찰부장, 검사장 등 주요 자리를 두루 거쳤지만 고 전 이사장은 기자에게 “동기들과 비교하면 (핍박 근거를) 확인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검사장 17여 명이 떠났고, 동기들은 3~4칸 영전을 거듭했다”고 말한 적 있다. 자신은 좌천됐다는 얘기다.

판결 가운데 논란이 된 것은 ‘공산주의자’ 대목이다. 김경진 판사는 한 사람이 공산주의자인지 여부는 “판단하는 사람 가치관에 따라 상대적이며 평가의 옳고 그름을 증거에 의해 증명할 수도 없다”면서 판단을 전면 유보했다. “분단국가인 대한민국 사회에서 ‘공산주의’라는 용어는 북한과 연관 지어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우리사회에서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은 ‘북한의 정치인’, ‘북한 정권과 내통하는 사람’ 등 북한과 긴밀하게 연관된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북한 정권에 우호적인 사람’, ‘북한 정권에 유화적인 정책을 주장하는 사람’, ‘북한 정권의 주장이나 노선과 같거나 유사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 등을 부정적으로 이를 때 사용되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반드시 ‘북한식 주체사상이나 유일 영도 체제를 추종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2017고단4933 사건 판결문 中)

▲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김 판사는 “공산주의나 공산주의자가 갖는 사회적 의미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공산주의자가 일반적으로 북한과 연관 지어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는 사정만으로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이 허위·진실 여부를 증거에 의해 가릴 수 있을 정도로 확정적 의미를 갖는 ‘사실의 적시’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김경진 판사는 “우리 사회가 이론의 여지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의적 ‘자유민주주의’나 ‘공산주의’ 개념이 존재하는지, 나아가 그와 같은 개념 정의가 가능한지 의문”이라며 “그와 같은 정치적 사상과 견해는 그것이 배태되고 성장하는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산주의 혹은 공산주의자 발언 당부를 위해선 하나의 개념 정의를 통한 판단이 필요하지만 사실상 공산주의 개념 정의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고 전 이사장 발언을 ‘사실 적시’가 아닌 ‘의견 표현’으로 본 이유다. 

하지만 이런 판단에 비판이 뒤따른다. 판사 출신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선고 직후 “이 판결은 형법상 명예훼손 사건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사실’에 관한 대표적인 케이스인데 김경진 판사는 사실관계를 중요하게 보지 않았다. 김 판사는 본인 의견에 터 잡은 주관적 결론을 냈다”며 “남북이 전쟁을 치르고 오랜 냉전 유물을 간직한 우리 사회에서 ‘공산주의’와 ‘적화’라는 단어가 일반 국민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지가 핵심인데 (김 판사는 여기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경진 판사는 판단을 시민에게 넘겼다. 김 판사는 “고영주 발언에 담긴 견해에 대한 옳고 그름 판단도 모든 시민이 사회적 공론장에서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해 상호 검증과 논박을 거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렇게 해야 가장 잘 이뤄질 수 있다”며 “결국 정치인과 같은 공적 인물 평가는 일반 국민들 각자에 의해 이뤄질 수밖에 없다. 형사법정에서 개별 정치인 사상, 세계관, 정치 철학 성격을 규정짓는 건 능력과 권한을 넘는 일”이라고 했다. 

김 판사는 “우리 사회가 현재 위치까지 진전할 수 있었던 것도 시민 개개인 목소리를 자유롭게 풀어줘 표현의 자유를 보호해준 것에 힘입은 바 크다”며 ‘표현의 자유’를 강조했다. 이어 그는 “고영주가 문재인을 악의적으로 모함하거나 모멸적 표현으로 인격적 모욕을 주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오히려 자신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라고 믿어온 체제 유지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