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건 박근혜 대통령뿐 일까? 29일 MBC PD수첩은 ‘누가 정유라를 승마공주로 만들었나’ 편을 통해 정유라에 대한 특혜를 추적했다. 마치 모세가 나타나면 기적처럼 바닷물이 갈라지듯 정유라의 앞길에 교육기관은 규정들을 그에 맞게 조정했다. 그리고 지난 3일 이화여대는 정유라를 퇴학조치했다. 어쩌면 정유라는 지금 상황에 억울해할지 모른다. 

강자는 약자에 공감하지 않는다. 폴 피프 버클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의 재밌는 실험이 하나 있다. 학생 두 명씩 모노폴리라는 부루마블같은 게임을 시켰다. 게임의 규칙은 완전히 불공평했다. 한사람이 무조건 이길 수밖에 없는 다양한 장치들이 있었다. 이 조건에서 이긴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약자들은 이렇게 추정한다. 룰이 나에게 유리하지만 이기니까 기분은 좋다, 정도로.

이기는 게임을 하는 학생은 공통적으로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세상을 우습게 보거나 상대 학생을 무시하는 언행도 일삼았다. 게임 상의 부가 증가하는 건데도 무례한 말과 행동이 늘었고, 룰에 대한 부당함이나 상대 학생에 대한 동정심은 찾기 어려웠다. 피프 교수가 게임 후기를 묻자 자신의 전략이 왜 성공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 29일자 MBC PD수첩 방송화면 갈무리

잘못을 뒤집어쓰는 교사들

정유라는 학교에 거의 보이지 않았다. 청담고에서 공결처리는 141일이었다.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소속 오경환 의원은 PD수첩과 인터뷰에서 “소위 귀족 스포츠로 이야기되는 게 승마와 요트”라며 “2014년 요트 선수로 등록된 학생 10명 출결사항을 보니 이 선수들의 공결일수는 0일부터 73일이었고 평균 33일의 공결처리를 받았다”고 말했다. 체육특기생의 말을 들어봐도 141일은 상식적이지 않았다. 학기 중에는 출석을 위해 공결을 최소화하고 방학 때 주로 시합을 몰아서 나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담고 당시 교장은 “특혜는 아니”라며 “외압도 없었다”고 단언했다. 전창신 서울시교육청 감사팀 팀장은 “공결처리 과정에서 매뉴얼에 따르면 당연히 보충수업이 실시되고 결과를 증빙서까지 첨부해 받아놓도록 돼 있는데 보충수업 실시 계획서 한 장을 가지고 1년 내내 사용했다”며 보충수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실을 지적했다.

학교에 안 나와도 출석이 인정되니 유리한 조건에서 많은 대회에 참여했다. 고등학교 3년간 승마대회에 22회 출전했고, 경기실적과 성적은 높아졌다. 대학 입학에 유리해진 것이다.

한 청담고 학생은 “(정유라가) 태도점수에서 만점을 받았는데 (학생들 사이에서) ‘학교도 안나오는데 왜 만점을 받냐’는 얘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정유라 2학년 담임교사는 “유연(유라)이는 언제나 내 앞에서 공손했고, 자작시 쓰는 과제 수행물이 있었는데 시를 아주 잘썼고, 아이가 밖에나가 훈련을 받는 것이 학교 안에서 공부하는 것과 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특혜의혹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것에 대해 해당 교사는 “출결처리를 안일하게 했을 뿐 특혜는 없었고 행정착오일 뿐”이라고 답했다. 교장 역시 “교사의 행정실수, 착오”라고 답했다. 서울시교육청 감사팀은 검찰수사를 기다려보고 졸업취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 29일자 MBC PD수첩 방송화면 갈무리

▲ 29일자 MBC PD수첩 방송화면 갈무리

이는 단순히 정유라와 청담고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제도하에서도 얼마든지 불공정과 특혜가 발생할 수 있고, 이를 기꺼이 자신들의 잘못으로 뒤집어 써줄 교사들이 있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제2의 정유라가 또 나타나더라도 그는 오만한 태도로 다른 학생들을 향해 ‘그러게 부모를 잘 만나지 그랬느냐’고 말할 것이다.

박 대통령이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학생들이 분노하고 좌절하는 이유는 이 구조적인 문제가 쉽게 바뀔 것 같지 않아서다. 한 체육특기생은 “돈이 많으면 정말 장땡이니까…이건 아무리 미디어에 나가도 이런(입시비리) 사례는 우리가 모르게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대 관계자는 PD수첩과 인터뷰에서 “(체육특기) 11종목이 2013년 5월에 갑자기 23종목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2015년 입시는 2012년에 완성이 되는데 갑자기 2013년에 변경된 것이다. 이대 관계자는 “시기적으로도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고 바로 2~3달 뒤”라고 말했다. 새로 추가된 종목 중 유일한 합격자는 승마분야 정유라가 유일했다.

이대 입학처장은 지난달 28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감사에서 “(정유라 지원사실을 확인한 뒤) 정유라 양이 꽤 유력인사라 앞으로 논란이 될 거 같아 총장님께 보고를 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전공이 정치학이라는 것을 밝히며 “도표를 그려 고 박정희 대통령부터 해서 최태민 목사하고 그려드려서 총장님이 (정유라에 대해) 아시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이 한 학생의 진로를 위해 특혜를 주는데 있어서 불필요한 행동을 감수하고, 눈치를 살피는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교육부 감사결과 정유라는 면접에 지참할 수 없는 소지품(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가져갔고, 서류에서 탈락권이었던 정유라를 대학은 면접에서 최고점을 주며 합격시켰다. 최경희 당시 총장은 사임 순간까지 “특혜가 없었다”고 말했다.

2013년 상주에서 열린 승마대회에서 한 선수가 정유라를 제치고 3관왕을 차지하자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심판들이 경찰서에 불려갔다. 대통령과 친한 최순실이 배후에 있다는 사실이 승마계에는 파다했고, 대통령이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정유라에 힘을 실어줬다는 정황은 언론보도를 통해 많이 보도됐다.

이번 방송은 대통령의 의지만 있다면 불공정을 막을 제어장치가 교육계와 문화체육계 어디에서도 작동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세히 보여준다. 진상규명·책임자 처벌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재발방지다. 수능끝난 학생들이 촛불을 들며 직감한건 이 사태가 재발할 것 같은 불안감이다. 정유라만 없앤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을’들의 생각과 달리 또 다른 ‘갑’들은 정유라가 재수가 없었던 것이라 생각할 수 있고, 그와 달리 자신의 전략은 탁월하다 생각하고 넘어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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