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촛불을 든 시민과 민주주의·법치주의가 승리했다. 승자가 있으니 패자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물론이거니와 억지 논리를 펼치며 탄핵 기각을 외친 탄기국과 '보수 개신교'(이하 개신교)는 패배의 쓴맛을 봤다. 특히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대형 십자가를 앞세우고, 구국 기도회를 연 개신교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개신교는 사회 현안마다 목소리를 내왔다. 필요에 따라 실력 행사도 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고,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하고, 광장이 촛불로 채워질 때까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사회 지탄을 받아 온 개신교가 철들어 그랬을까, 아니면 잘못 편들어 욕먹을게 두려워서 그랬을까. 이유가 어쨌든 간에 개신교는 다른 때와 달리 조직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보수 개신교를 대표하는 한기총이 삼일절을 빌미로 딱 한 번의 구국 기도회를 개최한 게 전부다.

조직은 잠잠했지만 개체는 분주히 들고일어났다. 기자는 탄핵이 선고되기 약 두 달 전부터 태극기 집회에 참석했는데, 이곳에서 많은 개신교인을 만났다. 탄핵 정국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무엇을 바라는지 이야기를 들었다. 

▲ 지난1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열린 기독교 단체 집회. 사진=이용필 뉴스앤조이 기자.
▲ 지난1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열린 기독교 단체 집회. 사진=이용필 뉴스앤조이 기자.
그들은 하나 같이 탄핵은 '종북 세력'이 주도한 것이고, 종북이 집권하면 공산주의 국가가 된다고 믿었다. 이들에게 공산주의는, 교회가 문을 닫는 것을 의미하고 신앙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다. 어떻게 해야 국정 농단이 공산주의로 연결될 수 있을까. 일단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빨갱이들이 5000만이 타고 있는 배의 선장을 내쫓았다. 이제 배가 파도에 부딪혀 가라앉을 일만 남았다. 나라가 없으면 종교고 신앙이고 다 소용없다. 나라가 있어야 예수를 믿을 수 있는 것 아닌가." - 강충국 목사(74)

"기독교 신앙인은 좌경화를 반대한다. 좌파나 공산주의 사상은 신앙의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이나 북한에서는 신앙의자유를 허용하지 않고 탄압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도 전교조나 민노총 세력에 의해 좌경화되고 있지 않나 우려가 된다." - 김재호 씨(49)

"박근혜 대통령이 뭔 죄가 있는가. 종북 세력들이 정권 잡으려고 각본 짰다. 형평성 있게 고영태 일당도 구속해야 한다 (중략) 이런 틈을 타서 김정은이 쳐들어오면 어떡하는가." - 황미순 씨(74)

하나님과 예수를 믿는 개신교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도 맹목적으로 믿었다. 그래서일까. 국정 농단 실체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이념 문제로 접근했다. 그들에게 '사상'은 신앙보다 더 높은 차원에 해당했다.

보수 개신교인은 누구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했다.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이 자신들을 지켜줄 최후의 보루로 생각했다. 초대형 교회 목사 인식도 이와 비슷하다. 한기총 대표회장과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을 맡고 있는 이영훈 목사는 3월 12일 일요일 설교 시간 "대한민국이 홍수를 만났다"며 개신교인들이 먼저 회개해야 한다고 했다.

탄핵 정국에서 촛불을 든 시민은 16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헌재 선고 다음 날 시민들은 서울 광화문에 모여 마지막 '축제'를 벌였다. 촛불을 들고 폭죽을 쏘아 올렸다. 시민은 나라를 되찾은 듯 기뻐하며 축제를 벌이고, 보수 개신교인은 홍수를 만났다며 부르짖는다. 교회는 언제쯤 세상과 보폭을 맞출 수 있을까.

▲ 이용필 뉴스앤조이 기자.
▲ 이용필 뉴스앤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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