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어버이연합의 돈줄은 기자들의 오랜 관심사였다. 폐지를 모아 사무실을 운영한다고 하는데 하루에도 몇번씩 집회를 열고 정보력을 자랑하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는 어버이연합이 순수하게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된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버이연합이라는 조직은 미스터리 영역에 있었고, 기자들은 이를 밝히고 싶은 욕망에 차 있었다. 어버이연합의 하루를 동행 취재하는 보도는 집회에 열성적으로 참가하는 노년층의 ‘특별한’ 삶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고, 의혹성 기사가 쏟아졌지만 실체엔 근접하지 못했다. 

미디어오늘도 어버이연합을 집중 취재했다. 지난 2013년 1월 '솔깃한' 제보를 접수하면서다. 추선희 사무총장이 정부기관으로부터 수억원의 돈을 받아 운영비로 썼다는 내용이었다. 자금을 지원한 정부기관의 직원 신분까지 확인해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제보자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대신 어버이연합 회장으로 있는 심인섭씨가 정부 기관의 돈을 받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제보자에 관련 내용을 털어놓았다고 '힌트'를 줬다.

당시 미디어오늘은 서울 종로구에 있는 어버이연합 사무실을 찾아 심인섭 회장을 만났다. 어버이연합 근방 한 카페에서 마주한 심 회장의 인상은 푸근한 동네 할아버지와 비슷했다. 

심인섭 회장은 자신을 대한석탄공사 출신 공무원으로 50세에 정년 퇴직한 뒤 미국 국적을 취득해 이민을 갔고, 2000년 초반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소개하고 애국심으로 어버이연합 회장을 맡았다고 밝혔다.  

제보 내용과 관련한 질문에 심 회장의 답은 간단했다. 어버이연합이 기존에 주장했던 내용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질문을 예상해 답변을 외우듯 어버이연합은 1600명 회원이 있고 회원비와 두 달에 한번 폐지를 모아 판 돈으로 운영비를 겨우 충당하고 있다고 풀어놨다. 2012년 10월 임대료 4천만원이 밀려 사무실을 한때 폐쇄했지만 일부 회원들의 후원과 한국대학생포럼의 지원을 받아 임대료를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추선희 사무총장이 정부 기관의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이냐"는 질문에 그는 "전혀 사실 무근이다. 자신이 책임을 지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상 깊은 대화 내용은 다음에 나왔다. 

"추선희 사무총장 모친이 피살 당한 사건 아시죠. 그쪽(좌파)이 추 사무총장 어머니를 죽였다고 합니다."

2011년 3월 10일 추선희 사무총장의 어머니 한모씨는 서울 미아동 한 가게에서 무언가에 머리를 맞고 숨진 채 발견됐다. 수사 당국은 타살 혐의를 무게를 뒀다. 추 사무총장은 사건과 관련해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추선희 사무총장이 탈북자들을 끌여들여 집회 시위의 주요 동력으로 삼은 것도 이때부터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추 사무총장이 어버이연합 간부들과 나눈 카톡대화 내용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총무님, 제 엄마 왜 돌아가셨는지 아세요?"

"제가 북한에 전단뿌리고 김씨 일가 화형식 시켜서 북한놈들이 추선희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타격을 가하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정보 수집하는 사람이 설마 한국 사람을 건드리라해서 정보를 안 샀다고 하더라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국정원 기무사 경찰 다 범인 잡으려고 전체 움직였어요. 그때 원장님이 반드시 범인 잡아주신다고 연락왔었어요. 내가 그래서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더 갖고 하는 겁니다.”

추선희 사무총장이 어버이연합의 실세로 군림하게 된 것도 탈북자와 협력을 통한 세력 구축에 성공했고, 이를 계기로 돈줄을 쥐면서부터다. 

추선희 사무총장은 지금은 적이 된 탈북난민인권연합을 전략적 파트너로 삼았다. 사무실 한쪽에 탈북난민인권연합의 공간을 마련해준 것도 추 사무총장이었다. 

추 사무총장이 탈북난민인권연합을 선택한 것을 이해하려면 탈북자 단체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탈북자단체는 지난 1980년에 만들어진 숭의동지회가 최초다. 관변단체 성격을 띠고 있었던 숭의동지회는 정권 옹호에 관심이 높았다. 정작 북한이탈주민의 정착과 자립은 주요 사업이 아니었다. 1990년대 후반 탈북자들이 급증하면서 탈북자 사회에서도 인권과 정착 지원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탈북동지회가 있었지만 통일부의 사단법인으로 등록한 단체였다. 망명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위원장으로 있었던 북한민주화위원회는 정치 조직의 성격이 강했고 정부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단체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1999년 만들어진 자유북한인협회는 기존 단체와 성격을 완전히 달리했다. 자유북한인협회는 첫 결성 기자회견에서부터 국정원 전신 안기부가 탈북자들을 조사하면서 가혹행위를 해왔다고 폭로했다. 2008년 탈북인단체총연합회가 결성되면서 북한 정권에 대한 비판보다는 탈북자들의 정착 지원 문제가 주요하게 다뤄졌다. 

탈북난민인권연합은 관변단체가 아니면서도 북한 정권의 심기를 건드려 정치적 효과를 낼 수 있는 조직이었다. 탈북난민인권연합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탈북자를 난민으로 규정해 북한을 탈출하는 데 지원했다. 다른 한편에선 돈을 받고 북한에서 사람을 빼오는 탈북브로커조직이라는 지적도 있다. 

보수세력이 봤을 때 탈북난민인권연합은 북한 정권을 비난할 수 있는 여론을 확산시키면서도 정권의 우월성을 홍보할 수 있는 단체였다. 2012년 보수 우파 진영에서 추진했던 보수대연합에 뜬금없이 탈북난민인권연합이 이름을 올린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어버이연합이 탈북난민인권연합을 전략적 파트너로 선택한 것도 이 같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기존 관변단체와의 결합은 효과가 없고, 탈북자 자립과 정착 지원에 관심있는 단체와는 성격이 맞지 않았다. 

추선희 사무총장은 자신의 어머니 피살 사건을 연결해 탈북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고 했지만 보수세력의 아젠다인 북한과 안보를 선점하기 위해 가장 잘 성격이 맞는 탈북난민인권연합을 끌여들여왔다는 것이 정확한 분석이다. 

박근혜 정부로서도 둘의 결합은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사실상 통일 정책은 없고 대결 구도만 남아 최악의 대북관계에 놓여있는 상황에서 북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정권에 힘이 될 수밖에 없다. 

과격한 행동을 일삼으며 아스팔트 우파로 어버이연합이 주목을 받은 것도 탈북단체와의 결합과 상관이 있다. 하나로 규정할 순 없지만 탈북자들은 기질이 거친 측면이 있다. 참전 용사로 구성됐다고 한 어버이연합의 회원들과 탈북자들은 집회 시위에서 공권력을 우롱할 정도로 과격함을 드러냈다. 

어버이연합의 영향력이 커진 것도 탈북자 동원의 집회 시위가 법을 위반해도 처벌에 관대하다는 점을 활용한 측면도 있다. 집회 시위 현장에서 진보단체와 몸싸움을 벌이거나 막무가내로 반대파를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행위가 번번히 일어났지만 경찰은 '어르신들의 돌출행위'로만 보고 온정적 태도를 유지했다. 집회 시위 현장에서 경찰관을 폭행해도, 규탄 대상과 몸싸움을 벌여도 실형은 받지 않았다. 대부분 벌금형에 그쳤다. 

경찰의 퇴직 모임인 재향경우회가 탈북난민인권연합에 500만원을 지원한 것만 봐도 이미 어버이연합은 공권력의 통제에서 벗어났다는 주장도 있다. 공권력이 어버이연합의 과격한 집회 시위를 엄격하게 관리하고 처벌했다면 현재 '괴물'이 돼버린 어버이연합의 모습은 불가능하다는 주장과 연결된다. 결국 공권력도 추선희 사무총장을 과격한 집단의 실세로 키운 공범이라는 얘기다. 


반대로 어버이연합은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 사안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법을 이용했다. 지난해 12월 민주노총의 집회를 불법집회로 고발한 것도 어버이연합이었다. 서석구 변호사는 어버이연합의 법률고문을 맡아 시기 적절하게 고발을 통해 정권 비판 세력을 법적 처벌 대상에 올려놨다. 

청와대와 커넥션 의혹이 나오는 것은 어버이연합을 사실상 방치했기 때문이다. 한 탈북자는 "어버이연합이 이슈의 중심에 서면서 청와대도 관심 사항으로 파악했다. 내부에서 고소 고발이 이뤄지고, 내분이 일어나는 일과 탈북자 사회에서 청와대를 언급하며 활동하고 있다는 것도 보고가 들어간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내분 문제로 터진 어버이연합 사태를 청와대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어버이연합 사태가 두드러진 것은 박근혜 정부가 그토록 강조했던 법치국가 질서 확립이라는 원칙과 정반대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공권력의 엄정한 집행이 정권을 비판하는 세력에게만 집중되면서 어버이연합을 날개를 달았다. 하지만 어버이연합 사태가 터지면서 박근혜 정부에 부메랑이 되고 있다. 

한창권 탈북인단체총연합회 회장은 "법치국가 질서 확립을 내세운 박근혜 정부에서 어버이연합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게 웃긴 일"이라며 "어버이연합 집회 시위에서 불법이 발견되고 바로 조치를 했다면 이렇게까지 일이 커졌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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