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에 대한 국비지원 문제-검토, 조치 要”

지난 8월 별세한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남긴 업무일지 2014년 11월25일치에는 ‘연합뉴스’가 언급돼 있다. 매년 국고 380억여 원(정부 구독료+사업 지원금)이 투입되는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를 청와대가 면밀히 주시한 정황으로 풀이됐다.

명목상 380억 원은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의 공적 역할에 대한 ‘대가’로 지급된다. 정보주권의 수호, 국민 간의 정보격차 해소, 국가의 홍보역량 강화 등이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의 주요 공적 역할로 꼽힌다.

하지만 ‘공적 역할에 연합뉴스가 충실한가’라는 질문에 구성원들조차 고개를 젓고 있다. 2008년 이후 입사한 기자들을 중심으로 97명의 기자들이 지난 21일 “우리 젊은 기자들은 출근길이 두렵고 퇴근길이 부끄럽다”고 성명을 낸 것이 대표적이다. 박노황 연합뉴스 사장 체제에서의 보도‧인사 불공정성에 대한 반발이었다.

▲ 연합뉴스 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미디어오늘은 26일 오전 서울 인사동 인근에서 김태식 전 연합뉴스 기자를 만났다. 그는 지난해 연합뉴스에서 해고됐다가 1심 재판부에서 무효판결을 받고 현재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 기자는 본인이 겪은 ‘박노황 체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연합뉴스는 김 기자 해고사유로 △부당한 목적의 가족 돌봄 휴직 신청 및 회사의 정당한 인사(업무)명령위반 △업무 중 사적 SNS 활동 등 근무태도 불량 △부적절한 언행 △직무관련 부적절한 선물 수령 △회사의 허가가 없는 외부 강연 및 강연료 수령 등을 내세웠지만 법원은 지난 9월 “정당한 이유가 없어 무효”라고 판단했다. 부당한 인사 조치였던 것이다. 

- 공정언론과 공정인사를 촉구한 후배들의 성명을 어떻게 봤나?

“당연한 반응이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용기를 냈다. 그만큼 내부 구성원들은 ‘박노황 체제’에 억압돼 있다. 기자는 기자다워야 함에도 현 경영진 체제에서는 기자다울 수 없었다. 그에 대한 저항이었다고 평가한다.”

- ‘박노황 체제’의 문제는 무엇인가.

“나는 현 경영진 체제를 대략 1년 정도 겪었다. 가장 황당했던 사건은 박 사장 취임 직후 행보였던 국기게양식과 현충원 참배였다. 우스꽝스러운 행사였다. 현충원 참배를 하면서 그는 국민이나 공공성이 아닌 ‘국가’만 강조했다.(박 사장은 현충원 참배를 하면서 방명록에 “신속정확하고 불편부당한 뉴스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서의 책무를 다하겠습니다”라고 썼다.) ‘국가기간뉴스통신사’에서 말하는 ‘국가’는 현 권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 권익 증진, 독재 권력에 대한 견제로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현 경영진은 ‘국가’를 ‘현 권력’으로 보고 있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지난해 3월 취임한 박 사장의 행보는 도마 위에 오르곤 했다. 그는 첫 대외 일정으로 동작동 현충원을 참배했다. 언론사 사장으로 이례적인 행보였다. 또 연합뉴스 임직원 70여 명을 모아 국기게양식을 열어 ‘애국 퍼포먼스’를 펼쳤다.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가 2012년 파업을 통해 쟁취한 편집권 보장제도인 ‘편집총국장제’를 무력화했다. 전직 노조위원장 등 노조 활동을 했던 인사들을 지역으로 발령 내어 회사 안팎으로 비판을 받았다.

▲ 김태식 전 연합뉴스 기자. (사진= 김태식 기자 제공)
김 기자 역시 오랫동안 노조 활동을 해왔다. 그는 2004년 1월 노조 부위원장을 맡았고 2009년 노조 공정보도위원회 간사를 역임하며 연합뉴스의 ‘4대강 특집’ 기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당시 편집국장은 박노황 사장이다. 김 기자는 2012년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의 103일 파업에 최고참 기자로 완주하기도 했다. 

- 최순실 국정농단 국면에서 연합뉴스를 어떻게 평가하나?

“박근혜 대통령이 제1차 대국민사과를 하기 전까지 연합뉴스는 수동적이었다. 주도적으로 보도한 기사가 사실상 전무했다. 정부‧여당의 반응, 야당과 시민사회의 반응을 전달하는 데 그쳤다. 새로운 팩트를 발굴하는 기사는 찾기 어려웠다.”

- 청와대 익명의 관계자가 연합뉴스를 통해 사태를 무마시키려 해 논란이 컸다.

“연합뉴스가 침묵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공작 도구’로서 활용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청와대가 국정농단 사태를 덮는데, 연합뉴스가 기여한 것이다. 특히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을 날릴 때 청와대 창구를 자처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8월21일자 연합뉴스 기사였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힘겨루기가 한창이던 때였다.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는 연합뉴스를 통해 “일부 언론 등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이 우병우 죽이기에 나섰다”며 ‘뒤집기’를 시도했다.

이에 조선일보는 “실명으로 말하지 못하는 내용을 갖고 익명으로 흙탕물을 끼얹은 뒤에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것”이라며 연합뉴스를 겨냥해 “청와대 익명 관계자의 언론 공격은 대부분 정부 지원금을 받는 뉴스통신사를 통해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 최순실 사태를 보면, 공영언론이 민영언론에 못 미쳤다는 평가가 많다. 외려 정부‧여당에 편향적인 보도가 쏟아져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나를 포함한 공영언론 소속 언론인들은 민영언론을 많이 비판했다. ‘정권 입맛에 따라 움직인다’, ‘안보 장사를 한다’ 등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파헤치고 부패 정권을 무너뜨린 건 민영언론이었다. 공영언론사들은 ‘관영’이라는 비판이 나올 만큼 철저히 침묵했다. 연합뉴스 역시 보수단체 시위와 시민들의 촛불집회를 동일선에서 보도하는 등 기가 찰 만한 기사를 쏟아냈다.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의 ‘국가’를 ‘권력’으로 바라본 결과다.”

▲ 박노황 연합뉴스 사장. (사진=연합뉴스)
최근 박 사장의 발언이 사내에 논란을 일으켰다. 연합뉴스의 젊은 기자들이 비판 성명을 낸 직후인 22일 박 사장은 확대간부회의를 열었다. 그가 이 자리에서 기자들의 반발에 대해 “(그러면) 정부 지원 받지 말고 월급 반으로 깎고 공정보도하든지 하라”고 발언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박 사장은 23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관련 발언을 한 사실을 부인하며 “‘국가가 국가기간뉴스통신사에 부여한 공적 책무를 하지 않을 것이냐. (국가기간뉴스통신사가 아닌) 일반 언론이 될 것이냐’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김 기자는 “법률의 함의를 왜곡하면서까지 연합뉴스의 본래 정체성까지 흔들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박 사장 발언은 뉴스통신진흥회법을 오독한 것이라고 본다. 정부 구독료는 공적 서비스 판매에 대한 정당한 대가다. 그는 자꾸만 세금 지원으로 착각하는데, 국가가 해야 하는 일을 대행하는 대가로 정당하게 지급받는 거다. 국가기간뉴스통신사라는 말은 현 정권에 복무한다는 뜻이 아니다. 연합뉴스를 사실상 정부 조직의 일원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 연합뉴스는 정부 구독료를 받는 언론사다. 연 350억 원 이상이다. ‘낙하산 사장’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구조적 상황에 비춰보면,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실현가능한가?

“(정부와의 구독료 체결을 명문화한) ‘뉴스통신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구독료를 정기적으로 받고 있는데, 내가 알기론 연합뉴스 매출액의 30%에 달하는 규모다. 연합뉴스가 안정화하는 데 기여한 법인 건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법이 제정될 당시와 그 이후에도 연합뉴스 내부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정부가 인사나 보도에 개입할 수 있는 합법적인 통로가 아니냐’는 것이다. 때문에 권력을 견제하는 장치와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더 이상 (안정을 이유로) 지배구조 개선과 공정성 논란 문제를 후순위로 둘 순 없다.” 

▲ 박노황 연합뉴스·연합TV 사장(맨 오른쪽)이 지난해 3월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국기게양식은 박 사장의 취임 직후 일정으로 지나친 ‘애국 코드 맞추기’라는 안팎의 반발을 산 바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뉴스통신진흥회(30.77%), KBS(27.77%), MBC(22.3%) 등이 연합뉴스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대주주인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진 역시 대통령 추천 2명, 여당 추천 2명, 야당 추천 1명, 신문·방송협회 추천 2명으로 구성된다. 친여·범정부 성향 인사가 7명 가운데 6명을 차지하는 구조다.

“현재도 권력이 지배구조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러한 우려가 현실화한 게 이번 최순실 사태라고 본다. 연합뉴스는 언론사로서 견제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친정부적인 인사에 대한 개혁뿐 아니라 지배구조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 새 정부, 새 권력이 출범하면 연합뉴스는 또 바뀔 거다. 보수 정권 비판을 많이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낙하산 논란’은 항상 있었다.”

- 연합뉴스 기자들은 ‘편집총국장제’를 사내 편집권을 보장하는 장치라고 말한다. 어떠한 이유에서 그렇게 볼 수 있나?

“편집총국장제도는 2012년 103일 파업에서 구성원들이 쟁취한 성과였다. 이전에는 편집 총감독을 편집 담당 상무가 맡았다. 아무래도 경영진 입김이 크게 반영됐다. 편집총국장제는 경영과 편집을 분리할 수 있는 제도이자 절차였다. 온전하지는 않아도 제도상으로 경영진의 직접 지시를 받지 않는 시스템이었다. 편집총국장제가 완벽하다고 할 순 없지만 상징적으로도 의미가 있던 제도였다. 박노황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이 제도를 부정했다.”

▲ 김태식 전 연합뉴스 기자. (사진= 김태식 기자 제공)
- ‘뉴스 도매상’이라는 연합뉴스의 특수한 역할을 일반 시민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일반 시민사회에서는 연합뉴스라고 하면 ‘인터넷 언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도매상으로서 모든 뉴스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도매뿐 아니라 소매상으로서 언론 소비자들을 직면하는 현 상황에선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지금처럼 통신사가 언론으로서 추구해야 하는 길을 잃게 되면, 이는 곧 국가의 불행이다. 연합뉴스에 대한 비판과 견제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KBS‧MBC‧YTN 등 방송 언론에 대한 감시는 계속되고 있지만 연합뉴스는 견제의 사각지대에 있다. KBS‧MBC에 대한 감시만큼 연합에도 견제가 이뤄져야 한다. 어쩌면 지배구조 개선은 이후의 문제일 수 있다.”

- 내부에서 공정보도를 촉구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한마디한다면?

“연합뉴스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나는 연합뉴스의 한계를 많이 봐왔고 또 안에서 복무하며 살아왔다. 그럼에도 연합뉴스를 제 분신으로 생각하며 고맙게 여기고 있다. 내가 시종일관 비판하는 건 권력에 언론 자존심을 팔아 넘긴 경영진이지 연합뉴스 존재와 동료들의 의지를 부정하고 싶진 않다.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는 뜻에서 언론 앞에 섰다. 어느 정도 보탬이 될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후배들과 같은 생각을 하는 ‘못난 선배’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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