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정윤회씨가 MBC 안광한 사장을 수차례 만났다는 보도를 ‘터무니없는 음해’라고 부인한 MBC의 안 사장 반박 입장 리포트에 대해 MBC 기자협회가 “MBC 뉴스 역사에 치욕으로 기록될 기사”라고 비판했다.

MBC 기자협회(왕종명 회장)는 13일 ‘MBC 뉴스는 안광한 사장의 사적 소유물이 아니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우리는 이 (뉴스데스크) 기사가 기사의 기초 조건인 ‘쌍방 당사자 취재’를 생략하고 ‘전달자로서의 중립’을 상실한 채 안 사장 개인의 입장을 ‘진실’로 확정하고 보도한, 중차대한 ‘공영방송 사유화’의 생산물로 규정한다”고 밝혔다.

앞서 TV조선은 11일자 ‘뉴스 판’에서 “정윤회씨가 모 방송사 사장과 여러 차례 만나 우호적인 보도를 요구했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미디어오늘은 해당 방송사 사장이 누구인지 복수의 TV조선·MBC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정윤회씨와 독대했다는 방송사 사장은 MBC 안광한 사장이라고 보도했다. (관련기사 : 정윤회와 독대했다는 방송사 사장은 MBC 안광한)

▲ 12일 뉴스데스크 리포트 갈무리.
이에 대해 MBC는 12일 ‘뉴스데스크’ 리포트를 통해 “TV조선과 미디어오늘이 MBC와 MBC 안광한 사장을 지목해 근거 없는 의혹을 사실인 듯 단정 지어 보도했다”며 “두 언론사에 즉각적인 형사고소 조치 등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반드시 허위보도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MBC 기자협회는 TV조선과 미디어오늘 보도를 ‘음해성 보도’라고 단정한 해당 리포트 출고본에 대해 “(MBC) 기자가 자사 사장을 상대로 취재할 용기가 없다면 자사 홍보부가 사장의 말을 옮겨 배포한 보도자료를 인용해 보도하면 되는 것”이라며 “기자가 무슨 존재라고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취재도 없이 ‘음해성 보도’라는 답을 내리는가? 그 답을 내려 보도하는 순간, MBC 뉴스는 안광한 사장 개인 소유물이 돼버렸다”고 꼬집었다.

기자협회는 “안광한 사장이 정윤회를 여러 차례 만났다는 TV조선의 의혹 제기는 ‘사실무근’이라는 말로 덮을 게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진위가 밝혀져야 한다”면서 “MBC 기자협회는 MBC 뉴스데스크가 자사 사장에 대한 의혹을 ‘의혹 제기자’와 ‘당사자’ 양측에 대한 쌍방의 취재 과정도 없이 ‘안광한 사장은 그런 일 없다’는 신(神)적 수준의 최종 심판을 내렸다는 점을 문제 삼는 것이다. 이게 공영 방송의 사유화”라고 지적했다.

기자협회는 또 해당 리포트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은 현 MBC 보도의 참상을 증명해 주는 중대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17년 1월12일 뉴스데스크 열 번째 꼭지는 기사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신임 MBC 기자협회장으로 당선된 왕종명 기자는 “선·후배 동료들의 지지는 MBC뉴스 재건을 위한 고민과 행동을 함께 해주시겠다는 동의와 약속으로 받아들이겠다”며 “그 뜻 하나하나는 MBC뉴스 재건을 위한 긴 노정에 귀한 연료로 쌓아두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왕 기자는 이어 “불과 열흘 사이, 막내들의 영상 반성문과 선배들의 경위서, 지역 MBC 선·후배들의 경위서를 통해 우리는 잿더미 속에서 MBC뉴스 재건의 작은 불씨를 발견했다. 이제 시작이다.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13일 MBC 기자협회 성명 전문이다.

[MBC 뉴스는 안광한 사장의 사적 소유물이 아니다]

MBC 뉴스 역사에 치욕으로 기록될 기사가 또 하나 더해졌다.

MBC 뉴스데스크는 어제, TV조선이 “모 방송사 사장이 정윤회와 독대했다는 정윤회 측근의 증언이 있다”는 그제 보도에 대해 안광한 사장의 반박 입장을 보도했다. MBC 기자협회는 이 기사가 기사의 기초 조건인 ‘쌍방 당사자 취재’를 생략하고 ‘전달자로서의 중립’을 상실한 채 안광한 사장 개인의 입장을 ‘진실’로 확정하고 보도한, 중차대한 ‘공영방송 사유화’의 생산물로 규정한다.

송고본은 언급의 가치조차 없다. 다만 MBC 뉴스시스템에 있는 취재데스크는 인터넷 댓글판이 아니고 기자는 익명 네티즌이 아니라는 기초 상식만 언급하겠다.

출고본을 보자. 앵커 멘트에서 “TV 조선과 미디어오늘이 MBC와 안광한 사장에 대해 터무니없는 음해성 보도를 했는데”라며 두 언론사의 기사에 대해 ‘터무니없는 음해성 보도’라는 답을 내렸다. 묻는다. 정윤회와 안광한 사장이 만난 적이 있는 지, 없는 지 확인 취재를 했는가? 식당은 가봤는가? 증언을 한 정윤회 측근이란 사람을 만났는가? 아니면 안광한 사장에게 따져 물었는가? TV조선은 취재를 통해 ‘두 사람이 여러 차례 만났다’는 증언을 보도했고 안광한 사장은 ‘사실무근’이라며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 그럼 기사는 “TV조선과 미디어오늘이 이런 의혹을 제기했는데 안 사장은 터무니없는 음해성 기사라며 반박했다”고 전해야 한다. 기자가 자사 사장을 상대로 취재할 용기가 없다면 자사 홍보부가 사장의 말을 옮겨 배포한 보도자료를 인용해 보도하면 되는 거다. 기자가 무슨 존재라고 진실이 무엇인 지에 대한 취재도 없이 “음해성 보도”라는 답을 내리는가? 그 답을 내려 보도하는 순간, MBC뉴스는 안광한 사장 개인 소유물이 돼버렸다.

이 앵커 멘트는 실제 방송에선 “TV조선과 미디어오늘이 MBC와 MBC 안광한 사장을 지목해 근거 없는 의혹을 사실인 듯 단정지어 보도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 문장 역시 ‘근거 없는 의혹‘이라고 스스로 단정지으면서 타사 기사가 단정지었다고 비난하는 모순을 만들었다.

네 번째 문장을 보자. “MBC는 TV조선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명확히 밝혔지만 TV조선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무책임한 의혹을 그대로 보도했습니다”라고 했다. 세상의 어떤 기자가 의혹의 당사자가 “사실무근”이라고 해서 기존의 ‘믿을 만한’ 취재물을 스스로 부정하고 보도를 포기하는가? 자백해야 기사인가? 그렇다면 세상에 태어날 고발 기사는 없다. 당사자가 ‘사실무근’이라고 했는데도 보도한 것은 MBC 기사에서 언급한 ‘무책임한 의혹’이 아니라 그 기사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해당 언론사의 결정 행위다. 게다가 TV조선의 기사에서 ‘사실무근’이라고 밝힌 당사자는 MBC가 아니라 안광한 사장이다. MBC와 안광한 사장이 동일체인가? 이게 바로 MBC 뉴스가 사장 소유물로 전락한 증거다.

그 다음 문장에선 “미디어오늘은 ‘정윤회와 독대했다는 방송사 사장은 MBC 안광한’이라는 제목의 단정적인 기사를 게재했습니다”라고 했다. ‘독대했다는’과 ‘독대한’은 다르다. 그게 ‘인용’과 ‘단정’의 차이다. 관찰자이면서 취재 행위자인 기자는 최종 확인할 수 없는 미완의 취재물을 보도할 때 주로 인용을 통해 전달한다. 미디어오늘은 ‘정윤회와 독대했다는’ TV조선 보도에 등장하는 익명의 인물이 ‘MBC 안광한 사장’이라는 그들의 취재 결과를 보도한 것이다. ‘정윤회와 만났다’고 단정한 게 아니라 ‘TV조선이 보도한 인물이 안광한 사장’이라는 팩트를 확인한 것이다.

“복수의 TV조선, MBC 관계자에게 확인했다면서도 누구에게 확인했는 지는 전혀 밝히지 않았습니다”라는 문장에선 대체 기자가 쓴 문장인 지 의문이 든다. 익명의 취재원을 기사에서 밝히라는 얘기인가?

타사가 생산한 기사를 두둔할 의도는 없다. 안광한 사장이 정윤회를 여러 차례 만났다는 TV조선의 의혹 제기는 ‘사실무근’이라는 말로 덮을 게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진위가 밝혀져야 한다. 진실이 아니라면 안광한 사장, 회사 홍보부, MBC 뉴스데스크가 언급한대로 법적 책임을 물어 법정에서 따지면 된다. MBC 기자협회는 MBC 뉴스데스크가 자사 사장에 대한 의혹을 ‘의혹 제기자’와 ‘당사자’ 양측에 대한 쌍방의 취재 과정도 없이 ‘안광한 사장은 그런 일 없다’는 신(神)적 수준의 최종 심판을 내렸다는 점을 문제 삼는 것이다. 이게 공영 방송의 사유화다.

그런데 이 보도는 이 보도가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현 MBC보도의 참상을 증명해준다는 점에서 중대한 증거로 남는다. 공영 방송, 공정 보도의 의미를 알고, 일 할 줄 아는 기자들은 비보도 부문, 멀리는 회사 밖으로 밀어내져 있다. 대신 위에서 시키는 대로 기사 아닌 글을 납품하는 다수의 ‘주문 생산형’ 회사원들이 보도국 주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위의 데스크와 부장, 이를 통제해야할 편집부와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이 어떤 인식을 가지고 뉴스를 생산하고 있는 지, 이 꼭지는 적나라하게 입증한다.

2017년 1월12일 뉴스데스크 열 번째 꼭지는 기사가 아니다.

2017년 1월 13일 MBC 기자협회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