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이도 구조되지 못했던 거야? 얼마나 추울까.”

50대 최은자(54)씨는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 실종자 권혁규군(6) 사진 주변에서 한동안 서성댔다. “저 앞 쪽으로 가보자”는 남편 김용국(61)씨의 말에 겨우 발을 뗐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관하는 제16차 촛불집회가 열린 18일 오후 이 부부는 2주 전에 이어 다시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촛불집회에 나오는 5060세대의 생각은 어떨까. 2012년 대선에서 ‘세대 내 소수자’였던 이들이 다시 한 번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까닭을 들어봤다.

최씨는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반발해 광화문 광장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의 집단 텐트를 보고는 “왜 차별을 해서 사람들을 차가운 길바닥에서 자게 만드나”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관하는 제16차 촛불집회가 열린 18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사진=김도연 기자
▲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관하는 제16차 촛불집회가 열린 18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사진=김도연 기자
김씨는 광화문 광장 행렬 앞 쪽에서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촛불집회가 예전보다 식은 것 같다. 이재용이 구속됐다고 다들 안심해서 그런 건 아닌지.” 

200만 촛불이 켜졌던 지난해 11월 집회에 참석한 적 있는 그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가 크게 불어난 것에 내심 불안해했다.

김씨는 “지지난주 정말 놀랐다”며 “TV로만 봤는데 직접 보니까 태극기 집회가 상당한 규모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놈의 나라가 거꾸로 됐다”며 “참 속도 없는 인간들이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두둔하고 무조건 신봉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씨는 “나라의 발목을 잡는 훼방꾼들, 박근혜라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사람들이지”라며 “자발적으로 나온 게 맞나 싶다”고 거들었다. 김씨는 “그들에겐 나라가 어떻게 될지 고민이 없다”며 “지역적인 감정에 갇혀서 자기들네 편견만 쌓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광장에서는 거침없이 소신을 밝히는 이들이지만 때때로 일상에서 눈치가 보일 때가 있다고 한다. 

또래 5060세대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은 여전히 박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임박한 만큼 주변 동료들도 이 문제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도 했다. 일상에서 적지 않은 갈등도 목격한다는 것.

김씨는 “내가 다니는 성당에서 신자들끼리 카카오톡을 만들어 소통하고 있다. 그 채팅창에 박근혜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한 변호사가 초대돼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변호사가 가끔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보수 성향 언론사 기사를 공유하곤 하는데 그런 기사가 올라오면 또 다른 신자가 ‘무슨 의도로 이런 글을 올리느냐’, ‘나도 박근혜 험담하는 글 올려볼까’라고 강하게 반발한다는 이야기. 

김씨는 “아무래도 시국이 이렇다보니까 서로들 신경쓰이겠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자신을 카카오톡에서 특별한 멘트를 더하지 않는 ‘조용한 신자’라고 했다. 

최씨는 이날 광화문 광장 행진 도중 전화를 받았다. “왜 그런 데에는 왜 갔느냐”는 걱정 섞인 언니의 안부 전화였다. 최씨는 “친정은 보수적으로 묻지마 1번을 뽑아왔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촛불집회는 하나의 ‘문화 축제’였다. 특별한 취미가 없다는 이들에게 집회는 흥미로운 구경거리로 가득했다. 

TV에서만 보던 정치인이나 유명 인사를 직접 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였다. 이날 이들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현장 생중계 중이었던 tbs ‘정봉주의 품격시대’ 중계차였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봉주 전 의원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과 특검 연장 등을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최씨는 중계를 마치고 나온 박 의원에게 “사진 한 장만 찍어요”라고 말했다. 김씨는 쑥쓰러운 듯 멀찌감치에서 바라만 봤다.

최씨는 “세월호 진상규명 문제에 나서는 등 꾸밈없이 열심히 하는 의원”이라며 “특히 소박한 성품인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 박주민도 좋은데 문재인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을 찍을 거라고도 했다.

반면 김씨는 국민의당 지지자다. 문 전 대표가 광장에 등장해 시민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자 김씨는 “안철수는 오늘 안 나오나”라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최씨는 “안철수는 나와도 인기가 없어”라고 핀잔을 줬다. 박 대통령이 TV에 나오면 같은 편이다가도 문재인과 안철수 사이에선 갈라지는 부부라고 한다.

▲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관한 제16차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관한 제16차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촛불집회 단상에서 권영국 변호사는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됐는데 그동안 법 위에 군림하면서 삼성은 구속되지 않는다는 신화가 깨진 것”이라면서 “정경유착을 청산하라는 국민의 외침이 승리의 단초를 만들어냈다”고 했다.

이를 지켜본 두 사람은 “삼성이 아무리 나라를 먹여살린다고 해도 죄를 지었으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재벌 총수 구속이라니 국가적으로 얼마나 망신인가”라고 말했다. 김씨는 “능구렁이 김기춘이랑 우병우도 처벌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안 살림을 도맡고 있는 최씨는 광장 한 가운데에서 개성공단 제품을 팔고 있는 상인들로 눈길을 돌렸다. ‘무조건 5000원’이라는 팻말을 보고는 “가격에 비해 품질은 괜찮네”라고 말했다.

최씨는 “예전보다 많은 상인들과 단체들이 광장에 나와 물건 팔고 성금을 모으는데, 일부는 이때다 싶어 자기네 잇속을 챙기려는 건 아닌지 싶다”면서도 “물론, 모두가 박근혜 퇴진이라는 한뜻으로 나온 거겠지만”이라고 했다. 보수언론 등에서 ‘촛불집회가 변질됐다’는 보도가 나올까 염려하는 눈치였다. 

▲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관하는 제16차 촛불집회가 열린 18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자원봉사자들이 시민들에게 무료 코코아를 나눠주고 있는 모습. 사진=김도연 기자
▲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관하는 제16차 촛불집회가 열린 18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자원봉사자들이 시민들에게 무료 코코아를 나눠주고 있는 모습. 사진=김도연 기자
그래도 이 부부는 2주 전 파업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손해배상 소송 등과 관련한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시민모임 ‘손잡고’의 서명 운동에 이름을 적었다고 한다. 

이날 촛불집회 행진까지는 시간상 할 수 없다는 두 사람. 이들은 자원봉사자들이 무료로 제공하는 코코아 한 잔을 나눠마시며 집회를 마무리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좋은 일하네”라며 아이가 건넨 코코아 한 잔에 몸을 녹였다.

이들은 2주 뒤에는 꼭 탄핵 심판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태극기 집회처럼 남의 꽁무니만 따라가지는 않을 거다. 그래도 탄핵이 빨리 결정돼 정리가 됐으면 좋겠다. 다들 먹고 살기 힘든데 계속 나올 수는 없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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