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열린 천안함 재판 증인신문에서 사고 직후 탐색구조작업을 했던 UDT 대대장이 대원들에게 함수의 절단면 동영상을 촬영하도록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구조현장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 같은 촬영을 근거로 내부폭발은 아니라고 보고했다고 이 대대장은 밝혔다. 이 때문에 구조 과정에서부터 이미 군 내부에서 사고원인 조사를 하고도 은폐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법정에서 다시 벌어지기도 했다.

천안함 사건 당시 해군특수전 여단 1대대 소속 UDT대대장(당시 해군중령)이었던 권영대 현 인천해역 방어사령부 27전대장(해군대령)은 16일 오후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윤준 부장판사) 주재로 열린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조사위원(서프라이즈 대표)의 명예훼손 사건 항소심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증언했다. 그는 잠수사들에게 수중카메라로 동영상을 찍어보라고 지시했으며, 촬영한 영상을 보고 내부폭발은 아닌 것 같다고 판단해 상부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이는 구조팀이 사고원인을 알 수 없는데도 신상철 대표가 알고도 은폐하고 있다고 허위주장했다는 검찰 공소내용과 배치될 여지가 있다. 권 전대장은 신 대표의 항소심 사건 공판의 첫 증인이다.

권 전대장은 당시 실종자 구조와 선체수색 작업을 담당하는 책임자로서 탐색구조 작업이 주 임무였으며 사고원인 조사는 임무사항에 포함돼있지 않다고 밝혔다. 권 전대장은 2010년 3월26일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지 이틀만인 3월28일 오후 백령도에 도착해 구조 작업을 실시했다.

검사는 권 전대장이 구조과정에서 사고원인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신상철 대표가 마치 다 알고도 조작 은폐한 것처럼 글을 쓴 것에 대해 어떤 견해인지를 신문했다. 검사가 이날 법정에서 예로 든 신 대표의 글은 다음의 두가지였다.

“잠수사가 접근하는 순간 침몰의 원인은 밝혀지게 돼 있습니다. 파손된 절단면 부위의 형태, 절단면만 보면 폭발인지 절단인지 전문적 감정결과가 나옵니다…따라서 결론은 이미 나왔을텐데 원인발표를 하고 있지 않는 것은 어느 쪽으로 사건을 몰고갈지 어떻게 이용해먹을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2010년 3월30일 서프라이즈 게시글)

“잠수사들이 선체에 접근가능했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일 처음 한 일이 생존자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까 여기저기 열어보며 구조작업으로 본격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순진하신 거죠, 침몰의 원인을 밝혀줄 단서를 조사해서 보고하는 것이 첫 임무였을 것이 자명합니다. 그렇게 했을 겁니다, 자 그러면 이명박은 결론을 갖고 있다, 그런데 아직 정식으로 정확하게 발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참 가증스러운 사람들입니다”(2010년 4월1일 서프라이즈 게시글)

이에 대해 권 전대장은 “그 당시에는 그렇게 알 수가 없었다. 확인이 안되는 상황이었다”며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더구나 윤준 재판장이 ‘당시 잠수사들이 선체 접근하면 사고원인 알 수 있느냐’고 신문했을 때도 권 전대장은 “인양하기 전까지 알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수심 2~3미터 들어가면 거의 안보인다. 겨우 닿는 부분 30센티 정도”라고 답했고, 절단, 좌초, 모래에 쓸렸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수중에서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그래도 궁금하지 않았겠느냐’, ‘왜 천안함이 이렇게 됐는지 잠수사들 얘기는 없었느냐’는 재판장의 신문에도 권 전대장은 “따로 그런 얘기는 없었다”며 “(수색을) 빨리 하고 거기에만...100% 집중했다”고 밝혔다. 구조팀 책임자 입장에서 결론을 숨기거나 보고를 미룬 사실도 없다고 권 전대장은 강조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답변하던 권 전대장은 침몰원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는 검사 신문에 함수의 절단면을 촬영해오라고 잠수사들에게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최초에는 침몰상황이라면 여러 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는데, 그 때엔 내부폭발 얘기가 처음에 나와서. 저도 같은 유형의 함장을 해봤습니다. (내부폭발로 함정이) 그렇게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증빙할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부수색할 때 최초 수중카메라를 같이 찍을 수 있으면 찍어봐라, 다들 근접거리에서 찍어온 것을 보니 폭발로 탄 것이 없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상부에 보고했습니다.”

▲ 천안함 사고직후 2010년 3월29일 함수 절단면 부근에서 수중촬영한 동영상의 사진캡처 화면. 책 41쪽. 사진=권영대, '폭침어뢰를 찾다' 중에서
▲ 천안함 사고직후 2010년 3월29일 함수 절단면 부근에서 수중촬영한 동영상의 사진캡처 화면. 책 41쪽. 사진=권영대, '폭침어뢰를 찾다' 중에서
이를 두고 재판장은 ‘아까 사고원인 조사는 임무에 부여 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느냐, 뭘로 침몰했는지를 카메라로 찍었다는 건 말이 안맞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그러자 권 전대장은 “탐색 들어간 최초 위치에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을 확인해라는 것으로, 사고원인조사와 다르다”며 “들어가는 가용수단과 진입로라든지 장애물을 확인하게 돼 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최대한 찍어오라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런데도 권 전대장은 “일단 내부폭발 자체는 없다는 것이 확인이 됐다”며 “함장 하면서 내부폭발로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없는데, 자꾸 내부폭발이라고들 해서 (증거로) 보여주기 전에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재판장이 ‘내부폭발은 아니고, 어떤 원인으로 침몰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권 전대장은 “함정이 반토막 난 것은 기뢰나 어뢰에 의한 두가지 밖에 없다”며 “다만 그것은 제가 제가 분석할 게 아니고 올려봐야(인양해봐야) 안다”고 밝혔다. 적어도 사고원인이 내부폭발은 아니라는 것을 조사하려 했다는 시인으로 볼 수 있는 증언이다.

이와 관련해 권 전대장은 지난해 3월 자신이 펴낸 ‘폭침 어뢰를 찾다!’라는 책에서 3월29일 07시 최영순 EOD대장을 전날 식별된 함수로 보내면서 다음과 같은 지시를 했다고 썼다.

“두가지 미션, 위치 부이 설치후 우선 수중카메라로 절단면을 찍어오고, 무엇이라도 손에 걸리는 것을 가져올 것”(권영대, ‘폭침 어뢰를 찾다!’, 조갑제닷컴, 2016. 40쪽)

그는 이어 “다행히 5대대 소속인 이준수(실명은 이중순) 중사가 수중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다”며 “07시40분경부터 1조(준위 한주호, 상사 김형준, 김정오)는 선체에 안내줄 설치 및 이불 1개 회수, 2조(중사 이중순, 하사 김경일)는 선체 내 생존자 확인을 위한 망치 두드림, 절단면 동영상 촬영을 실시했다”고 작성했다. 책에는 당시 함수 절단면에 들어가 촬영한 사진(41쪽)도 동영상에서 캡처돼 실려 있었다. 권 전대장은 또 “이중순 중사가 찍어온 동영상을 분석한 결과 절단면이 불에 탄 흔적은 없고 굉장히 날카롭게 찢어져 있었다”며 “보고용 동영상 편집을 박수철 대위에게 지시하고 대원들이 있는 함수 상륙군 침실에 들었다”고 썼다.

이 같은 책에 작성한 내용이 사실이냐는 권경애 변호사의 신문에 권 전대장은 “그렇다”고 답했다. 천안함 수중 선체 동영상 촬영은 이것이 최초인 것으로 안다고 권 전대장은 답했다.

이밖에도 권 전대장은 이같이 촬영해서 판단한 함수 절단면 동영상을 토대로 그 다음날인 3월30일 백령도 독도함에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아예 내부폭발이 아니라고 보고하기도 했다. 권 전대장은 자신의 책에서 이 대통령이 ‘내부에서 폭발한 것 아닌가요? 아니면 이렇게 동강이 나겠어요? 내부에서 폭발할 소지가 충분히 있잖아요’라 묻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고 썼다.

“UDT 대대장 권영대 중령입니다. 내부폭발과 관련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최초 잠수시 절단면과 내부에서 불에 탄 흔적을 우선적으로 확인했습니다. 확인 결과 절단면 부근과 근처에 있었던 모든 물건들에서 불에 타거나 그을음 자체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내부폭발은 없었습니다!”(권영대, ‘폭침 어뢰를 찾다’, 51~52쪽)

▲ 천안함 사고당시 해군 특수전여단(UDT) 대대장으로, 함수 선체 수색 및 구조활동을 지휘한 권영대 인천해역 방어사령부 27전대장(해군대령). 사진=권영대, '폭침어뢰를 찾다' 중에서
▲ 천안함 사고당시 해군 특수전여단(UDT) 대대장으로, 함수 선체 수색 및 구조활동을 지휘한 권영대 인천해역 방어사령부 27전대장(해군대령). 사진=권영대, '폭침어뢰를 찾다' 중에서
이를 두고 재판장은 권 전대장이 당시 사고원인에 확실히 결론을 못내렸다해도 적어도 내부폭발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재판장은 시민 입장에서 볼 때 군이 책임을 회피하고자 한 것 아니냐고 거듭 따져물었다.

-재판장 : “군인이 아닌 시민 입장이라고 보면, 내부폭발이라고 보면, 군에 책임이 있는 것이잖아요. 함정 자체의 책임, 관리 부실, 불순행위 등이 요인이기 때문에 군 당국은 내부폭발이냐 여부가 책임소재를 묻는데에 가장 민감한 부분이겠죠. 내부폭발이 아니면 군 입장에서는 내부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증인(권영대 전 UDT대대장) :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함을 방문해, 내부에 폭발시켰구나 불나서 한 것 아니냐고 두차례 언급했지만, 원인이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재판장 : “일반시민 입장에서 증인으로서는 사고원인을 모르지만 군은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보고해야 겠구나 여긴 것 아닙니까”

=증인(권영대 전 UDT대대장) : “그런 면이 있었습니다.”

-재판장 : “원인을 모르면서 내부폭발 아니라고 총장에게 대통령이 있는 엄중한 자리에서 보고하라고 부추겼나요. 잘보이려고 했나요”

=증인(권영대 전 UDT대대장) : “잘보이려고 그런 건 아닙니다. 해군 함정 타보면 내부 폭발로 될, 그렇게 될 리는 없다고 봤습니다. 동영상을 확인한 상황이었고, 폭발 흔적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부폭발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다만 재판장은 ‘만약 사고원인을 은폐하려면 저런 상황이 있을리 없지 않느냐’, ‘은폐하려면 저렇게 질문할 리 없지 않느냐’고도 신문했다. 이에 권 전대장은 “해군 입장에서 참모총장이 당장 얘기할 수 없는 궁지에 몰리는 게 안타까웠다”고 답했다.

이를 두고 신상철 대표는 법정에서 “저걸 보면, (사고원인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았을텐데 왜 발표하지 않고 공개하지 않은 것이냐”라며 “(권 전대장 등도) 사고원인이 궁금하기 때문에 (동영상을) 찍어오라고 했을텐데, 왜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는지 궁금하다”라고 주장했다.

‘국민에 알렸다면 그런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냐, 그래도 은폐와 조작이라고 하는 것은 다르지 않느냐’는 재판장 신문에 신상철 대표는 “긴급한 문제라고 생각했다”며 “빨리 나와서 의논하고 공개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봤다”고 답했다. 너무 늦어지기 때문에 숨은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신 대표는 덧붙였다.

▲ 천안함 함미
▲ 천안함 함미
이와 관련해 함수 절단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는 얘기는 지금까지 언론에도 보도된 적은 없다. 다만,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다녀간 다음날(2010년 3월31일자) 조선일보가 5면 기사 ‘“함수쪽 절단부위 촬영 결과 내부폭발은 아닌 것 같다”’로 이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그러나 기사엔 동영상이 아닌 ‘사진 촬영’으로 나와있다. 당시 조선일보는 “배석했던 해군특수전여단 권영대 중령은 ‘수색을 진행한 함수쪽 절단부위의 사진촬영과 부유물 등을 조사한 결과 폭발이나 그을음 흔적은 없고, 불에탄 물체도 없었다’며 ‘내부폭발은 없었던 것으로 본다’고 보고했다”고 전했다. 또한 당시엔 천안함 함수와 함미 절단면이 깨끗했다는 보도(SBS 3월30일 8뉴스 ‘절단면 깨끗’)가 더 먼저 나왔었다. 그 때도 영상을 촬영한 것이 아니라 잠수사들의 증언을 근거로 보도한 것이다.

한편, 재판부는 애초 이날 변호인이 권 전대장을 상대로 준비한 신문사항이 검사측의 주신문과 관련이 없다고 판단해 다음 공판기일에 권 전대장을 다시 부를 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권 전대장은 함수 선체 수색 뿐 아니라 이른바 1번어뢰 수거과정에 모두 관여했으며 이 같은 내용을 그의 저서에 자세히 수록했다. 변호인측은 재판에서 신 대표가 쓴 글이 허위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려면 권 전대장의 주장을 법정에서 검증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이날 신문과는 별도로 변호인측 증인으로 다시 부르겠다는 입장이다. 다음 재판은 4월6일 오후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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