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은 그 방향과 방법에 대해 사뭇 다른 결의 내용들이 섞여있다. 탈시설 개념의 미묘한 차이가 근본적인 물음과 해답에 대한 성찰이나 사회적 논의를 가로막을 수 있다. 탈시설 정책 수립에 대한 요구는 지속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사회적 의식 수준을 형성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시설문제를 짚어보고 탈시설 방향으로 가기 위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미디어오늘은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을 통해 연재기고를 싣는다. <편집자주>

지난 5월 한 방송사는 전북 남원의 중증장애인 재활시설의 CCTV에 찍힌 영상을 방영했다. 사회복지사가 장애인의 머리채를 잡고 패대기친다든지 몸에 올라타고 발을 꺾는다든지 주먹질, 발길질을 해대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가해자는 사회복지사이고, 대상자는 그 시설에 맡겨진 장애인들이었다. 그들은 꼼짝 못하고 당하고만 있었고, 그 폭행을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그 시설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진행됐고, 법정에서 이 사건이 다루어질 것이다. 법원의 판결에 따라서 관련 시설은 폐쇄되고 그곳에서 생활하던 장애인들은 다른 시설로 옮겨지거나 보호자에게 인계될 것이다. 그럼 다른 사회복지시설은 안전할까? 다른 사회복지시설에서는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 사회복지시설 인권침해 사건은 오래된 일이다. 어느 해이고 이런 사건들이 언론에 나지 않은 때가 없다. 그런데도 반복되는 끔찍한 인권침해 사건은 이어진다. 무엇이 문제일까? 인권운동계에서 사회복지시설의 인권침해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친 적이 있었다. 곳곳에서 제보가 들어오고 그러면 사전 조사를 거쳐서 현장 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정리하여 언론에 제보하고, 언론 보도가 나면 수사가 진행되고, 관련자들은 처벌되고는 했다. 나중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서서 사회복지시설의 인권침해를 조사하게도 되었다. 그렇게 사건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시설을 어떻게 하면 민주화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장애인운동계와 인권운동계는 탈시설이 대안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수용 중심의 사회복지시설이 있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라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끔찍한 사회복지의 현장을 보았다.

형제복지원의 판박이 양지마을

1998년 7월의 어느 저녁에 몇 명의 학생들이 한 사내를 데리고 내가 근무하던 인권운동사랑방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 사내의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곳곳이 긁히고 찢긴 사내는 그 상처를 치료도 하지 못해서 고름이 흐르고 거기서 냄새가 진동했다. 그를 씻기고 안정을 취하게 한 다음부터 1주일 동안 그에게서 증언을 들었다. 들어도 들어도 믿기지 않았다. 정말 세상에 그런 곳이 있을까? 어떻게 그런 일이 버젓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정부의 보조를 받아서 운영되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일어난 일은 지옥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들이었다. 그에게 묻고 확인하고 하다가 현장 조사를 결심했다.

충남 연기군에 있는 부랑인 수용시설 양지마을, 그곳은 지옥이었다. 교도소 담처럼 높은 콘크리트 담이 둘러쳐진 그 안에서 300명 정도의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천안역, 대전역 등지에서 납치된 사람들도 있었다. 일단 그곳에 한 번 들어오면 세상과는 철저하게 단절되어서 죽어나가기 전에는 나갈 수 없었다. 그 시설에 맡긴 가족들도 그들을 볼 수 없었다. 삼중의 철문을 열고 들어가야 수용자들이 생활하는 시설이 나왔다. 쇠창살이 창문마다 철저하게 질러져 있는 그곳 문을 열고 들어가니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입구에 있던 독방이었다. 교도소의 독방처럼 생긴 그곳에 버젓이 매달려 있던 밧줄, 그 입구를 지나서 보이는 옛날 군대 내무반과 같은 평상,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살려달라고 하면서도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는 눈빛들.

그곳에 들어오면 우선 매부터 맞았다. 일종의 신고식. 군대식 상명하복의 질서가 철저하게 짜여 있었다. 법인의 설립자이고 당시 이사장의 남편이었던 노재중이란 자의 왕국이었고, 그 왕국에서는 그의 친인척들이 시설장과 주요 간부들이었다. 수용자들은 군대조직처럼 일사분란하게 체계가 짜였고, 오로지 맞지 않기 위해서 밥을 굶지 않기 위해서 복종해야 했다.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 했지만 일을 해야 했지만 그들에게 임금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혹독한 체벌이 따랐다. 묶어놓고 패고, 사람들 보는 앞에서 몽둥이로 패서 죽이기까지 했다. 맞다가 실신한 이가 죽으면 그날로 가마떼기로 둘둘 말아서는 ‘개미고개’에 암매장도 했다. 그리고 말을 잘 듣는 이들에게는 집단생활이 아닌 독방 생활을 보장해주고 여성 수용인을 배정해서 같이 살게 해주었다. 그곳에서 여성 수용인들은 시설장의 노리개였다. 시설장이 지정해주는 남자와 부부생활을 해야 했고, 강제로 불임수술도 받았다.

그곳의 실태조사를 한 인권단체들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을 통해서 폭로를 하고 검찰에 고발도 했다. 시설장이었던 노재중과 몇몇은 구속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동안 사회복지에 기여한 공이 큰 부분을 감안하여 징역 3년형을 살다가 가석방으로 노재중은 나왔다. 검찰은 살인, 납치, 감금, 강제노역, 암매장, 불임수술, 성폭행 등의 어마어마한 범죄에 대해서는 기소도 하지 않았다. 증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다만 이중장부가 드러났고, 그를 통해 증거가 확보된 횡령 등의 가벼운 혐의만 기소했다. 그러니 처벌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그곳에서 나온 사람들은 자유를 얻었지만, 그 자유는 거리를 떠돌다가 죽어갈 자유였다. 그들이 가서 살 곳이 없었다. 지옥을 나온 그들은 거리에서 하나 둘 죽어갔다. 탈시설의 개념도 없었고, 시설은 완강히 거부하는 그들을 맞아줄 곳, 그들이 살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당시 언론에 육지 위에 ‘노예의 섬’으로 알려졌다. 우리가 한 사내가 죽을 각오로 그 시설을 탈출하고, 우리가 현장 실태조사를 하고 나서야 겨우 세상에 알려진 그 사건은 여러 면에서 문제가 되는 사회복지 시설의 전형이었다. 공무원, 정치인과의 유착, 국고와 지자체 보조금과 후원금의 착복, 유령 직원과 사망자까지 등재 관리하는 문제, 매년 계속 지원되는 시설 증개축 지원금 등등 온갖 추악한 비리와 한 쌍을 이루어 벌어지는 인권침해에 대해 관리감독청은 항상 눈감아주었다. 그런 시설 설립자, 운영자들은 사회복지에 공이 있다고 정부로부터 포상도 받았다. 어떻게 버젓이 교도소와 같은 담까지 쳐진 수용시설이 20여 년간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운영될 수 있었을까.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

▲ 형제복지원

양지마을의 설립자인 노재중이 형님으로 부르며 존경해마지않았던 사회복시설계의 대부가 있다. 그는 지금은 병상에 누워 있다지만 몇 년 전까지도 그는 사회복지 쪽의 실력자였다. 박인근, 지금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겠지만, 형제복지원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곳의 생존자인 한종선 씨가 <살아남은 아이>란 책을 내게 되면서 새삼 조명을 받았던 사건이고, 이 사건과 관련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양지마을의 원형은 형제복지원이었다. 그곳에서 한종선 씨는 누나와 같이 수용되었고, 나중에는 아버지까지 수용되었다가 세상에 복지원이 폭로되고 갑작스럽게 시설이 폐쇄된 뒤에 그곳을 나왔다. 그의 누나는 그곳에서 당한 폭행 등으로 인해서 정신병자가 되었고, 아버지도 그랬다. 서류로 확인된 것만 12년 동안 551명의 사람이 죽어나갔고, 얼마나 많은 이의 시신이 해부용으로 팔려나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30년이 다 되었지만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런데 박인근과 노재중의 공통점이 있다. 정부의 시책을 앞장서서 시행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부랑인들을 정리하고 싶어 했고, 그러기 때문에 형제복지원과 양지마을은 존재할 수 있었다. 골치 아픈 부랑인(노숙인)들을 알아서 격리하고, 정리하고, 처리해주니 정부로서는 고마운 존재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전두환은 박인근에게 훈장까지 준 것이다. 살인마이자 악마였던 그들의 존재는 그 뒤에는 사라졌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부정부패와 사리사욕의 수단이 된 사회복지시설이 사라졌을까. 약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재활을 도와야 하는 사회복지시설에서 폭력은 사라졌을까.

<도가니>로 유명해졌던 인화학교, 소설이나 영화보다도 실상은 더욱 끔찍했다는 거기도 수용시설이었다. 청각장애 아동들을 대상으로 벌어진 학대와 도저히 인간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끔찍한 그 일들은 1996년부터 근 7년여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에바다와 어찌 그리도 똑 같은지, 형제복지원의 판박이였던 양지마을처럼.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어느 날 불쑥불쑥 드러나는 사건들은 늘 익숙한 유형들이다. 크고 작은 시설들에서 갇혀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당하는 인권유린 실태는 잠시 세상의 주목을 받다가 사라진다. 언론도 잠시만 이런 사건들을 소비할 뿐이다.

지난 6월에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사회복지시설의 인권침해 사건을 잠시 소비만 하던 패턴을 벗어났다. 1997년에 세상에 폭로되었던 장항의 수심원 사건의 20년 뒤를 추적한 것이다. 수심원도 시설에 400여 명을 수용해서는 수십 명이 살해되었던 악명 높은 시설이었다. 언론에 보도되자 곧장 시설은 폐쇄되었고, 그곳 시설 원장은 구속되어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살았다. 하지만 그곳을 나와서 자유를 얻은 이들은 여전히 그때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심지어 방송에서 당시 그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게 되니깐 수용자들을 살해했다는 증언까지 했다. 폭행으로 실명된 이들, 아직도 당시 상황을 악몽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 사건은 오래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수심원에 갇혀 있는 것이다. 과거에 형제복지원, 양지마을, 소쩍새 마을, 수심원, 에바다 등지에서 폭력의 피해자였거나 폭력기계로 가해자로 살았던 이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지독한 트라우마를 안기고 있다. 올 6월에는 수심원에서 나왔던 한 사내가 당시에 자신을 섬에 보냈던 노모를 앙심을 품고 살해했다는 혐의로 구속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시설에서 살아남은 이들에 대한 트라우마 치유까지 포함하는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필요한 이유다.

▲ 지난 6월 SBS 그것이 알고싶다 장항수심원 편 화면 갈무리

시설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사회복지시설의 이런 되풀이되는 흑역사는 왜 반복되는 것일까? 수많은 시설들을 조사하고, 그 시설들에서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는 사실들을 확인하고 분노했으면서도 지금도 의문으로 남는 질문이다. 어떻게 사람이 저런 짓을 할 수 있을까? 특히 종교인들이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유독 더 많은 인권침해가 일어났다는 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떻게 장애인을 비롯해서 가장 보호받아야 할 약자들인 그들이 지독한 인권침해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이런 사건들을 매해 거듭해서 겪으면서 왜 이런 사건들은 끊이지 않는 것일까? 그동안 사회복지시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들이 마련되고, 인권교육도 이뤄지고 있음에도 왜 계속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어떤 정책이나 대안도 실효성은 없는 것은 아닐까? 그 근본 대안은 무엇일까? 아마도 이 기획연재는 이런 질문들에 답을 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은 시설 중심이 아니라 보호받아야 할 사람 중심으로 정책이 전환되어야 하며, 탈시설이 그 방향이라는 데로 모아질 것이다. 탈시설은 지금까지 사회복지 정책에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사회복지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그들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보아야 하고, 그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들을 누려하는 권리의 주체라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전제 위에서 탈시설은 추진되어야 한다. 그들도 지역사회에서 사람들과 동등하게 관계를 맺고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며 자아를 실현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보호받는 수동적인 위치에 있는 게 아니라, 시혜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일원임을 선언하는 일, 그것이 탈시설이다. 탈시설로 가지 않는다면, 이 나라에서 반복되어 일어났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사회복지의 흑역사는 끝나지 않는다.

지금 어느 시설에서 다시 인권침해가 일어나고 있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제 이런 흑역사는 끝내야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