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3일 국정교과서 확정 고시를 발표하면서 상고사 및 고대사 부분을 보강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교과서의 친일독재 미화 우려를 일축하며 민족의식을 강화시키는 역사 기술을 하겠다고 한 것이다. 

황 장관은 "고대 동북아역사 왜곡을 바로잡고 우리 민족의 기원과 발전에 대해 학생들이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친일과 독재를 미화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에 대한 검토 답변으로 "동북공정 및 일본의 역사 왜곡 등에 대응하기 위해 상고사 및 고대사 서술을 강화하고 일제의 수탈에 항거한 독립운동사에 대해 충실하게 기술할 것임"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야권과 시민사회에서 국정교과서 반대 전략으로 친일 독재 프레임을 내걸었는데 오히려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를 제기하면서 민족주의를 반영하는 상고사 및 고대사 서술을 강화하겠다고 '반격'에 나선 것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뻔히 여론이 악화되고 있는데도 국정교과서를 밑어붙일 수 있었던 이유가 상고사-고대사 보강을 통해 국정교과서의 전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야권과 시민사회는 국정교과서가 친일 문제를 교묘히 가려 왜곡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국정교과서가 근현대사 부분이 아닌 상고사와 고대사에 집중해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술될 경우 지금까지 주장했던 국정교과서 반대 목소리는 급격히 탄력을 잃을 수 있다.

국정교과서 반대 여론이 높았던 것도 사실 국정교과서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발간되지도 않은 국정교과서를 두고 친일과 독재를 미화할 것이라는 공세를 펼치고 박 대통령도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지만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상고사와 고대사 부분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은 친일과 독재 미화 우려에 대한 정면 반박이 될 수 있는 내용이다. 

민족주의가 강화된 교과서를 선보이면 '올바른' 교과서라고 포장시킬 수 있는 명분도 커질 수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국정교과서 문제가 내년 총선에 결코 불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것도 애초 논란이 일 수밖에 없는 근현대사 부분에 대한 수정은 최대한 축소하고, 상고사-고대사에 민족주의를 과도하게 반영하는 쪽으로 국정교과서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시키는 전략을 짰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국정화 교과서가 곧 친일 독재를 미화한 교과서가 될 것이라는 말은 창을 가지고 허공에 찌른 꼴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 황우여 교육부 장관. ⓒ노컷뉴스
 

박근혜 정부는 상고사와 고대사를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지난 2013년부터 드러내기 시작했다. 국회 동북아역사왜곡특별위원회에서 왜곡된 상고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교육부는 고대사 연구 사업 기획으로 10억원을 증액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과 한국학진흥사업단에 상고사 관련 사업 예산을 편성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3년 광복절 축사에서 환단고기의 한 구절인 '나라는 인간에 있어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는 구절을 인용하기도 했다. 환단고기는 학계에서 위서로 평가받는 상고사 역사서다. 민족 시작 시점인 '환단'에 대한 이야기책인데 ‘세계만방(世界萬方)’ ‘남녀평권(男女平權)’ 등의 근대적 표현이 나온다. 

정부의 국정교과서 상고사-고대사 강화는 민족을 구심점으로 내세워 고대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지지층을 끌어모으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지나친 국수주의로 역사를 왜곡시킬 수 있는 여지가 크다.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민족주의를 반영하다는 점에서 ‘올바른’ 국정교과서라는 정부의 주장에 국정교과서의 폐해가 가려질 수 있다. 
  
하일식 교수(연세대 역사학과)는 "대통령 참모 중에 연설문을 써준 참모가 있을 건데 광복절 축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인용한 건 놀라운 일이다. 재작년부터 계속해서 교육부를 통해 상고사를 정립하는 거액의 연구비가 지출되는 등 프로젝트가 진행돼 왔다"며 "동북공정과 일본의 왜곡에 대항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학문적으로 황당무계한 국수주의적 주장을 교과서에 자리잡게 하려고 한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정부가 오히려 국정교과서를 민족주의 프레임으로 옮겨가면 오히려 고대사 왜곡 문제를 지적하는 학계 대다수를 친일로 매도하면서 국민 정서에 호응하고 친일 독재 미화 우려를 되받아칠 수 있다. 이대로 가면 대중적인 파급력이 워낙 크다. 과도하게 해석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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