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휴게시간 의무화, 공짜 연장근로로 돌아왔다”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 보육교사 휴게시간 시민체험 마련 “정말 들숨-날숨할 시간도 없겠구나”
근로기준법 개정해 8시간당 1시간 못박았지만… “인력 충원 없으면 아동방임·업무과중으로 이어져”

2018-09-09 08:19       김예리 기자 ykim@mediatoday.co.kr

한 아이를 손 씻자고 달래는 사이 다른 아이가 씻지 않은 손으로 간식 탁자를 차지한다. 이쪽에서 다친 손톱을 봐 주는 동안 등 뒤에서 장난감을 휘두르며 다툼이 시작됐다. “어머 선생님, 아이가 장난감을 먹으려고 해요.” “간식 먹일 시간인데 완구 정리도 안 하시면 근무 태만이에요. 애들 손은 물티슈가 아니라 화장실로 다 데려가 물로 씻기셔야 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근무태만’ ‘아동학대’ 딱지 3장이 등에 붙었다. 어느새 한 아이 뺨엔 붉게 긁힌 자국이 생겼다. ‘모의 어린이집 휴게시간 체험’을 시작한 지 20분 만이다.

8시간마다 1시간, 어린이집 교사들에게 ‘휴게시간’이라는 이름의 노동시간이 주어진다. 법정 휴게시간이지만 교사들은 갑절의 노동에 시달린다. 교사 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교대로 쉬려면 다른 교사가 2배에 달하는 아이들을 한꺼번에 맡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의무 휴게시간은 ‘강제 무급노동 시간’이 됐다.

보육 노동자들이 ‘가짜 휴게시간’ 현실을 알리기 위해 시민체험 및 사례발표 현장을 마련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는 8일 오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휴게시간 체험을 위한 모의 어린이집’을 열었다. 현장 교사들은 법 취지와 달리 매일 휴식 없이 1시간 무급노동하는 현실도 털어놨다.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보육1·2지부는 8일 서울 대학로에서 ‘보육교사 가짜 휴게시간 시민체험장’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보육1·2지부는 8일 서울 대학로에서 ‘보육교사 가짜 휴게시간 시민체험장’을 열었다. 사진=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지난달 1일부터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어린이집 교사의 근무 중 휴게시간이 의무화됐다. 보육교사와 장애인 활동지원사 등 사회복지서비스업종이 휴게시간 변경가능 특례업종에서 제외됐다. 어린이집 교사에게는 4시간 근무당 30분씩 휴게시간이 주어졌다. 사용자는 이를 어기면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당초 대다수 어린이집 근로계약서나 취업규칙은 1시간 휴게시간을 명시했지만 교사들이 쉴 수 없어 무급노동을 하던 차에, 휴게시간을 보장 받을 계기가 생긴 셈이다.

문제는 휴게시간을 보장하면 안 그래도 문제였던 인력 공백이 더 커진다는 점이다. 교사 수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개정과 함께 보육 인력을 늘리는 대신 교사 1명이 맡는 아동 숫자를 늘렸다. 한 교사가 휴식을 취하는 동안 다른 교사가 맡아야 하는 아이들 수는 2배가 됐다. 4세 아동의 경우, 교사 1인당 최대 20명으로 정한 일반기준이 40명으로 늘어났다. 0세는 3명에서 6명으로 늘었다. 휴게시간을 배정받은 교사도 쉬지 못한다. 어린이집은 교사가 아이들 낮잠 또는 특별활동 시간에 쉬도록 한다. 보통 교사들은 이 시간을 이용해 보육일지 등 각종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보육교사와 전문가들은 현장을 들여다보지 않은 정책 탓에 교사들이 더 과중한 노동에 내몰린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핵심은 정부와 사용자가 보육교사의 휴게시간과 노동 질을 실제로 보장할 길을 제대로 찾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 현직 어린이집 교사가 ‘가짜 휴게시간 황당사례 경진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교사는 “우리에게 무조건 휴게시간을 쓰라고 주문하는 것은 곧 아이들을 방치하고 정서적으로 방임하라는 소리”라고 말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천안의 한 어린이집에서 일한다고 밝힌 교사는 “의무 휴게시간이 생기면서 오히려 노동이 1시간 늘었다”고 했다. 해당 어린이집 교사들은 휴게시간 없이 8시간 일하고 퇴근해왔다. 그런데 ‘법정 휴게시간’을 도입하자 이는 곧 연장근무시간이 됐다. 이 교사는 “1명의 교사가 휴식하려면 누군가는 2개 반을 봐야 한다. 교사가 맡는 아동 숫자는 23명에서 46명이 된다”며 현장 상황을 전했다. 인천에서 온 한 보육교사는 “휴게시간이 노동조건을 악화하는 주범이 됐다”고 했다.

천안에서 온 교사는 “악착같이 법대로 했더니 무능력한 교사가 됐다”고 토로했다. “수업을 준비하고 보육일지와 각종 서류를 작성하려면 하루에 3시간 정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린이집 원장은 ‘휴게시간을 가지라’며 이 많은 준비를 30분 만에 끝내라 하더군요. 딱 30분에 해당하는 서류작성만 해서 냈더니 ‘꼼꼼히 하라’고 합니다. 휴게시간이란 이름의 연장근무, 그만하고 싶습니다.” 권남표 보육지부 조직국장은 “점심시간에도 (교사가) 밥을 먹으며, 식사지도하며 그 동시에 쉬라”고 현장에서 요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지적했다.

인력 충원 없는 휴게시간 도입은 곧 아동학대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남양주 소재 시립어린이집에서 3~5세 반을 맡는 교사는 “정부가 지금 같은 상황을 두고 우리에게 무조건 휴게시간을 쓰라고 주문하면, 이는 곧 아이들을 방치하고 정서적으로 방임하라는 소리”라고 말했다. 이 교사는 “원장은 ‘왜 (휴게시간을) 줘도 못 쉬냐’고 거듭 말하지만, 교사들은 아이들을 두고 휴게시간을 도저히 못 쓴다”며 “교사의 노동환경을 모두 고민해야만 문제가 해결된다”고 강조했다.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보육1·2지부는 8일 서울 대학로에서 ‘보육교사 가짜 휴게시간 시민체험장’을 열었다. 보육교사와 시민들은 보육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포스트잇을 준비된 게시판에 써붙였다. 사진=김예리 기자

▲ ‘모의 어린이집 휴게시간 체험’을 시작한 지 20분 만에 ‘근무태만’ ‘아동학대’ 딱지 3장이 등에 붙었다. 절대다수 보육교사들은 법정 휴게시간을 매일 노동하며 보낸다. 사진=김예리 기자

사용자인 어린이집 측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정부에 대책을 요구한다. 그러나 초점은 다르다. 전국어린이집총연합회는 지난 5월 성명을 내고 정부에 △전국 어린이집에 보조교사 최소 1인 배치 및 비용 지원 △어린이집 운영 12시간에서 8시간으로 축소 등을 촉구했다. 연합회는 “불합리한 운영체계가 지속된다면 어린이집 원장은 범법자가 될 것이며 징역형 또는 벌금형에 처할 위기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수원어린이집연합회는 법 개정을 앞두고 “근로계약상 휴게시간이 명시돼 있는데 본인이 휴게시간 동안 열심히 일을 하였다면 상관없다”는 적용지침을 홈페이지에 게시해 논란이 일었다.

공공운수노조는 지난달 1일 근로계약서와 취업규칙에 근무시간 중 1시간 휴게시간을 명시하고도 일을 시킨 어린이집을 상대로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했다. 해당 어린이집에도 하루 1시간에 해당하는 사실상 체불임금을 지급하라고 촉구했다.

김요한 노무사·보육지부 전략조직국장은 교사들이 실질 휴게시간을 보장받으려면 “일단 인력 충원이 필수”라고 말했다. 어린이집은 오전 7시30분부터 저녁 7시30분까지 통상 12시간 운영하는데, 2교대제가 돼야 1일 8시간 근무원칙을 지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요한 국장은 “노동강도가 가장 센 시간대인 점심시간에 동시 근무하고, 그 앞뒤로 오전·오후 근무하도록 인력을 2배수로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 김요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 전략조직국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영세 규모 고용형태로는 보육교사 노동권 보장이 불가능하다”며 “국가 차원에서 사회서비스원을 설립해 중앙 혹은 지방정부가 보육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육지부는 다음달 13일부터 돌봄노동자 노동권 보장을 위한 행진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