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어버이연합을 검찰에 고발한지 한달이 지났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3일 4. 16 연대 등과 함께 "전경련과 청와대, 어버이연합의 행위는 집회의 자유를 왜곡하고 민주적인 의사수렴 과정을 짓밟는 범죄행위"라며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보통 고발장을 접수하면 고발인 조사와 피고발인 조사, 그리고 참고인 조사를 통해 혐의를 조사하고 압수수색을 통한 증거물 확보해 나선다. 검찰은 어버이연합 사건 일체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배당했지만 관련 수사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어버이연합 불법자금지원 의혹 규명 진상조사 TF에 따르면 검찰은 관련자를 소환하지 않았고 관련 자료 제출 요구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존 관례와 비교해서도, 검찰 수사 메뉴얼을 보더라도 어버이연합 수사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몇가지가 꼽힌다. 우선 어버이연합 사건이 재벌 기업의 최대 단체인 전경련을 끼고 있고, 청와대 인사와 관련돼 있어 자본과 권력의 눈치를 동시에 볼 수 밖에 없는 구조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실명이 나온 청와대 허현준 비서관을 소환해 조사할 경우 권력의 배후를 캐는 질문을 할 수 있다. 허현준 행정관은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에 집회 개최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산 인물로 직속 상관으로 정관주 국민소통비서관, 그리고 현기환 정무수석을 두고 있다.

정부에서 한 시민단체에 관제 집회를 지시했다는 것이 공식 수사 결과 밝혀지면 박근혜 정부는 도덕적인 치명타를 입고 레임덕이 앞당겨질 수 있다. 검찰이 과연 집권 3년차 게이트로 발전할 수 있는 수사를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나오는 이유다. 

허현준 행정관의 이름이 나온 것은 추선희 사무총장의 입을 통해서였다. 일각에선 추 사무총장이 돈줄 의혹으로 코너에 몰리자 청와대 집회 지시 개최 문제를 제시해 공세의 초점을 돌린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결국 청와대와 어버이연합을 넘어서 권력과 사회단체와의 커넥션 의혹으로 확대되면서 권력 게이트로 발전했다. 

검찰 수사가 막혀 있는 것은 권력 게이트 사건으로 확대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도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면죄부를 줄 수 있는 발언을 내놨기 때문이다. 수사 가이드 라인 논란이다. 박 대통령은 언론국장 간담회에서 "어버이연합에 지시를 했다고 문제가 되고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그렇게 보고를 분명히 받았다"고 말했다. 청와대 자체 공식 감사를 진행한 것도 아니고 보고 사항이라는 이름으로 청와대 행정관과 어버이연합의 커넥션 의혹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 

검찰 조직에서 '청와대와는 상관 없다'는 대통령의 말을 거스르고 권력형 게이트 사건으로 규정해 수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대통령이 어버이연합 사건 수사의 최대 걸림돌인 이유다. 

추선희 사무총장이 한 말도 여러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추 사무총장은 검찰 수사와 관련해 언론과 인터뷰에서 "검찰 수사가 끝나면 다들 깜짝 놀랄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추 사무총장은 청와대 허현준 행정관의 집회 개최를 협의했을 뿐 지시를 받지 않았다고 '횡설수설' 했지만 검찰 수사에서 다시 청와대와의 관계를 증언할 가능성이 있다. 

"깜짝 놀랄 일"이라는 말이 으름장과 비슷한 정치적 수사일 수 있지만 실제로 청와대와 관련된 있는 증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추 사무총장이 다른 의미에서 "깜짝 놀랄 일"이라는 표현을 썼어도 검찰에서 볼 때 추 사무총장을 소환할 경우 폭탄 증언이 나올 수 있다는 두려움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전경련에 대한 수사는 불가피하다. 추선희 사무총장은 벧엘재단 계좌를 통해 돈을 받았다는 것을 시인하면서도 전경련은 벧엘재단이 차명계좌인줄 모르고 지원했다는 해명을 늘어놨다. 전경련이 차명계좌를 통해 지원한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금융실명제 위반에 해당된다. 


전경련이 벧엘재단에 돈을 입금한 결정이 어떤 절차를 통해 이뤄졌는지도 확인돼야 한다. 만약 공식 이사회의 의결과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고 소수 인사의 결정으로 임의로 지원을 했다면 업무상 배임이 될 수 있다. 

벧엘재단을 통해 어버이연합으로 가는 루트를 알고 있었던 책임자를 찾는다면 그 뒷선도 캐야 한다. 사회복지 명목으로 벧엘재단에 지원한 것이라도 하더라도 어떻게 아무 실적도 없고 활동도 없는 유령의 단체에 지원이 가능했고 누가 밀어붙였는지도 조사 대상이다. 

벧엘재단이 사실상 페이퍼컴퍼니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해당 계좌에 돈을 입급한 것은 세금 회피를 위한 조세 포털 혐의도 적용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계좌 내역을 통해 전경련에서 어버이연합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확인된 액수는 지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5억 2천만원이다. 이외에 전경련이 언제 최초로 어버이연합에 돈줄을 댔는지 그리고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도 파악해야 한다. 

수사에 착수하게 되면 검찰은 전경련 계좌 내역을 들여다봐야 한다. 전경련은 수사와 관련없는 계좌 수사에 대해 대대적으로 반발할 수 있다. 실무급 최고 인사인 이승철 전경련 상근 부회장의 소환도 이뤄질 수 있다.

검찰 수사가 진척이 없는 이유는 이같이 전경련에 대한 수사가 대대적으로 이뤄지거나 혹은 축소 수사를 했을 경우 반발과 역풍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밖에 어버이연합이 어떤 수단을 통해 정보력을 갖추고 매 집회마다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지도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어버이연합은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국회 폭력 혐의와 관련해 무죄를 선고한 판사의 집을 찾아가 집회를 한 적이 있다. 또다른 정부 기관과의 연계성이다. 결국 어버이연합의 배후에 청와대와 커넥션이 있는지 아니면 다른 기관과도 통하고 있는지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어버이연합과 관계된 보수 우파 단체들에도 불똥이 튈 수 있다. 어버이연합과 관계를 맺은 보수 단체들이 서로 돈을 분배하고 집회를 개최했거나 아니면 어버이연합과 비슷한 패턴으로 전경련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대학생포럼은 전경련-어버이연합과 특수 관계에 있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추선희 사무총장의 개인 계좌를 통해 돈이 들어오고 빠져 나간 내역을 조사할 경우 추 사무총장에게 직접 돈을 건네 사람을 파악할 수 있는데 보수단체 뿐 아니라 정부 관계 요직의 인사가 연관돼 있을 경우 파장이 예상된다. 

이같이 권력의 최정점인 청와대와 재벌 기업 단체 전경련, 다른 정부기관의 연계 가능성 때문에 부실 수사가 될 수 있다는 의심이 높은 상황에서 검찰은 최대한 시간을 끌고 여론이 잠잠해지고 나면 수사를 시작해 조용히 수사를 마무리하는데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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