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와 청와대가 갈 데까지 간 모양이다. 청와대 당국자가 스스로 ‘식물정부’를 입에 담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딱한 노릇이다. ‘식물정부’는 ‘식물인간’ 상태를 떠올리게 만든다.

‘식물인간’은 뇌(brain) 중에서 대뇌의 전반적인 손상으로 깊은 혼수(coma) 상태에 빠진 채 호흡 중추 등만 살아남아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간혹 장기간 식물인간 상태에 있다가 회복하는 경우가 보고되기도 하지만, 대략 1~3개월 이상 경과하면 식물인간 상태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것으로 간주된다. 반면, 뇌사(腦死)는 글자 그대로 대뇌를 포함하여 뇌간(腦幹‧뇌줄기‧숨골:brain stem)까지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어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지 않으면 호흡조차 불가능한 ‘사실상의 사망’ 상태를 말한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 당국자가 ‘뇌사정부’가 아니라 ‘식물정부’란 용어를 썼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웃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중요한 것은 ‘식물인간’ 상태와 ‘뇌사’ 상태의 차이점이 아니라 둘 사이의 공통점이다. 두 경우 모두 의학적으로는 아무런 손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 청와대 모습이 꼭 그런 형국이다. 대통령이란 사람이 무슨 말은 하는데 국민들한테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태를 악화시키는 말만 하고 있다. 서방세계에 주재하는 북한의 공사 한 사람이 정치적으로 망명한 사실 등을 염두에 둔 듯, 북한 체제가 내부에서 동요하고 있다며, 마치 북한 체제가 곧 무너질 것처럼 뉘앙스를 풍긴다. 아버지 독재자 박정희 시절에 북한과 대결 상태를 ‘적대적 공생관계’로 활용하여 종신독재 체제를 강화한 경우가 떠오른다. 만에 하나, 지금 상태에서 북한 체제가 붕괴된다 해도, 그것이 바로 통일로 연결되기도 어렵지만, 북한 체제 내부에서 심각한 동요가 일어나면 김정은 정권은 남한과의 전면전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북한 체제 동요가 ‘붕괴’로 이어지면 그 자체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방식’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지고 있다. 단순히 ‘레임덕’이란 용어로도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는 ‘폭탄 돌리기’ 양상을 띠고, 성주에서 김천으로 옮겨가고 있다. 추경 예산 처리를 둘러싼 여야 협상은 새누리당의 ‘친박’ 당 대표 선출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형국이다. 그리고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청와대 수석비서관(우병우)이 각종 비리와 불법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됐다.

우리는 8월3일자 사설(제1061호)에서 ‘박근혜는 우병우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보는가’라고 물었다. 박근혜는 우병우를 ‘자신의 미래’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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