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 도입, 연합 수습기자 하루 얼마나 달라졌나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수습기자의 하루] 下

2018-09-08 09:49       박서연 기자 psynism@mediatoday.co.kr

[편집자주] 지난 7월부터 주당 최대 52시간 근무제도가 도입되며 언론계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수습기자들의 노동환경이다. 수년 전만 해도 수습기자들은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경향신문은 2015년 1월26일자 ‘달려! 2030’ 지면에서 수습기자 일상이라며 새벽 4시30분부터 다음날 새벽 1시40분까지 일하는 모습을 담았다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수습기자들의 노동실태는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였다.

언론사에 갓 입사한 수습기자들은 사건팀의 각 라인에 배속돼 오전 6~7시 첫 보고를 시작으로 하루를 넘긴 다음 날 오전 1~2시 마지막 보고까지 1진 혹은 2진 선배들에게 한두 시간 단위로 보고해왔다. 이 같은 ‘사쓰마와리’(경찰서를 돌며 취재한다는 뜻의 언론계 은어)는 한국 사회에서 기자의 상징과 같다. 수습기자가 가장 먼저 경험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주당 최대 52시간 근무제도 도입 이후 수습기자들의 일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미디어오늘이 따라가 봤다.

임성호 연합뉴스 수습기자의 하루 

▲ 지난달 22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중부라인 수습 17일째를 맞는 임성호 연합뉴스 기자는 결의에 찬 표정이었다. 사진=박서연 기자

“오늘 저를 취재하신다고요? 허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연합뉴스 임성호 기자입니다.”

지난달 22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중부라인 수습 17일째인 임성호 기자를 만났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결의에 찬 표정으로 집을 나섰다. 임 기자 역시 MBC 수습기자처럼 입사 후 하루도 경찰서에서 잔 적이 없다.

연합뉴스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다가 통신사이기 때문에 별도의 유예기간 없이 7월 1일부터 주당 최대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앞서 보도한 MBC는 법적 유예기간에 따라 주당 최대 68시간 근무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연합뉴스도 올해 뽑힌 수습기자 교육부터 하리꼬미(밤새 경찰서를 돌며 취재한다는 뜻의 언론계 은어) 교육을 폐지하고 사쓰마와리 교육만 하고 있다. 연합뉴스는 올해 채용한 36기 수습기자 교육부터 사쓰마와리 교육을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서 운영하기로 했다. 오전반은 새벽 5시부터 오후 2시까지, 오후반은 오후 2시부터 저녁 11시까지다.

연합뉴스 수습기자는 저녁 식사시간을 빼면 총 8시간 주 6일을 근무한다. 총 48시간을 근무하고 4시간을 남겨두는 이유는 임박한 퇴근 시간에 갑작스러운 사건·사고가 일어나 연장근로를 하게 되는 날이 생길까 싶어서다. 연합뉴스 수습기자들은 아주 큰 사건이 아닌 이상 되도록 회사에서는 정시에 퇴근을 지켜주려고 한다고 했다.

▲ 임 기자는 지난달 22일 오전 11시3분 서울역 방면으로 가는 빨간 시외버스 1000번에 탑승했다. 사진=박서연 기자

AM 10:30 마두역 버스정류장

오전 10시 반. 임 기자는 집을 나섰다. 오후반인 임 기자는 오후 2시까지 경찰서로 출근하면 되지만 수습기자의 심정이 그리 편할 수 없다. 임 기자는 오전 9시면 일어난다. 일찍 나가서 취재에 필요한 사건 처리 절차와 용어들을 공부한다고 했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임 기자는 전날에도 저녁 11시에 퇴근해 1시가 다 돼서 집에 도착했고, 2시가 넘어서야 잠을 청했다. 늦게까지 잘 법도 하지만 준엄한 선배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잠이 절로 깬다. 임 기자는 자체적으로 출근 시간을 앞당겼다. 임 기자는 “그래도 아침밥은 챙겨 먹고 나왔어요. 허허”라며 경찰서로 향했다.

▲ 임 기자가 출근보다 2시간 일찍 도착해 중부경찰서 인근 커피숍에서 공부하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PM 12:15 중부경찰서 앞 카페

오후 12시15분. 임 기자는 중부경찰서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오후반 출근 시간인 오후 2시까지 선배들의 사건 기사도 찾아 읽고 수사 용어도 공부한다. 기자가 되기 위해 1년 남짓 공부했지만, 취재하면 할수록 모르는 게 산더미라고 했다. “한번은 형사들에게 하도 이것저것 귀찮게 물어보니 한 형사가 대답 대신 ‘형사수첩’이라는 팟캐스트를 들어보라고 했어요” 임 기자는 전·현직 형사들이 범인을 검거했던 사례와 전문 용어들이 많이 나와 사건 취재에 도움이 된다며 틈틈이 찾아 듣는다고 했다.

임 기자는 한창 기사를 찾으며 팟캐스트를 듣더니 가방에서 ‘형사소송법 핵심정리’ 책을 꺼냈다. 350쪽에 달하는 책을 가방에 매일 넣고 다니냐고 묻자 “공부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며칠 전, 임 기자는 서울역 뒤편에서 노숙자들끼리 시비가 붙은 사건을 취재했다. 그때 피의자 체포와 청구, 발부, 집행 등 관련 용어를 얼추 짐작해 기사를 써서 보고했다가 혼쭐이 났다. 민·형사 사건은 용어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표현이 틀리면 오보가 된다. 임 기자는 “만약에 하리꼬미를 돌았다면 수습 기간에 책을 사서 공부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을 거 같다”고 말했다.

PM 1:50 중부서 교통조사계

오후 1시 50분. 중부경찰서에 도착했다. 경찰서에 복귀했다고 선배에게 전화를 마친 임 기자의 표정이 초조하다. 연합뉴스는 통신사라 1시간마다 보고해야 한다. 2시간을 돌아도 보고 거리를 찾기 어려운 수습기자에게 1시간 보고는 2배 이상으로 벅차다. 연합뉴스는 통신사 특성상 다른 신문사나 방송사보다 많은 사건·사고를 인지해야 해서 부담감도 크다. “안녕하세요. 연합뉴스 임성호 기자입니다. 간밤에 사건·사고가 있었는지 확인하려고 왔습니다” 교통조사계를 찾아 인사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 “우리는 알려줄 수 없다”였다. 민원실 경찰들에게 물어봐도 별 소득이 없다. 임 기자의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 임 기자는 첫 보고 10분 전 보고거리를 찾기 위해 남대문경찰서를 바삐 쏘다니고 있다.사진=박서연 기자

PM 2:50 첫 보고 10분 전, 남대문서 도착

오후 2시 50분. 보고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남대문경찰서에 도착한 임 기자는 급기야 내달리기 시작했다. 형사팀과 생활범죄팀을 쏘다니며 바삐 인사하고 사건·사고가 있는지 물어봤다. 임 기자는 사건이 없다는 형사에게 이 팀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라도 알려달라며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작은 사실이라도 수첩에 열심히 받아 적고, 정 안되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라도 메모했다. 보고 거리를 끌어모으려는 마지막 발악이다.

PM 3시 첫 보고

오후 3시. 1진 선배에게 이제까지 취재한 내용을 보고했다. 임 기자는 선배와의 전화가 끝난 후 “1시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다. 시간상 경찰서를 2곳밖에 못 돌았는데 항상 너무 아쉽다. 몸이 서너 개쯤 돼서 경찰서를 동시에 돌고 싶다”고 토로했다. 임 기자는 취재시간을 1분 단위로 1초 단위로 쪼개 썼다. 단 한 순간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1시간 동안 경찰서 2곳을 돌았고 경찰서 안에서도 여러 팀에 방문하고 민원인도 취재했다. 택시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담당 라인에 있는 소방서 사건·사고 체크를 했다. 앞으로 이렇게 8시간을 더 버텨야 한다.

▲ 임 기자가 오후 3시17분 사건·사고를 찾기 위해 남대문경찰서를 나와 서울역 파출소로 향했다. 사진=박서연 기자

PM 3:17 서울역 파출소

임 기자는 남대문경찰서를 나와서 서울역 파출소로 향했다. 보통 파출소는 잘 안 가는데 사건이 너무 없다 보니 파출소라도 가야 했다. 사건이 없어서 선배에게 많이 혼났냐고 묻자 “아뇨. 정말 사건이 하나도 없었냐, 네가 못 찾은 거 아니냐고만 물어보셨어요”라고 했다. 예전처럼 보고가 부실하다고 수습기자들에게 폭언하는 문화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도 게으름을 피우는 것 같거나 취재가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면 호된 꾸지람을 받는다. 임 기자는 “다음 보고 땐 꼭 사건을 보고하라고 했어요”라며 서둘러 파출소 안으로 들어갔다.

PM 3:46 용산경찰서

오후 3시46분. 용산경찰서에 도착해 형사팀, 민원팀, 생활안전팀, 여성청소년과 등 다 돌았지만, 사건을 한 개도 건지지 못했다. 임 기자는 “진짜 보고할 게 없어서 힘들었던 날에는 쓰레기통을 뒤진 적도 있다”라고 말했다. 사건은 없지만, 어김없이 보고는 해야 한다. 오후 4시. 이번에도 사건이 없다는 말에 1진 선배는 한숨을 쉬었다.

▲ 임 기자는 오후 4시30분 취재를 위해 서울 용산구 청파동 숙명여자대학교에 들렀다. 사진=박서연 기자

임 기자는 용산구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용산경찰서에서 소득이 없자 인근 숙명여대에 취재할 게 있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오후 4시30분. 숙대에 도착해 여성 혐오 관련 대자보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취재했지만 별 소득이 없다. 임 기자는 “이제 곧 저녁 시간이 다가온다. 저녁 먹고 나면 반 이상했으니까 조금 희망이 생긴다”라며 남대문경찰서로 향했다. 형사팀을 거쳐 교통조사계만 벌써 3번째 들렀지만, 조사관은 “경미한 오토바이 사건밖에 없다”며 또 왔냐고 눈치를 줬다. 임 기자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가방에서 견과류를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 임 기자는 오후 6시47분 롯데리아 동대문점에 도착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지만, 오후 7시 보고를 위해 햄버거를 먹지 못하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PM 6:47 동대문 롯데리아

오후 6시 보고를 마치자 드디어 저녁 시간이다. 하지만 아직 기뻐하긴 이르다. 7시부터 바로 경찰서를 돌고 보고해야 하므로 다음에 갈 장소 근처로 가서 먹어야 한다. 임 기자는 다음 목표는 동대문역사공원역 인근 지구대라며 택시를 잡았다. 퇴근 시간이라 차가 막혀 오후 6시47분이 돼서야 동대문점 롯데리아에 도착했다. 저녁 식사시간이 고작 13분 남았다. 임 기자는 “6시부터 7시까지 저녁을 먹는데,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1시간을 온전히 밥 먹는 데 쓸 수 없다. 보통 김밥과 라면, 햄버거로 때운다”고 말했다.

결국, 임 기자는 더블불고기 버거 세트가 나왔지만 먹지도 못한 채 7시 보고 준비를 했다. 저녁이 되면서 담당 1진 선배는 퇴근했고, 당직을 서는 선배에게 보고해야 한다. 보고시간은 1분이라도 빠르거나 늦어선 안 된다. 섣불리 햄버거를 먹다 보고시간을 맞추지 못 할까봐 작은 감자튀김만 재빨리 씹어 삼켰다. 7시 보고를 마치고서야 마음 놓고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임 기자는 햄버거를 5분 만에 해치우더니, 태풍 대비 상황을 확인해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임 기자는 햄버거 가게를 나와서도 몇 걸음 떼지 못하고 길 위에서 1시간 동안 소방서에 전화를 돌렸다.

▲ 임 기자는 오후 8시17분 다시 중부경찰서에 도착해 형사팀을 방문했다. 사진=박서연 기자

오후 8시17분. 중부경찰서에 들어갔다. 사건을 찾아 경찰서를 헤매는데 교통조사계에 민원인들이 몰려 있다. 중부경찰서는 구조상 민원인 대기석이 경찰 조사관 바로 앞에 있다. 평소엔 경찰들이 제지해 민원인들에게 말을 걸기 어렵다. 하지만 오늘은 유독 보고가 부실하다. 임 기자가 결연히 민원인들에게 다가가 무슨 사건 때문에 오셨냐고 묻는 순간 어김없이 불호령이 떨어졌다. “저기요! 기자님! 이 사건 취재하시면 안 돼요. 아직 정확하게 진상조사도 안됐는데 한쪽 입장만 듣고 기사 쓰시면 안 된단 말입니다.” 이에 임 기자는 “기사 안 씁니다. 확인만 하는 거예요”라며 맞받아쳤다.

오후 9시30분. 남대문경찰서 형사팀에 들어갔다. 밤이 되니까 북적였던 형사팀에 사람이 3명 남짓 있었다. 형사들도 여유가 있는지 임 기자에게 조금씩 이야기를 건넸다. 몇 번을 찾아와 인사를 했지만 명함을 주지 않던 한 형사는 번호도 적어줬다. 그 형사는 “10년 전엔 수습기자들이 공중전화 부스에서도 참 많이 자고 그랬다. 경찰서에 수습기자는 많은데 잘 자리는 부족해서 공중전화에 가서 보고하다가 그 안에서 잠들어 버리는 걸 자주 봤다”고 말했다.

▲ 임 기자가 집에서 나온 지 약 12시간 만에 업무를 마무리하고 남대문서를 나왔다. 사진=박서연 기자

PM 11:10 퇴근 지시

마지막 보고시간은 오후 10시30분이다. 선배에게 전화했지만, 통화 중이었다. 임 기자는 당직 근무를 서는 선배들은 취재 중일 수 있다며 메신저로 보고하고, 선배의 연락을 기다리며 수습일지를 작성했다. 오후 11시 10분. 드디어 선배에게 전화가 걸려와 퇴근 지시가 떨어졌다.

▲ 이제 쉴 법도 하지만, 임 기자는 그날 받았던 명함을 핸드폰에 입력하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 귀가하는 임 기자의 표정이 밝다. 임 기자는 집에서 나온 지 14시간 만에 집에 도착했다. 사진=박서연 기자

오후 11시21분. 임 기자는 경기도 일산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퇴근 지시를 받아도 집으로 가는 긴 여정이 남아있다. 이제 쉴 법도 하지만, 임 기자는 오늘 받았던 명함을 휴대전화에 입력하며 하루를 정리한다. 새벽 0시15분, 버스에서 내린 임 기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여전히 웃는 모습으로 손을 흔들고 집에 들어갔다.

* 인자한간디 : 임 기자의 별명은 ‘간디’다. 도덕 교과서 표지에 실린 마하트마 간디의 사진을 유독 닮았던 열네 살 때의 외모 덕에 붙은 별명이다. 그는 온 생애에 걸쳐 인간에 대한 사랑을 외쳤던 간디를 닮고 싶었다. 그는 틈날 때마다 ‘인자한간디’라는 아이디로 ‘네이버 지식iN’을 통해 8년째 온라인에서 교육 봉사를 해 왔다. 임 기자가 지난 2011년부터 올해 5월30일까지 작성한 답변은 3,022개이고 그중 95.8%가 답변으로 채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