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뢰에 활주로 손상 ‘의무보고’인데 노동자가 맞으면?

김포공항, 8월 말 계류장 감전사고 2건 연속 발생… “공항·항공사·조업사 총체적 방관” 쓴소리

2018-09-05 15:36       손가영 기자 ya@mediatoday.co.kr

지난 8월 말 폭우 때 대한항공 원·하청 노동자 4명이 김포공항에서 야외작업 중 감전돼 응급실로 잇따라 후송됐다. 공항 조업노동자들은 ‘공항·항공사·조업사 모두가 계류장 안전을 방관한 결과’라 입을 모은다. 정확한 사고경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오후 5시 경 한국공항(대한항공 지상조업 자회사) 직원 A씨가 김포공항에서 출발하는 부산행 KE1121편 조업 중 몸에 전류가 흘러 현장에서 쓰러졌다. 28일 한국공항 직원 B·C씨와 대한항공 정비사 D씨가 감전돼 응급실로 긴급 후송된 지 불과 하루 만이다. 이들은 감전 직후 의식을 차리지 못하거나 구토·두통 증세를 호소했고 당일 응급실에서 퇴원했다.

▲ 낙뢰 자료사진(ACRP Report 8 표지 중). ⓒACRP Report 8 : Lighting-Warning Systems for Use by Airports

피해자·목격자 증언을 종합하면 재해자 모두 비행기 푸쉬백(이륙 전 비행기를 견인차로 뒤로 미는 것) 과정에서 비행기에 연결된 유선 인터폰을 쓰던 찰나에 전류가 몸에 흘러 쓰러졌다. 조업노동자는 푸쉬백 전에 기장과 인터폰으로 소통한다. 쓰러진 노동자 모두 ‘눈부신 섬광이 비치는 것을 봤다’며 낙뢰로 인한 감전사고로 보인다고 밝혔다.

사고 당일엔 호우경보가 발령됐다. 28일 김포공항 강우량은 117mm, 29일 강서구는 70mm였다. 두 사고는 특히 뇌전경보가 발령된 때 발생했다. 항공기상청은 공항기상대 기점 반경 8km 이내 낙뢰가 예상되면 지방항공청 등에 뇌전경보를 내린다. 사고 당일 근무한 한국공항 직원 E씨는 “폭우 때문에 계류장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 비행기든 바닥이든 낙뢰가 떨어지면 전류가 통하기 쉬웠다”고 했다.

“번개 때문에 ‘일 쉬어라’, 30년 간 한 번도 못 들어”

조업노동자들은 공항당국, 항공사, 조업사 모두가 계류장 안전을 방관한 결과라 입을 모은다. 관리감독이 항공기 정상 운항에만 방점을 찍고 있어, 조업사·항공사는 안전 작업 문화를 안착시키지 않았고 공항 당국은 관련 지침을 정비하지 않는 등 무관심으로 일관했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고는 사전에 작업을 중지했거나 유선 헤드셋을 쓰지 않았으면 방지할 수 있었다. 한국공항도 뇌전 경보 시 유선 헤드셋 사용을 금지한다. 그럼에도 재해자가 인터폰을 쓴 것에 대해 한국공항 직원 F씨는 “비행기가 나간다는 신호등이 갑자기 켜져 서둘러 푸쉬백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한 명은 다른 조인데도 급히 도와주러 왔다가 다쳤다”고 했다.

▲ 호의주의보·경보가 번갈아 내린 8월28일 인천국제공항 계류장 풍경.

한국공항엔 무선 헤드셋 장비가 없다. F씨는 “1~2년 전 무선 헤드셋을 산다는 얘기를 들었어나 무산됐다.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고 밝혔다.

사고 시점 뇌전경보 발령 사실을 몰랐던 조업노동자도 한둘이 아니었다. 경보가 아예 조업조에 전달되지 않았거나 전달됐는데도 직원들이 근무 중 확인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경보는 관리데스크에서 조장 무전기로 전달된다. 계류장은 비행기 소음 때문에 옆 사람과 대화도 힘들다. 사고 당일엔 폭우가 쏟아졌다. F씨는 “마음이 급한데 매일 하던대로 인터폰을 들었을 것이다. 인터폰맨은 ‘기장과는 인터폰으로 연락한다’는 지침을 외운다”고 말했다.

한국공항은 “뇌우가 발생할 위험이 있을 땐 항공기로부터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정한다. 조업노동자들이 피신하려면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 30년차 직원 G씨는 “30년 정도 근무했지만 번개치고 폭우가 내린다고 작업을 중단한 적은 없다. 비행기 시간이 안전보다 우선시 돼 어떤 악천후에서도 똑같이 작업한다”고 했다.

항공기 바깥의 노동자 안전보다 항공기 안전이 우선?

한국공항은 사고 발생 후 ‘낙뢰 발생 가능성이 높을 때 작업을 중단한다’고 한국공항노조(한국노총 연합노련)와 합의했다. 노조는 올해 단체협약에 이 조항을 넣을 예정이다. 반면 회사는 아직 정확한 사고 경위를 확인하지 않았다. 한국공항은 4일 “사고 경위를 조사했다”고 밝혔으나 재해자 중 한 명은 조사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김포공항 계류장 안전관리는 한국공항공사, 서울지방항공청, 국토교통부 관할이다. 한국공항공사는 낙뢰 사고에 “조사는 국토부가 관리한다”고 답했다. 이번 사건은 국토부에 보고되지 않았다. 국토부는 항공기 운항에 영향을 미치는 사고를 △항공기 사고 △항공기 준사고 △항공안전장애로 분류해 ‘의무 보고 사고’로 정하고 있다. 가장 포괄적인 ‘항공안전장애’엔 장비 손상, 활주로‧계류장 손상은 들어 있지만 기상악화에 따른 조업 위험은 없다. 가령 낙뢰로 활주로가 손상되면 보고해야 하지만, 조업노동자가 다치면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

20년차 한국공항 직원 H씨는 “한국 정부의 조업노동자 보호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한국 공항당국의 비상계획 매뉴얼은 대응이 필요한 자연재해로 △태풍 △호우(공항침수) △강설(항공기 운항 지장 초래) △지진 등만 규정하고 있다. 미국 교통연구회 보고서 ‘ACRP Report 65’는 기상악화를 공항이 대응해야 할 ‘비정상상황’의 한 사건으로 두고 강풍, 혹한, 낙뢰, 폭염까지 포함시켰다.

▲ 항공기 기장, 조업노동자, 공항 관리자 등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낙뢰 경보등. 위는 미국 텍사스 공항이고 아래는 홍콩국제공항 사진.

야외작업자를 위한 경보시설과 작업중지권도 보장돼있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공항은 낙뢰사고를 겪은 후 낙뢰가 공항 반경 12km 및 8km 내로 접근할 때 경고음을 무전기로 보내고 있다. 조업자가 소음으로 듣지 못할 가능성을 반영해 게이트 3개마다 낙뢰 경고등을 하나씩 달았다.

시카고 공항은 2006년 낙뢰로 68번 조업을 중단한 기록이 있다. 미국 올랜도 공항은 2006년 낙뢰로 120번 조업을 중단했다. 이 중 45분 이하로 조업을 중단한 경우는 61번이다. 홍콩국제공항은 뇌전 경보시 조업노동자들이 무선 헤드셋을 착용해야 한다고 지침으로 정한다.

비행기 수하물‧화물을 내리고 올리는 등 야외 작업을 하는 조업노동자들은 폭염·폭우·낙뢰·혹한 등 기상 문제에 그대로 노출된다. 이와 관련된 관리감독 지침은 항공안전 의무보고 운영에 관한 규정(국토부 훈령), 공항운영규정 및 공항비상계획(인천‧한국공항공사 내규), 공항 이동지역 통제규정(국토부 고시) 등에 없다.

미국 항공업계 관련 연구보고서를 내는 ACRP(Aircraft Cooperative Research Program)는 “계류장 안전은 모든 공항에서 필수적이다. 모든 상업 공항은 관리자와 계류장 직원들에게 낙뢰 위험이 접근하고 있는 것을 알리기 위한 번개 감지 및 경고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ACRP는 미국연방항공청 후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