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밖의 일이 일어났다. 국민들은 대통령 업무를 민간인이 주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생각지 못했던 일이 발생해 분노했고,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국민들이 더 실망했다. 대통령이 물러나고 비선에 있던 인물들과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대통령은 다시 검찰출신을 민정수석으로 임명하며 이 국면마저 돌파해보려 한다.

지난 8일 오후 MBC 교양 프로그램 ‘PD수첩’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다뤘다. 그동안 공정방송에서 멀어졌던 MBC에서 그나마 환영할만한 방송편이다. 시의성 있는 주제 탓일까? 8일 방송은 예능 프로그램을 꺾고 시청률 동시간대 1위(5.6%)에 올랐다. 지난주 방송 시청률 2.9%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상승한 수치다. 

재벌은 피해자?

▲ 7일자 MBC 'PD수첩' 화면 갈무리

그러나 아쉬운 대목이 눈에 띈다. 이날 방송에는 A기업 관계자가 “다른데 다하는데 우리만 빠지면 소위 밉보이거나 찍힐 수 있으니까”라고 한 발언이 나온다. ‘(출연을) 자발적으로 한 건 아니라는 거냐’는 취재진 질문에 A기업 관계자는 “인정한다”고 답했다. 해당 보도만 보면 대통령이 지시하고 안종범 전 수석이 재벌들에게 반강제로 자금을 모은 것처럼 보인다.

대기업들은 최순실이 좌지우지하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774억원을 출연했다. 부영, 삼성, LG, 현대자동차와 같은 대기업에게 이는 작은 돈일지 모른다. 문제는 PD수첩이 이들을 피해자로 보이게 보도했다는 점이다. 대기업은 정치권력자 배후에 있는 최순실에 억울하게 돈을 뜯긴 걸까?

지난달 25일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다른 정황이 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한 승마협회 책임자급 관계자가 “(삼성이) 아직 승계구도가 복잡하고 언론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니 그냥 협조해주자는 차원이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즉 최순실 일가에 특혜를 주는 대가로 박근혜 정부가 삼성의 복잡한 승계구도에 도움 혹은 적어도 외면했다는 설명이다.

MBC가 뒤늦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에 뛰어든 만큼 새로운 사실이 나오지 않고 기존 보도를 잘 정리한 수준이라도 박수칠 만하다. 하지만 방송 첫 머리에 재벌의 피해를 부각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이는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 3월 롯데그룹이 ‘왕자의 난’으로 그룹이 혼란에 빠졌고 검찰수사도 올해 초 시작됐다. 이런 상황에서 롯데는 과연 아무런 대가 없이 최순실 일가 관련 재단에 거액을 출연했을까? K스포츠재단이 롯데그룹을 찾아가 체육시설 부지 확보를 위해 75억원을 요구했고 이중 롯데그룹은 70억원을 출연했는데 이 시점이 우연히도 올해 3월이다. 당시 검찰 수사를 장악했던 인물은 최근 물러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었다.

CJ도 마찬가지다. CJE&M은 미르재단에 8억, CJ제일제당은 K스포츠재단에 5억원을 출연했다. 올해 광복절 사면 명단에 이재현 CJ 회장이 포함된 건 별개의 문제일까? PD수첩은 기존 보도에 나왔던 이런 맥락을 외면하고 재벌의 억울한 측면만을 부각시켰다. 이는 최근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재벌만 빠져나갈 빌미를 만들 수 있다.

박 대통령 발언 하나하나 반박

방송은 전체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하나씩 반박하는 형식으로 구성했다. 박 대통령은 미르재단에 대해 “재단이 자체적으로 큰 사업성과가 있다”며 “프랑스 명문요리학교 에꼴 페랑디는 외국음식으로는 처음으로 한식 과정을 정규과정에 도입했다”고 말했다. 미르재단 창립 1년, 유일한 사업 성과는 에꼴 페랑디와 교류였다.

▲ 7일자 MBC 'PD수첩' 화면 갈무리

PD수첩은 미르재단이 에꼴 페랑디 관련 사업에 6억6000만원을 지출했지만 미르재단 관계자는 “사업계획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집행됐다는 것을 몰랐다”는 발언과 미르재단이 에꼴 페랑디 서울 분교를 설립하겠다고 한 업무협약이 무산된 사실, 에꼴 페랑디 관계자가 “미르재단으로부터 재정적으로 지원받은 것은 없다”는 발언을 보도했다.

비선실세 국정개입과 관해서는 2년 전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청와대 비서관들의 행태를 지적했던 모습을 다시 짚었다. 정윤회 문건유출 사건과 박 의원의 지적 등을 되돌아보는 것은 중요했다. 최근 터진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의 징후가 있었음에도 한국 사회가 특히 한국 언론이 이를 놓쳤기 때문이다.

2014년 7월7일 박 의원은 이재만 총무비서관에게 “이 비서관이 밤에 외출을 자주하신다고 들었다”고 따졌고, 이 비서관은 “일하다 만 서류를 집에서 보기 위해 가지고 갔다”고 답했다. 그러자 박 의원은 “총무비서관이 청와대 서류를 밖으로 집으로 가져갑니까”라고 재차 질문했고 이 비서관은 “제가 읽고 있는 책”이라고 답했고 박 의원은 “책은 분명 아니”라고 했다.

이 외에도 PD수첩은 최순실이 대통령의 옷을 직접 고른 이야기, 최순실이 청와대 정문으로 드나든 이야기, 문고리 3인방을 거쳐야만 하는 청와대의 폐쇄성 등을 하나씩 짚어가며 국정 전반에 대한 불신이 깊은 상황을 잘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현 상황을 단죄할 수 있는 기관인 검찰을 국민들이 신뢰하지 못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 7일자 MBC 'PD수첩' 화면 갈무리. 검찰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수사를 형사 8부에 배정했다. 수사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부장검사 출신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은 PD수첩과 인터뷰에서 “최순실씨가 몸이 안 좋다며 검찰에 바로 출두하지 않았다는 거짓말도 문제지만 최씨가 독일, 네덜란드에서 도피할 때 최소한 일주일에서 열흘 분량 통화기록이 있을텐데 검찰이 이를 확보해 누가 도왔는지 살펴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최재경 신임 민정수석을 임명했다. 검찰 출신을 임명했다는 것은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청와대가 수사과정을 수시로 보고받고 적절히 대응하겠다 뜻이다. 검찰 수사는 적극적인지 청와대는 얼마만큼 책임을 지는지, 돈을 댄 재벌이 이번 사태에 얼마만큼 개입했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지, MBC가 앞으로 함께 감시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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