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이라는 이름의 탁아소(託兒所)

[신채용의 史臣曰]

2018-09-08 11:11       신채용 역사학자 media@mediatoday.co.kr

“늙은이와 장년의 시체가 골짜기를 메우고 처자(妻子)가 서로 이별하며, 호구(戶口)가 줄어듦에 군액(軍額)이 줄어들어 나라의 근본이 약해져 국세(國勢)가 위태로워지게 되었으니 식자(識者)들이 그것을 보고 어찌 크게 탄식만 할 뿐이겠는가. 눈물 흘리며 통곡해 마지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요역과 세금을 가볍게 하여 백성들을 편하게 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고 승려들의 불편만 염려하고 있으니.” 이 말은 명종 7년(1552년) 5월29일 수렴청정하던 문정왕후(文定王后) 파평윤씨(坡平尹氏)가 왕실의 안위를 위해 내원당(內願堂)으로 지정한 사찰의 승려들을 잡역(雜役)에서 제외시키고 그 부담을 모두 백성에게 돌리게 한 것에 대한 사관의 논평이다.

문정왕후의 파평윤씨를 대표로 하는 집권 훈구세력은 고려 말 기득권 권문세족의 후예들이라서 애초 조선왕조 건국이념이던 성리학적 개혁을 요구하던 사림파들이 못마땅했다. 그러한 반감이 이미 90여 년 전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로 터져 나왔다. 이후 권문세족의 후예들은 연산군에 의해 한 차례 타격을 입었지만, 중종반정으로 다시금 권력의 기틀을 마련한 뒤 기묘사화를 일으켜 집권 기반을 더욱 굳건히 해 나갔다. 당연히 세종대왕이 추구했던 성리학 이상사회는 무너지고 불교가 중흥했다. 대표적 유적이 바로 세조가 국력을 쏟아 부어 조성한 원각사지 10층 석탑이고, 제도적으로는 문정왕후에 의한 승과(僧科)의 부활이었다. 문정왕후는 유생들이 절에 가서 성리학 경전을 읽던 상사독서(上寺讀書)를 금지했고, 전국의 유명 사찰 79개소를 지정해 왕실의 내원당으로 삼았으며 이들의 권위를 위해 뭇 잡인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금표(禁標)를 세우기도 했다.

주자성리학을 국가이념으로 삼아 건국된 조선왕조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건국이념이던 성리학이 아직 백성들의 삶까지 정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종 때 집현전을 중심으로 성리학 이해가 진전되면서 국가의 기틀이 잡혀갔지만, 계유정난으로 단절되었다. 조광조가 나와 소학과 향약의 보급을 추진했지만 이 또한 집권세력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중단되었다. 집권세력은 불교문화에 익숙한 고려 말 권문세족이었고, 백성들 또한 천년전통의 불교문화에 익숙한 나머지 성리학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대한민국은 국민들 저력으로 경제적 선진국 반열에 올라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과연 30~40여 년 전보다 행복할까? 과거 8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었다. ‘북한 어린이들은 엄마 아빠가 모두 일하러 나가기 때문에 탁아소(託兒所)에 맡겨져 불쌍하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필자의 자식들이 모두 어린이집이라는 이름의 탁아소에 맡겨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 달에 한 번 아버지의 월급날 만 외식해도 행복했다. 하교 후에는 집에 오면 곧장 가방을 내 던진 채 마당과 골목에서 뛰어 놀았고 해질녘이 되면 밥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에 집으로 달려오기도 했다. 지금의 아이들은 뛰어 놀 시간도 공간도 없다. 그저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원버스에 실려 다니며 하루를 보낼 뿐이다.

▲ 8월24일 오전 한 학부모가 자녀와 함께 정부세종청사 부근 어린이집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무엇 때문인가. 여성의 사회진출의 증가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또 그것을 반대할 이유도 없다. 바로 경제적인 이유이다. 그것도 가장 부담이 되는 주거비 때문에 대다수 맞벌이 부부들은 자녀를 탁아소에 맡긴다. 아빠든 엄마든 둘 중 한 명만 경제 활동을 해서 주거비와 육아의 부담을 이겨낼 수 있다면 누가 아이를 종일반 탁아소에 맡기며 사설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리겠는가.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은 단체생활 때문에 항생제를 안 먹을 수 없다. 부모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건축비를 아끼기 위해 ‘벽식’으로 설계된 닭장과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층간소음에 시달리고, 직장 생활과 육아 및 대출금 이자의 금리 걱정으로 이만저만이 아니다. 술 마시면 싸움이 안 날 수 없으며 병에 안 걸릴 수 없는 환경이다.

우리 아이들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가 아니라 서울의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가서 어떤 직업을 갖느냐가 더 중요한 가치로 교육받고 있다. 사실 그것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자금 대출부터 전세자금과 주택자금 대출까지 대한민국 20대의 삶은 빚과 함께 시작되고 있다. 빚이 평생의 반려자인 셈이다. 이런 세상에서 누가 결혼하고 자녀를 낳으려 할까. 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산다. 개발과 교통난 해소라는 미명을 내세워 수많은 명산(名山)에 회복 불가능한 터널을 뚫고, 경기도 전역의 땅 속까지 파헤친다. 국토가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그 대가가 바로 싱크홀이라는 인재(人災)로 나타나는 것 같아 불안하다. 수도권 개발을 지양하고 지방의 발전이라는 국토의 균형개발을 추진했다면 어떠했을까. 서울 주변의 신도시들이 언제고 유령 도시가 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으니. 그것의 시작은 무책임한 인허가로 난립한 대학에서부터다. 잘못된 교육제도와 대출금 상환에 온 국민의 힘이 소진되는 사회에서 근본을 외면한 채 겉핥기식 정책에 예산만 쏟아 부어서는 출산율 증가를 절대 기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