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우병우가 결국 검찰에 출석해 포토라인 앞에 섰다. 전 청와대 민정수석인 우병우는 그를 둘러싼 각종 비리 혐의에도 그 직을 유지했으며, ‘우병우 검찰’로 불릴 만큼 사실상 검찰의 지휘자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공직자인 우병우가 국민들의 비판과 원성에도 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더 큰 권력이 그를 감싸고돌았기 때문이다. 대통령 박근혜는 “의혹만으로 사퇴시킬 수 없다”며 그를 비호했고, 오히려 그를 감찰했던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사표를 받아냈다. 그리고 사실 그 뒤에는 ‘비선실세’이자 ‘대한민국 권력 서열1위’라는 최순실씨가 존재했을 것이란 의혹이 나온다.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에 전방위적으로 개입한 최순실씨는 구치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갖은 의혹과 관련돼 역시 수사 대상일 수밖에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를 촉구하는 목소리에 둘러싸였다. 우병우도 오늘 검찰에 출석했고 전 정책조정수석 안종범은 이미 구치소로 갔다.

▲ 박근혜 대통령이 11월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실에서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파문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민을 무시하고 국민들의 피땀 어린 세금으로 갖은 이권을 취하며 나아가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해 대다수 서민들에게 방대한 피해를 주고 ‘이러려고 국민이 됐나’는 자괴감까지 준 자들이 이렇게 하나 둘 씩, 검찰의 포토라인에 서고 있다. 이로서 박근혜 청와대의 인의 장막이 걷히고 대한민국은 한 층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인가?

아쉽게도 그럴 가능성은 낮다. 박근혜 대통령과 박근혜 청와대의 인사들, 최태민 일가는 대한민국 지배세력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면 제2의 박근혜 혹은 제2의 이명박이 등장할 것이고, 그들은 언젠가 다시 대한민국을 자신들의 이권의 화수분으로 만들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눈과 귀는 박근혜, 최순실, 우병우, 안종범에게 모두 쏠려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을 내세워 기득권을 유지해왔던 공범들은 어느새 슬쩍 기득권 대열에서 이탈해 국민들의 편에 서서 이들에게 함께 손가락질을 하거나,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들은 누구일까?

▲ 전국경제인연합회 건물 앞 표지석. 사진=포커스뉴스
1. 재벌·대기업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소속 재벌·대기업들은 최순실씨가 개입된 미르재단에 486억원을, K스포츠재단에 288억원을 지원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이들 재벌을 불러모아 두 재단의 출연금을 기존 6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늘리라 직접 지시했다는 의혹이 나온 상황에서, 이들은 거대 권력에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에 불과할까?

이들은 정권과 결탁해 각종 이권을 챙기며 노동자를 짓밟고 살아남아왔다. 불경기를 호소하면서도 거대한 사내 유보금을 쌓아놓고 정리해고법, 비정규직법 등을 정권에 요구해왔고 관철시켰다. 전 세계 기업들이 혁신을 목 놓아 외칠 때 이들은 노동자의 고름까지 짜내 배를 불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재단에 쏟아 부은 돈 774억원은 노동자들과 하청업체와 나누어야 했을 재화다. 열심히 일해 부를 축적한 것이 잘못이냐 항변하겠지만, 그들은 쉽게 돈을 벌기 위해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를 고치고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며 부정한 부를 축적했고 정당한 값을 지불하지 않고 부를 세습했다. 그리고 국민들은 정의롭게 피땀 흘려 일해도, 하루하루 근근이 살기조차 버겁다.

▲ 언론시민단체들이 공공부문 파업 보도와 관련해 지난달 10일 오전 서울 중구 조선일보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단체들은 허위보도와 여론조작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사진=언론노조 이기범 기자
2. 언론

모든 언론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치고 있지만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공영방송 간부들은 내부 기자들의 특별취재팀 편성 요청을 묵살해왔다. 그동안 공영방송은 기계적 중립을 이유로 약자의 목소리과 권력의 목소리를 동등하게 취급하며 이슈를 물타기 했고, 오히려 정권에 기울어진 보도를 했다는 비판도 많이 받았다.

조선일보 페이스북은 지난 5일 시민들의 촛불집회에 앞서 세로로 읽으면 ‘나가자 싸우자’란 글을 남겼고 지금 모든 언론들은 이번 시위가 평화로운 시위이며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줬다고 극찬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일부의 폭력을 확대 과장해 폭력시위로 매도하고 교통정체를 운운하며 시민에게 피해를 준다고 비판했고, 심지어 거짓으로 집회와 시위 때문에 수험생이 시험도 못 쳤다고 주장한 것 또한 언론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집중적으로 보도 중인 TV조선에서는 불과 4년여 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향해 ‘형광등 100개를 킨 아우라’가 난다고 하며 박근혜 정부 탄생에 일조했다. 보수 정권에 정치적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던 정치인·정치세력에 ‘종북’이란 프레임을 씌워 비판의 목소리도 차단했던 것도 바로 언론이다.

물론 언론은 최근 권력의 치부를 드러내고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본연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든지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고 새로 보수 진영의 이권을 충족시킬 사람이 등장한다면, 다시 그 침묵 혹은 왜곡을 이어갈 것이다.

▲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6일 검찰에 출석해 기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3. 검찰과 경찰

지난달 29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을 때 경찰은 “성숙한 시민여러분들의 충정은 이해한다”는 식의 방송을 했다고 한다. 5일 집회에서도 최대한 시민들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 방향으로 경찰은 시위대의 대열만 정비하고 살수차도 시민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배치에 만약의 사태에만 대비했다.

경찰의 이 같은 행동은 의아할 정도다.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은 집회 초기부터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며 도발했다. 그 와중에 백남기 농민은 엄청난 압력의 물대포에 맞아 결국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그런 백남기 농민에게 또 다시 부검영장을 들이밀었던 경찰이 지금의 정국에선 납작 엎드려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경찰은 정권 비호를 위해 경찰관집무집행법에 위반될 소지가 있는 시위 진압 방식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가했으며, 광장으로 모인 정권 비판의 목소리를 폭력적으로 차단했다. 그런 경찰이 하루 아침에 바뀐 것인가? 그것보단 권력의 최상층부가 변한 것이다. 경찰은 언제든지 공권력 남용을 원하는 권력자가 나타난다면 물대포를 쏘아댈 것이다.

검찰은 최순실과 그 주변인들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지만 그 속도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느리고 방법도 허술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권력을 비판하거나 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을 무작위로 기소하던 검찰은 최순실이 한국 땅을 밟았음에도 그에게 시간을 벌어줬다.

검찰은 부랴부랴 특별수사팀을 편성했으나 초반 대통령은 형사소추 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그러다가 최근 대통령으로부터 권력이 누수되자 대통령의 수사 가능성을 언론을 통해 흘리고 있다. 검찰은 권력이 강할 때 언제나 그 칼자루로 동원됐다가 정권 말 레임덕에 접어들면 그제야 ‘검사선서’에 충실해왔다. 또 다른 권력자가 들어선다면, 검찰의 칼은 다시 국민들의 목으로 들어올 것이다.

▲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오른쪽)가 지난달 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정진석 원내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4. 새누리당

새누리당은 내홍에 휩싸였다. 4일 새누리당은 대국민 사죄문을 발표했지만 당 내부에서는 이정현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물론 이정현 대표는 버티기에 들어갔다. 김무성 대표는 대통령 주변인들이 최순실을 모르는게 말이 되느냐며 호통을 치고 있고 한 비박계 의원은 4일 의총 당시 친박계 의원들이 나가려고 하자 “거지같은 것들”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새누리당은 당 해체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일부 친박 의원들만 남고 비박 혹은 탈박들은 아예 새누리당을 떠나 제3지대로 모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새누리당 의원들 중에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정책에 대해 국민의 편에서 따져 물은 사람들은 몇 되지 않다. 자유당에서 공화당,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새누리당의 역사는 언제나 기득권을 쥐고 있었고 각종 비리와 추문으로 몸살을 앓았다.

이들은 국정지지율이 5%까지 떨어진 박근혜 대통령을 떠날 것이고,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에게 다시 30% 가량의 지지를 받는 새로운 정당을 건설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정의롭지 않은 기득권과 그들로 인해 고통을 받는 국민들의 분노는 그들의 관심 밖이다.

그 외에도 기득권을 쥐고 흔들며 99% 서민·노동자의 삶을 뒤흔들고 착복한 1%들과 그들의 끈을 잡고자 함께 서민·노동자들을 앞장서서 탄압한 권력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들 중에는 99%의 국민을 개·돼지로 칭하며 귀족이 되고자 했던 사람들도 있었고 이들의 정책 설계에 따라 국민들의 삶은 휘청거리며 나락으로 떨어져갔다.

최순실은 이미 많은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지만, 이들이 존재하는 한 제2의 최순실은 제2의 박근혜를 이용해 국민들을 다시 ‘헬조선’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시민들의 분노가 광장에서 폭발하는 지금, 그들은 숨을 죽이고 있지만 지금도 내부에서 제2의 박근혜를 찾아 헤매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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