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논객 변희재씨가 자신이 대표로 있던 한 인터넷 매체의 취재 자료를 MBC 간부의 요청으로 제공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MBC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의혹 보도를 연달아 내보냈던 배경에 극우매체와 ‘공조’가 있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변씨는 22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신사옥 앞에서 대한민국애국시민연합·대한민국애국연합1917 등 친박·극우단체 주최로 열린 태극기 집회에서 “MBC 보도국 간부가 우리 태블릿PC 조작 자료를 다 가져갔다”며 “본인들이 먼저 달라고 해서 내가 다 줬지만 그거 아직 보도 안 하고 있다. 왜 보도 못 하겠나. 여전히 MBC 사장과 간부들이 좌익 노조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MBC 게시판에 ‘일베’ 글을 퍼나르던 박상후 MBC 보도국 문화레저부장은 집회 내내 무대 옆에서 비를 맞으며 집회 광경을 지켜봤다.

변씨는 “냉정하게 말하면 MBC가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태극기 집회 광경을 그대로 보여준 것밖에 없다”면서 “‘고영태 녹취록’도 MBC가 직접 취재한 게 아니라 그냥 받아서 틀어준 거다. 그 두 개로 우리가 감동하는 게 얼마나 비참한 현실이냐”고 질책했다.

▲ 22일 집회에 참석한 변희재, 신혜식, 박상후 MBC 문화레져부장(오른쪽부터)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22일 집회에 참석한 (오른쪽부터)변희재, 신혜식(가운데 안경 쓴 사람)씨와 박상후 MBC 문화레저부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변씨와 집회 주최 측은 지난 21일 밤 MBC ‘PD수첩’ 방송 내용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집회 사회자는 ‘PD수첩’ 담당 PD에 대해 거친 욕설을 퍼부었고, 변씨도 이날 ‘PD수첩’ “탄핵, 불붙은 여론 전쟁” 편을 “조작 방송”이라고 비난했다.

‘PD수첩’은 이날 방송에서 탄핵 정국 3개월 차에 접어든 지금, 광화문 광장과 시청 광장에 각각 모인 탄핵 찬성·기각 집회 참가자들의 현장 목소리를 전하면서 최근 보수집회 참가자들이 돈을 받고 동원된다는 의혹을 제기한 제보자들과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제작진에 국가유공자 신분증을 보여준 한 태극기 집회 동원 의혹 제보자는 “‘이번에 해서 잘 되면 수당을 올려주겠다’ 그 수당을 국가에서 주니까 고마워서 (집회에) 오라고 하면 마지못해 가고 그렇게 동원하는 것”이라며 “점심값 주고 후원해줄 테니까 사람 좀 동원해 달라고 유혹을 받았다. 우리는 그러면 몇천 명 모여 촬영을 위해 엑스트라로 그냥 나가서 앉아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21일 방송된 ‘PD수첩’ “탄핵, 불붙은 여론 전쟁” 편 갈무리.
▲ 21일 방송된 ‘PD수첩’ “탄핵, 불붙은 여론 전쟁” 편 갈무리.

▲ 비가 내리는 가운데 22일 정오께 상암동 MBC사옥 앞에 백여명의 극우단체 회원들이 모여 MBC응원집회를 진행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비가 내리는 가운데 22일 정오께 상암동 MBC사옥 앞에 극우단체 회원들이 모여 MBC응원 집회를 진행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아울러 ‘PD수첩’은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선 촛불집회 폭력 시위설 등 이른바 ‘가짜 뉴스’가 포함된 신문이 배포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실제 제작진이 촛불집회 당시 경찰버스 50여 대가 파손됐다는 ‘가짜 뉴스’가 실린 인터넷매체 ‘뉴스타운’ 기사에 대해 경찰서에 문의한 결과, 종로경찰서 집회시위수사팀에선 “아니다. 요즘 파손된 것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편 이날 태극기 집회에 지지 발언을 하기 위해 ‘MBC 노동조합’ 김세의·최대현 공동위원장도 참석했다. ‘MBC 노동조합’은 2012년 MBC 공정방송 파업 때 대체인력으로 입사한 시용 기자와 경력 기자 등으로 구성된 제3 노조다.

김세의 기자는 “지난 4년간 우리 노조는 왕따의 대상이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우리 노조를 알아봐 주고 응원해 줘서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라며 “우리 노조가 굳건히 버티면서 특정 정치 세력이 MBC 뉴스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견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김 기자가 발언하는 와중에 집회 군중 곳곳에선 ‘김세의’가 아닌 “김세희”를 외치며 응원과 격려가 터져 나왔다.

▲ 발언을 마치고 내려온 김세의 기자가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 등과 기념촬영하고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발언을 마치고 내려온 김세의 기자가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 등과 기념촬영하고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추운 날씨에 비까지 내렸지만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한 손엔 우산을, 다른 한 손에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민국”을 연호했다. 시위대의 흥을 돋우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등 노래도 울려 퍼졌다. 건너편 누리꿈스퀘어 18층 옥상 정원까지 집회 방송 소리가 크게 들렸다는 민원도 나왔다. 폴리스 라인 안에서 ‘그들만의 집회’ 모습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혀를 차는 시민들은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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