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라인 경찰서 도는 ‘날다람쥐’ 수습, 희형의 12시간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수습기자의 하루 上

2018-09-03 08:41       박서연 기자 psynism@mediatoday.co.kr

[편집자주] 지난 7월부터 주당 최대 52시간 근무제도가 도입되며 언론계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수습기자들의 노동환경이다. 수년 전만 해도 수습기자들은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경향신문은 2015년 1월26일 자 ‘달려! 2030’ 지면에서 수습기자의 일상이라며 새벽 4시30분부터 다음날 새벽 1시40분까지 일하는 모습을 담았다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수습기자들의 노동실태는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였다.

언론사에 갓 입사한 수습기자들은 사건팀의 각 라인에 배속돼 오전 6~7시 첫 보고를 시작으로 하루를 넘긴 다음 날 오전 1~2시 마지막 보고까지 1진 혹은 2진 선배들에게 한두 시간 단위로 보고해왔다. 이 같은 ‘사쓰마와리’(경찰서를 돌며 취재한다는 뜻의 언론계 은어)는 한국 사회에서 기자의 상징과 같다. 수습기자가 가장 먼저 경험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주당 최대 52시간 근무제도 도입 이후 수습기자들의 일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미디어오늘이 따라가 봤다.

조희형 MBC 수습기자

▲ 조희형 MBC 수습기자가 지난달 17일 오전 7시20분에 용산경찰서로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사진=박서연 기자

“보통은 화장도 못 하고 비몽사몽으로 나오는데 오늘은 제가 취재원이 된다는 소식에 눈썹을 그리고 나오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조희형 MBC 기자입니다.”

8월17일,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에서 중부라인 경찰서를 출입하는 조희형 MBC 수습기자를 만났다. 조 기자는 수년 만에 진행된 MBC 공채에서 신입기자로 입사해 6월25일부터 8월24일까지 2개월간 사쓰마와리를 돌았다. 조 기자는 이 두 달간 단 하루도 경찰서에서 잔 적이 없다. 경찰서에 마련돼있던 2진 기자들의 숙소 이용률은 점차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MBC는 7월1일부터 주당 최대 52시간 근무 도입에 맞춰 수습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는 법적 유예기간에 따라 주당 최대 68시간 근무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MBC는 올해 뽑힌 수습기자 교육부터 하리꼬미(밤새 경찰서를 돌며 취재한다는 뜻의 언론계 은어) 교육을 폐지하고 사쓰마와리 교육만 하고 있다. MBC 수습기자 8명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하루 10시간 일하고 있다. 주 6일에 10시간을 곱하면 총 60시간이다.

조희형 기자는 어제저녁 퇴근 후 밥을 먹자마자 씻지도 못하고 잤다. 수습일지 작성과 4개 방송사 뉴스 모니터링, 단신 15개 쓰기 등 숙제가 산더미지만 쏟아져 내리는 눈꺼풀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일단 잠부터 청했다. 새벽 4시경에 겨우 일어나 숙제를 했다. 선배들은 경찰서에서 자지 않고 집에 가는 게 어디냐고 하지만 수습 생활은 역시 고단하다.

▲ 잠이 덜 깬 조 기자가 택시에 오르자마자 밤사이 사건 사고가 있었는지 확인하려고 용산소방서와 중부소방서에 전화하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AM 7:20 집 앞을 나서다

오전 7시. 숙제를 겨우 마쳤다. 20분 만에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택시에 오른다. 오전 8시까지 용산경찰서에 가려면 택시를 타야 한다. “안녕하십니까. MBC 기자 조희형이라고 합니다. 밤사이 사건 사고 있었는지 확인하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도 쉴 겨를이 없다. 하루 택시비만으로 보통 5만 원 정도 쓴다. 아침밥은 사치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잠을 깨는 게 아침밥보다 좋다. 경찰서에서 아침을 먹는 경찰들 옆 한 귀퉁이에 자리라도 나면 사건 이야기라도 조금 들을까 싶어 겨우 한술 뜨는 게 고작이다.

▲ 조 기자는 용산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형사당직실을 방문했다. 사진=박서연 기자

AM 7:50 용산서 형사당직실

오전 7시50분. 용산경찰서 형사당직실을 찾았다. 굳게 닫혀있는 철문 사이로 작은 창구에 머리를 들이민다. 지난밤 사이 사건 없었냐고 물어보지만, 오늘도 당직 형사의 표정은 한없이 무표정하다. “별일 없어요. 있어도 말 못 하는 거 알면서 뭘 물어요.” 오전 8시, 경찰서 민원실에 갔다. 업무도 시작하기 전이라 담당자들은 차갑기만 하다. “오전 9시에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민원 들어왔냐고 벌써 와서 물으면 어떡해요.” 조 기자는 핀잔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계속 질문한다. 민원실 경찰들도 꿋꿋이 답하지 않았다.

민원실을 나와 주차장을 배회하는데 한 수사관이 아는 척을 해온다. “예전과 비교해 수습기자 노동환경이 확실히 달라졌다. 예전엔 한밤중에 꾀죄죄하게 경찰서 입구에 앉아있었는데….” 조 기자는 곱게 다린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나왔다. 선배들은 방송기자는 깔끔하게 입고 다녀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습기자는 경찰서에서 먹고 자니 후줄근해도 이해해 줘야 한다는 건 이젠 옛말이다. 정장 바지 사이로 땀이 차오른다.

▲ 조 기자가 경찰들에게 사건을 얻기 위해 뒤를 쫓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매번 바쁘다며 만나주지 않던 경찰서 과장을 겨우 만나러 왔다. “올해 초 수습기자의 하리꼬미 교육이 이뤄질 땐 새벽에도 수차례 전화가 왔어. 다짜고짜 문서를 달라고 해 곤란한 일도 많았지.” 과장은 조 기자에게 커피를 타 주며 안되는 걸 알면서도 억지로 사건 자료를 가져오라고 윽박지르는 선배들의 교육 관행은 바뀐 게 없다며 혀를 찼다. 그래도 최근 하리꼬미가 없어져서인지 새벽 전화에 잠을 설치는 일은 줄었다고 말했다.

용산경찰서를 30분 동안 쏘다녔지만 별 소득이 없다. 쉬지 않고 계속 연락하고 연락받다 보니 보고 시간이 임박해온다. 조 기자는 서둘러 택시를 잡는다. 용산경찰서에서 조금이라도 보고할 게 생겼냐는 기자의 질문에 “없지요”라고 답하면서도 보고 거리를 정리하는 손이 분주하다.

오전 8시45분. 중부경찰서 앞에 순찰차 4대가 출동해 있다. 사건을 직감한 조 기자는 순찰차가 몰려 있는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편의점 앞에 모여 있는 경찰관들을 붙잡고 무슨 사건이냐고 물어보지만 역시나 “대답해 줄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결국 사건은 형사과에 접수된다. 조 기자는 경찰서로 들어가 가방을 던져두고 수첩과 핸드폰만 챙긴 채 형사과를 찾았다. 굳게 가로막힌 형사과 문 너머로 술에 취한 남성이 난동을 부리고 있다. “저 주취자 분 혹시 편의점에서 난동 부려서 오신 거예요?” 조 기자가 쇠창살 사이로 경찰에게 외치듯 물어보지만, 반응은 냉담하다.

형사과에서 매몰차게 쫓겨난 조 기자는 잠시 멈춰 서더니 무언가 중얼거린다. 두 손을 모으고 입을 옹알거리는 조 기자에게 뭐 하는 거냐고 물었다. “기를 모으는 거예요.” 일상에서 맛보지 못했던 냉대에 조 기자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물어볼 내용을 정리하고 스스로 자신감을 북돋웠다.

▲ 조 기자는 중부경찰서 앞에 주차돼있던 순마를 발견하고 차 안에 있는 경찰에게 취재를 시도했다. 사진=박서연 기자

AM 10:00 사건 보고

조 기자는 경찰서 안을 돌며 30명이 넘는 경찰과 인사를 하며 편의점 주취자 사건을 알아내려 고군분투했다. 오전 9시30분. 어느새 보고시간이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조 기자는 무언가 결심한 듯 편의점으로 향했다. 마실 것을 사는가 싶더니 편의점주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물었다.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고 당당히 묻는 조 기자에게 편의점주는 의외로 순순히 주취자가 난동을 벌였다며 털어놨다. 한바탕 설득한 끝에 CCTV 영상으로 사건 당시 상황까지 확인했다. 기사가 될지 묻자 조 기자는 고개를 젓는다. 그래도 일단 선배에게 보고하는 게 우선이다.

▲ 취재가 잘되지 않자 조 기자는 30분 넘게 경찰서 주차장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 열심히 무언가를 적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오후 12시. 보고를 마친 조 기자는 점심을 먹기 위해 경찰서를 나섰다. 조 기자는 모둠 돈가스가 나오는 20분 동안 겨우 숨을 돌렸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거절당하는 일은 처음이었어요. 저를 보기만 해도 싫어하고 도망가고…. 이제는 적응이 됐다고 해야 하나. 저라도 귀찮을 거 같아요.”

조 기자는 돈가스가 나오자 숨도 안 쉬고 먹었다. 기자가 겨우 4조각을 먹을 동안 조 기자는 접시를 비우더니 가방을 챙겨서 일어났다. 10분 만이었다. 공식적으로는 1시까지 점심시간이지만 오후 2시에 또 보고하려면 한 시간 동안 밥 먹는 건 어림도 없다.

▲ 조 기자는 오후 12시55분 용산경찰서 앞 카페에 도착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지만, 40분 넘게 전화 취재를 하느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사진=박서연 기자

PM 12:55 용산서 도착

오후 12시55분. 용산경찰서에 도착했지만, 아직도 편의점 취재 건이 찝찝하다. 경찰서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급히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조 기자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바깥 테라스에 앉아 선배에게 취재한 내용을 보고했다. 시켜놓은 아메리카노에는 입도 대지 못한 채 수첩과 전화기만 붙잡고 30분 넘게 전화를 이어갔다. 조 기자는 회사로 들어오라는 선배의 지시에 또 바삐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시지 못한 아메리카노만 자리에 남았다.

PM 2:00 사건 보고

오후 2시5분. 상암 MBC 사옥에 도착했다. MBC 수습기자들은 경찰서 취재를 하는 중간중간 사내 교육을 받는다. 선배들에게 단신 쓰기, 리포트 작성, 기사작성 프로그램 사용법 등을 배우는데 오늘은 오디오 교육을 받는 날이다. 보이는 선배마다 누군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쉼 없이 인사한다. 보도국에 수습기자가 나타나니 시선이 집중됐다.

▲ 조 기자는 MBC 상암 사옥에서 20년 차 베테랑 아나운서인 차미연 선배에게 오디오 교육을 받았다. 사진=박서연 기자

PM 2:30 오디오 교육

조 기자는 하던 일도 멈추고 관심을 보이는 선배들에게 연신 인사를 하며 오디오 실로 향했다. 조 기자는 “선배께 교육받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에요. 회사 안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교육을 받는 건 경찰서 취재에 비하면 정말 편하죠.”라며 웃었다. 오디오 교육은 20년 차 베테랑 차미연 아나운서가 담당했다. 오후 2시30분부터 4시까지 약 1시간 30분에 걸쳐 오디오 교육이 이뤄졌다. 조 기자는 “목소리는 잘 들리는데 발음이 부정확하다. 복식호흡을 더 연습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 오디오 교육이 끝난 조 기자가 MBC 상암 사옥 앞에서 1진 선배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PM 4:30 중부서로 출발

교육이 끝났다고 선배에게 보고한 뒤 조 기자의 표정이 어둡다. 종일 취재했지만, 오늘도 지적받은 내용이 산더미다. 편의점 CCTV 영상에서 앞뒤 상황을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 편의점 주인은 경찰이 술에 취한 남성을 말리지 않았다고 했지만, CCTV 영상 뒷부분엔 경찰이 남성을 제지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편의점 주인 말대로 기사가 나갔다면 오보다.

오후 4시30분경 다시 택시에 올라 중부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 앞엔 서울신문 수습기자도 와있었다. 바삐 움직이는 조 기자의 모습에 서울신문 수습기자가 주위를 살핀다. 수습기자들끼리는 서로의 처지에 공감하면서도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다른 매체에 사건 놓치기만 해봐라.” 조 기자는 선배의 엄포가 귓가에 맴돈다고 했다.

▲ 조 기자가 동기들의 단체대화방을 확인하며 웃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오후 7시. 보고 준비를 마친 조 기자는 잠시 동기 단체대화방을 확인하며 환하게 웃었다. 처음 보는 진짜 미소였다. “오늘 본 모습 중에 가장 행복한 모습이다. 동기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길래 행복한 웃음을 짓느냐”고 묻자 “동기들끼리 일과를 공유하는데 서로 자기가 어떤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자책하고 위로하면서 힘을 낸다.”고 말했다.

▲ 조 기자는 오후 8시15분 선배에게 퇴근 지시를 받은 후 집에서 나온 지 14시간 만에 귀가했다. 사진=박서연 기자

PM 8:15 퇴근 지시

수습기자 교육방식은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지만 조금씩 ‘인간적’으로 바뀌고 있다. 적어도 조 기자는 과거 선배들과 달리 집에 들어가 잠을 청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당연히 바뀌어야 할 변화였다. 그리고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오후 8시15분. 용산경찰서에 도착한 조 기자에게 퇴근 지시가 떨어졌다. 조 기자는 뛸 듯이 기뻐했다. 다음날은 일주일 중 하루를 쉴 수 있는 꿀 같은 토요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