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안보지원사, 국정원 개혁 실패 정확히 따라가”

“불법 행위자 징계 등 적폐청산 아직 멀어”… 군인권센터 “간판만 바꿔 달아, 수사권 없애야”

2018-09-05 09:55       강성원 기자 sejouri@mediatoday.co.kr

“국군기무사령부 수사관들이 미행, 캠코더 촬영 등의 방법으로 (민간인의) 사적 활동에 대한 동향을 감시·추적하고 거주지, 출입 시각 등 사적 정보를 수집하는 등의 사찰행위는 기무사의 직무범위를 일탈한 것으로서 (피해자의)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를 침해했으므로 위법하다.”

지난 2012년 9월13일 기무사의 민간인 불법사찰 행위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문 중 일부다. 2009년 8월 초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기무사 대원들이 집회 참가자들을 불법사찰하다 발각된 후 캠코더 영상에 찍힌 피해자들은 국가(법무부 장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기무사 대원들이 직무범위를 일탈해 민간인에 대한 정보를 불법으로 수집하고 있었음이 사법부 판결로 확인됐지만, 이 행위에 가담한 대원을 비롯해 책임자 누구도 처벌은커녕 징계조차 받지 않았다. 외려 쌍용차 집회 현장에 투입돼 민간인을 사찰하던 기무사 소속 신근섭 대위는 자신과 관련된 재판을 받는 동안 2010년 4월 소령으로 승진했다. 군인권센터 확인 결과 신 대위는 최근까지 기무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민간인 불법사찰 대원, 승진 후 기무사 계속 근무

당시 기무사 방첩처장이었던 이봉엽 전 기무사 참모장(예비역 소장)도 2009년 기무사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민주노동당 당직자를 촬영한 적이 없다”고 위증했지만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현재 그는 지난 2009년부터 2013년 초까지 인터넷 댓글 부대를 운영하며 특정 정치인 등에 대한 비난·지지 활동을 해온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지난 2009년 기무사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이봉엽 당시 기무사 방첩처장. 사진=2010년 12월14일 방송된 MBC PD수첩 ‘기무사 민간인 사찰, 그날의 진실’ 편 갈무리.
기무사의 불법사찰 범죄 행위가 드러난 후 책임자들을 제대로 처벌·징계하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다. 그때도 기무사는 정당한 공무집행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내부 결속을 다졌다. 이렇게 쌓인 적폐는 결국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 작성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불렀다.

문재인 대통령의 기무사 해편 지시 후 지난 1일 새로 출범한 군사안보지원사령부(사령관 남영신)은 계엄령 문건 작성, 세월호 유가족 등 민간인 사찰, 댓글 공작 개입의 3대 불법행위 관련자 240여 명이 각 군으로 원대복귀 조치됐다고 밝혔다. 지난 정부에서 기무사의 3대 불법행위를 주도했던 일부 간부들만 현재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을 뿐이다.

최근 기무사와 같은 국방부 직할 정보부대의 수사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군사법원법’과 ‘국군조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더불어민주당 국방위원회 소속 김병기 의원은 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기무사 정원 30%를 감축한 안보지원사로의 개혁은 절반의 성공일 뿐”이라며 “지금 단계에서 시급한 일은 인적 구조의 변화”라고 강조했다.

3대 불법행위 관련자를 포함해 750여 명을 원대복귀하고 안보지원사 정원을 4200여 명에서 2900여 명으로 감축한 것도 의미가 있지만, 과연 30%를 제대로 골라냈는지, 남아 있는 사람으로 개혁이 이뤄질 수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누적된 기무사 적폐, 청산 때까지 타협 안 된다”

김 의원은 “이전 정권에서 기무사에 근무했던 이들이 안보지원사에 남아서 과거의 (정치개입 등)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지금부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지난 정권에서 누적된 적폐청산과 개혁을 한꺼번에 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고 단계별로 이번 정권 내내 이룬다는 생각으로 절대 물러서거나 타협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김병기 의원실 제공
안보지원사가 출범하며 정치개입과 민간인 사찰 등을 엄격히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운영 훈령을 공개했지만 김 의원은 “선언적 규정만 바꿔서는 지난 30년간 국정원 개혁의 실패 사례를 정확히 따라가는 것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민간인 불법정보수집활동 금지 등의 당연한 내용을 훈령에 명문화해 넣었을 뿐 수사권과 신원조사 등 임무 기능은 거의 고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수사권과 함께 장군과 장군이 되려는 고위 영관급 장교(대령)에 대한 신원조사권을 갖는 건 권한을 다 갖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정보수집권도 작성과 배포 권한을 인사사령부에 넘기든지 공유함으로써 월권이나 비정상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그동안 기무사 개혁을 위해선 기무사에서 수사 기능을 분리해 헌병 등에 이전해야 한다고 역설해 왔다. 지난달 29일엔 국회에 ‘군사법원법’ 등 개정안을 제출하며 “정부의 개혁 노력에도 기무사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돼 온 수사권 문제는 다뤄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일단 안보지원사에 대한 복수의 관리·감독을 꾸준히 할 수 있도록 국회의 상시 감독과 함께 감사원이 아닌 국방부로부터 독립된 제3의 기관의 감사 기능을 확보해야 한다”면서 “점차적 신원조사를 포함해 국정원에서 경찰로 대공수사권을 이관하는 시점에 맞춰 기무사 수사권도 헌병 등 기관으로 이관해야 한다”며 말했다.

지난 1일 경기도 과천 군사안보지원사령부(옛 국군기무사령부)에서 열린 부대 창설식에서 남영신 초대 군사안보지원사령관이 거수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기무사 해체 이후 관련 조직이 방첩 임무만을 담당하고 보안과 군 관련 정보 수집이나 처리, 군 인사 감찰, 각종 정책 지원 기능은 폐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던 시민사회단체들도 이번 안보지원사 출범은 간판만 바꿔 달았다는 비판적 입장이다.

“수사권 헌병에 이관, 정보수집 업무 한계 명시해야”

김형남 군인권센터 정책기획팀장은 “불법 행위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어렵다면 징계하고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해야 하는데 징계도 없이 기무사 간판만 바꿔 달고 그동안 기무사에 있던 사람들이 안 입던 군복만 입는다고 위세는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문 대통령이 3대 불법행위 가담자를 원대복귀시키라고 한 것이 마치 처벌인 것처럼 포장돼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김 팀장은 “기본적으로 해외 첩보기관을 보면 수사권을 가진 곳이 거의 없다. 정보수집 권한은 타인의 사생활을 공적 목적에 따라 침해할 수 있는 권한인데 여기에 수사권까지 더하면 너무 많은 힘이 실리게 된다”며 “대공 정보 수집은 기무에서 하더라도 인지된 수집 정보에 따라 위법·간첩·쿠데타 모의 행위 등 첩보가 인지되면 헌병에 정식 수사를 맡겨 빠르게 구속하고 수사하게 하다면 된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군 통신에 대한 안보지원사의 포괄적 감청 권한 문제도 정보수집권과 수사권을 같이 주지 말아야 한다는 메커니즘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집한 정보가 위법한 사실들에 해당하지 않는 정보면 이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어떤 권한도 주면 안 된다”며 “군사안보지원사령부령과 훈령 어디에도 정보 활용을 통제하는 구체적 규정이 나와 있지 않은데 정보를 수집하고 가공 활용하는 전반의 업무 과정을 세세하게 법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앞서 남영신 사령관은 “(군인과 군무원의) 동향 관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권한이었다”며 “기존 존안 자료는 시간을 두고 검토해 이관할 것은 기록물 보관소로 이관하고 수사에 필요한 것만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