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허가가 난 인터넷전문은행들. 핀테크 스타트업들처럼 자립형으로 IT 시스템 구축을 하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으나, 두 곳 모두 SI 하청을 통한 컨소시움, 바꿔말해 다단계 도급 공사가 될 듯하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차세대’ 프로젝트 진행방식. 그런데 이처럼 대규모 다단계 시스템 발주로 신사업이 진행되는 일은 세계적으로는 예외에 속한다.

금융감독원의 감독규정은 심지어 클라우드도 쓰지 못하게 하고, 구축완료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10개월. 면허가 필요하니 미리 준비해 둘 수도 없었고, 게다가 현재의 고용구조에서는 정규직을 대거 채용할 수도 없는 일임을 참작하면 모두가 가는 길을 다시 갈 수밖에 없었던 심정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이 진행방식은 엄밀히 사전 정의된 요건을 아무 생각 않고 그대로 만들어 내는 프로젝트여야 성공한다. 아무 말 않고 다른 데처럼 또 만들어야 한다. 차별화나 혁신은 리스크 요인이다. 분위기 파악을 못 하면 실패가 기다리고 있다.

파악해야 할 분위기? 바로 오버헤드에 대한 배려다. 오버헤드란 부가해야 할 가치에 이바지하지 못한 채 소진된 모든 코스트들이다. 사연은 늘 있다. 마진 때문일 수도, 거버넌스 때문일 수도, 매니지먼트 때문일 수도 있다. 생산성에 공헌하지 못한 모든 간접 비용들이니, 쉽게 도려낼 수 있을 것 같지만 리더십이나 비전, 의사결정과 같은 근사한 명분 뒤에 숨을 수 있는 편리한 일이기도 하다.

세상일에 오버헤드가 없을 수야 없다. 하지만 다단계 하청에서는 단계마다 붙는다.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구현할 수 있는 당사자들이 알아서 하면 그만인 일에, 행정에 감독기관에 산하기관에 기업에 컨소시엄에 하청에 수많은 시간과 인력의 오버헤드로 덧씌워 일을 벌이는 풍경을 생각해 보면 된다.

한국 사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정작 아이디어를 지닌 자와 그 아이디어를 구현할 이들은 겹겹의 과대포장에 가려 서로가 잘 보이지가 않는다. 구현 실무자가 있는 곳은 최말단의 하청 업체, 이들은 원래 응당 갑에게 직접 고용돼야 했던 이들이지만 다단계 하청을 거치며 반 이상의 오버헤드를 뜯긴 채 남의 일을 해주는 일에 안분지족하게 된다. 혁신이 생기려야 생길 동기가 없다.

미국과 같은 IT선진국에서는 과반수가 넘는 개발자들이 실질적으로 갑의 현장, 즉 사용자 기업에 고용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SI 등 하청 기업에 고용이 집중되어 있다. 즉 경쟁력의 원천이 핵심 현장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진 곳에 배치되다 보니, 가치의 수요와 공급이 만나 일으켜야 할 활기가 보이지 않는다.

“시장에서 지금 이런 것을 원하니 이런 걸 당장 만들어 볼까?”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기능을 급한 대로 추가해 볼까?”

혁신은 이처럼 “이거라도 해볼까?”의 가벼운 시도에서 시작된다. 반응을 보고 배움을 얻고 세련되게 고치다 보니 시장의 선택을 받고 팬이 생긴다.

기획과 개발, 개발과 운영이 구분되지 않고, 소비자를 팬으로 끌어들여 개발에 참여시키기도 한다. 프로젝트는 늘 시작되어 있고 또 멈추지 않으니 외주를 줄 수도 없다. 그것이 이 시대의 방식이다.

하지만 다단계의 오버헤드 사슬을 거슬러 올라가서, PM과 대표와 상급업체와 임원과 심지어 정부 관료까지 거슬러 올라가 허락받지 않으면 논의도 시작될 수 없다. 상류는 미래 계획에 따라 치밀하게 설계하고 하류 공정은 이를 철저하게 집행하면 된다고 믿는 산업 시대의 상식, 한국의 문제는 바로 이 오버헤드 과잉의 문제다. 이제는 그런 미래 설계 따위 애초에 불가능한 속도의 시대다.

이러한 풍토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또한 기업 단위의 문제도 아니다. 알파고와 같은 바텀업의 혁신을 보고도 한국형 인공지능 운운하는 탑다운의 칙령을 내린다. 필연적으로 오버헤드가 생긴다. 프로젝트가 뜨면 다단계 하청 기업이 난립하듯 전환기마다 정부조직과 산하기관은 비대해지며 오버헤드는 켜로 쌓여간다.

세상이 바뀌어도 늘어난 오버헤드들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나름의 도리가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머리를 맞대면 금방 해결될 문제지만, 방대한 예산과 조직과 시간이 투하된다. 의사결정은 분산되기에 어디에 책임이 있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자리를 잡았다면 당장 내 걱정은 없다. 그렇게 한국 사회란 차세대 프로젝트는 산으로 간다.

지금 한국 정치 경제의 시급한 어젠다는 이 오버헤드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결단이지만, 이번 총선 누구의 매니페스토에도 이런 어젠다는 보이지 않는다. 오버헤드가 되는 것이 편한 길이기에 모두 오버헤드를 꿈꾸는 사회, 오버헤드에게 오버헤드의 처리를 부탁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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