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이명박에서 박근혜 정권까지 MBC는 9년 동안 철저하게 망가졌다. 부당한 권력에 비판적인 MBC 언론인들은 2012년 파업 이후 비제작부서로 쫓겨나고 해고당했다. 뉴스는 정권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PD수첩’ 등 송곳 같던 시사 보도 프로그램은 무뎌진 지 오래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통해 근현대사에 드리운 그늘을 조명하던 MBC는 이제는 말할 수 없는 방송사가 돼 버렸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언론장악 빗장을 푼 방송사 노동조합 활동도 위축됐다. 미디어오늘은 87년 체제 30년을 맞아 전·현직 MBC 언론인과 전문가들의 생각을 담고 권력의 언론장악 구조를 분석해 MBC 사태를 되짚으려 한다.>

‘PD수첩’은 MBC를 상징하는 시사·보도 프로그램이었다. 1990년 5월 첫 방송된 PD수첩은 ‘우리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를 기치로 내걸고 약자의 편에서, 그들의 시선으로 부패 권력을 고발했다.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 조작’ 편으로 상징되는 이 프로그램의 깊이와 문제의식은 어떠한 권력도 피해갈 수 없었다. “능력이 모자라서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 적은 많았지만 압력 때문에 피해간 적은 없었다. 시청자만을 두려워하는 방송, 그것은 여전히 PD수첩의 신념”이라는 15주년 특집 PD수첩 클로징은 프로그램의 정신이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더 이상 PD수첩을 찾지 않는다. 그 자리는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룸’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이 대체한 지 오래다. PD수첩의 붕괴와 MBC의 몰락은 궤를 같이 했다. PD수첩이 2008년 광우병을 다루며 미국 쇠고기 수입 위험성을 고발하자 MB정부는 MBC와 PD수첩을 무너뜨리는 데 사활을 건다. 김재철 전 사장의 재임 시절인 2011년부터 본격화한 PD수첩 탄압은 그로부터 6년,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PD수첩 최초 기획자인 김윤영(63) 전 MBC PD를 21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 인근에서 만났다.

▲ MBC PD수첩 최초 기획자 김윤영 전 PD는 1977년 MBC에 입사해 2009년 회사를 떠났다. 김재철 체제의 PD출신 간부들은 모두 그의 후배들이다. 김 전 PD는 MBC 경영진들에 대해 “무슨 이유로 저렇게 노선을 달리한 채 같은 동료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설 수 밖에 없었는지 기가 막힌다”고 개탄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MBC PD수첩 최초 기획자 김윤영 전 PD는 1977년 MBC에 입사해 2009년 회사를 떠났다. 김재철 체제의 PD출신 간부들은 모두 그의 후배들이다. 김 전 PD는 MBC 경영진들에 대해 “무슨 이유로 저렇게 노선을 달리한 채 동료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설 수 밖에 없었는지 기가 막힌다”고 개탄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1990년 PD수첩을 기획한 배경을 설명해달라.

“이전까지 방송사 PD들은 오락이나 생활 정보 프로그램 정도만을 다뤘다. 다큐멘터리도 정통 다큐에 한정됐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를 거치며 한국 사회가 지닌 여러 문제점들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의식이 변하기 시작했던 때였다. 이에 발맞춰 PD들의 시선이 넓어지고 깊어졌다. 시대의 당위성과 시민들의 요구, PD들의 문제의식이 맞아떨어졌다. KBS ‘추적60분’이 있긴 했으나 우리는 조금 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보자고 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억울한 피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 그런 그늘진 곳을 비춰보자는 게 기획 의도였다.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기여하고자 했다.”

- 기획 당시 내부 반발도 컸다고 들었다.

“‘PD가 왜 그런 것까지 해야 하느냐’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저널리즘은 내 밥통’이라고 생각하는 기자들의 반발이 심했다. 지금 시사 프로그램을 다루는 PD들도 이런 저항에 부딪혀본 적 있을 거다. 보도는 1~2분짜리 리포트를 다루지만 우리는 50분 동안 한 소재를 가지고 파고들었다. PD수첩을 ‘PD 저널리즘’으로 평가하나 그렇게 포장하고 싶진 않다. 시사 프로그램은 더 이상 신문이나 TV의 전유물이 아니니까. 직종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PD들의 시각과 시야가 넓어지면서 관심 분야가 생기고 깊어졌을 뿐이다.”

PD수첩이 탄생하기 전인 1989년, 김 전 PD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MBC ‘어머니의 노래’를 연출해 주목을 받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이뤄진 방송 민주화 운동의 산물이자 공영방송이 왜 필요한지 보여주는 사례였다. 김 전 PD는 “특별히 시대정신이 투철하거나 대단히 진보적이라서 연출한 건 아니었다”며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게 옳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 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었던 때인데 광주 특집 방송은 어떻게 가능했나? 

“노태우 정권 때였고 군부 출신 정치 세력의 힘이 막강했을 때였다. 무엇보다 우리 맷집이 단단하지 않던 시절이었다.(웃음) 식구들을 피신시키기도 했고 죽이겠다는 협박도 많이 받았다. 그 프로그램에서 조비오 신부(고 조비오 신부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수습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평생을 민주화운동과 약자들을 위해 헌신했다.)를 인터뷰했는데 ‘헬기 기총소사’(항공기에서 땅 위의 표적을 비로 쓸어내듯이 기관총으로 쏘는 것을 말한다. 최근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에 나선 계엄군의 헬기에서 발사했을 것으로 보이는 기관총 탄피들이 발견됐다.)를 증언했다. ‘성직자로서 거짓 없이 인터뷰하겠다’며 기도를 하신 뒤 인터뷰에 임했는데 이 인터뷰로 한마디로 난리가 났다. 회사 앞에 특전사들이 몰려와 웃통을 벗고 시위를 하고 육군에서 고소해 검찰에 불려가기도 했다. 지금은 대선 후보들이 광주를 찾아 기총소사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감회가 새롭다. 그래도 아쉬운 게 있다.”

▲ PD수첩 최초 기획자인 김윤영 전 MBC PD가 21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 인근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PD수첩 최초 기획자인 김윤영 전 MBC PD가 21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 인근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어떤 점이 아쉬운가?

“예전 프로그램을 다시 보면 부끄러운 것들이 많다. 물론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부끄러운 마음은 지울 수 없다. 숨통이 트였을 때 그런 프로그램을 했다는 것도 부끄럽다. 왜 전두환 정권 때 어려움을 딛고 프로그램을 하지 못했나 아쉬움이 든다.”

- 초창기 PD수첩은 어땠나? 권력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을 것이고.

“초창기 PD수첩은 작은 창을 통해서 세상을 보자는 취지였다. 부당하게 해고된 아주머니를 통해서 노동 문제를 본다거나 그랬다. 그런데 하다보니 점차 거대 담론으로 가기 시작했다. 우루과이 라운드 편을 다루다가 불방 사태를 겪으며 PD수첩을 떠나게 됐다. 후배들도 이리저리 흩어졌다. 권력의 수많은 방해가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 당시 후배들에게 강조했던 부분이 있었나?

“PD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한 적 있다. ‘100원이라도 누군가에게 받아오거나 외부 압력에 주춤하면 나한테 맞아죽는다.’ 이 때문인지 당초 기획과 정반대로 나가거나 그랬던 적은 없었다.”

- 사회적 반향도 컸을 텐데?

“시청률도 괜찮았고 방송이 나가면 일단 세상이 시끄러워졌다. 미숙하나마 최선을 다했으니까. 고급 제보는 보도국이 아니라 PD수첩으로 들어왔다. 최근 국정농단 사태를 보면 JTBC가 두각을 보이는데 PD수첩이 굳건했다면 ‘최순실 태블릿 PC’는 아마 PD수첩으로 왔을 거다.(웃음) 제보자들은 자신들이 신뢰할 수 있는 곳에 제보하니까.”

MBC는 1990년 9월 우루과이 라운드를 비판적으로 다룬 PD수첩 ‘농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편을 불방 조치해 논란을 불렀다. 남북 고위급 회담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북한 회담 대표들 사기를 북돋울 수 있다는 이유였다. 사측은 PD수첩 불방 사태에 항의한 안성일 MBC 노조위원장과 김평호 사무국장을 해고했다. 불방 사태로 김 전 PD는 6개월 만에 하차하게 된다.

- 언제 다시 PD수첩으로 돌아왔나?

“아마 1995~1996년 정도인 것 같다. PD수첩을 관장하는 국·부장으로 돌아왔다. 초창기보다 프로그램은 발전돼 있었고 시청자들과 보다 더 가까워졌다. 소재도 정치적인 아이템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 권력의 방송 개입은 상시적이었을 것 같다.

“김대중 정부 때였다. ‘매향리 미군 사격장’ 아이템을 다루려고 했다. 그때 사장이 해직 기자 출신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예전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소재를 선택할 수 있겠다 싶었다. PD수첩 기획 의도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사장과 편성·제작 쪽 임원들에 불려 올라갔다. ‘저쪽(청와대)에서 난리가 났다’고. 김대중 정부에서 더군다나 해직 기자 출신 사장 아래서 미군 사격장을 다루지 못하면 무슨 아이템을 다룰 수 있겠느냐고 항변했다. 당시 편성 쪽에서 다른 프로그램으로 대체하겠다고 했다. 나는 사장에게 ‘나는 당신의 스태프니까 따르겠으나 내일 아침에 일어날 일은 어떻게 감당하실 거냐’고 말씀드렸다. 그 프로그램은 결국 나갔다. 프로그램과 아이템에 대한 권력의 저항과 개입은 언제나 있었다. 그 사슬을 끊는 일은 풀리지 않는 숙제인 셈이다. 현재 MBC 사태는 이 사슬을 끊지 못해 발생한 일이다.”

김 전 PD는 1977년 MBC에 입사해 2009년 떠났다. 시사교양국장으로 PD수첩을 관장하던 그는 이후 홍보심의국장, 미주지사장 등을 거쳐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원주 MBC 사장으로 재직했다. 처음엔 “떠난 자가 왈가왈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인터뷰를 고사했다. 그런 그에게 ‘지금의 MBC’를 묻고 대답을 듣는 건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안광한 전 사장을 포함해 MBC PD 출신으로 간부직을 지낸 이들이 대부분 그와 잘 알고 지낸 후배들이라는 점이 걸렸을 것이다. 안 전 사장은 그의 밑에서 조연출을 한 적이 있다.

- 최근 PD수첩을 본 적 있나?

“잘 안 보게 되더라. 간판은 똑같은데 음식 맛이 달라진 느낌이다. 쓰는 그릇, 테이블은 다 똑같은데 음식 맛이 변해버린 단골식당 같다.”

- MBC가 무너진 가장 큰 이유는 뭘까?

“MBC의 가장 큰 재산은 사람이었다. 파업 등 어려움을 함께 겪으면서도 순탄하게 갈 수 있었던 까닭은 맨파워에 있었다. 그게 흐트러진 게 가장 큰 것 같다. 후배들이 갈라지고 다른 길을 가게 됐다.”

- 현재 경영진들은 김 전 PD의 후배들 아닌가?

“내가 부장하고 국장할 때 같이 일하던 친구들이었다. 그들도 한때 열혈 조합원이었고 PD수첩을 열심히 만들던 후배들이었다. 그 당시 그들은 PD수첩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랬던 이들이 중간에 변절하고 현재 MBC 사태에 일조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좋은 보직을 하고 있는 후배들을 볼 때면 안타깝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흔들려선 안 되는 건 양심이다. 무슨 이유로 어떤 생각으로 저렇게 노선을 달리한 채 동료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설 수 밖에 없었는지 기가 막힌다. 괴물이 된 그들이 방송과 콘텐츠를 망치고 나아가 나라와 민족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현재 후배들이 경영진에 증오와 분노를 느낀다면 나는 안타까움이 크다. 같이 일할 때 ‘저 녀석 참 좋은 PD야’라고 생각했던 애들이 너무 변해버렸다. 빈번한 교류는 없었다고 해도 PD 집단은 동질감 같은 것이 있었다. 물론 나만의 생각일 수 있다. 이젠 선배가 무슨 생각을 하든 관심이 없을 테니….”

- 2012년 최승호 전 PD는 해고됐고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하던 MBC PD 다수가 비제작부서로 배제됐다.

“말도 안 되는 곳에서 고통 받고 있는 억울한 후배들에게 무한한 동정을 보낸다. 그들은 PD수첩으로 명성을 쌓은 이들인데 그 때문에 상당한 고통을 겪고 있다.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PD수첩을 한 업보’라고 생각하며 반드시 견뎌주길 바란다. 때가 되면 다시 우리의 업을 떳떳해할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 김윤영 전 MBC PD는 2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말도 안 되는 곳에서 고통 받고 있는 억울한 후배들에게 무한한 동정을 보낸다”며 “그들은 PD수첩으로 명성을 쌓은 이들인데 그 때문에 상당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김윤영 전 MBC PD는 2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말도 안 되는 곳에서 고통 받고 있는 억울한 후배들에게 무한한 동정을 보낸다”며 “그들은 PD수첩으로 명성을 쌓은 이들인데 그 때문에 상당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MBC 사태는 방송을 장악하려는 정치권력 문제와 따로 떼어 생각하기 어렵지 않나?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를 장악했고 사측은 PD들을 제작 현장에서 배제하면서 언론 장악이 공고해졌다.

“늘 정치적 상황은 오르락내리락했다. 방송은 세상의 흐름과 무관할 수 없기 때문에 시대와 시간, 정치적 환경은 지금과 달라져야 할 거다. 우리의 정치 풍토가 바뀌어야 하고 시민 의식도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군부 쿠데타 세력이 정권을 잡았을 때와 다른 방식으로 압력을 행사했다. 대놓고 탄압하던 과거처럼 권력이 무식하게 치받을 때는 우리 역시 강하게 대응하면 됐었다. 지금처럼 교묘한 권력 개입은 또 다른 대응을 요구하는 것 같다.”

- 정권 교체기가 되면서 언론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력 대선 주자들도 언론 개혁, MBC 정상화를 강조하고 있다.

“다시 정치의 계절이 왔다. 누구는 권력에 줄을 댈 것이고 이미 줄을 섰을지 모른다. 권력에 따라 부역자 논란이 있었고 악순환이 계속됐다. 권력을 쥔 쪽이 반대 세력을 도태시킨다면 피해를 보는 것은 우리 국민들과 시청자들이다. 권력이 아닌 시청자와 국민들을 바라봐야 한다.”

- PD수첩은 다시 부활할 수 있을까?

“황우석 때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개인적으로 황 박사와는 고등학교 친구다. 미국지사장으로 있을 때 PD수첩이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 조작 건을 다뤘는데 참 기분이 묘했다. 고등학교 친구가 내가 만들고 넘겨줬던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됐으니 말이다. 그때 PD수첩 정말 무너질 뻔했다. 그래도 후배들을 믿었다. ‘자신 없으면 다룰 수 없다’는 게 PD수첩 전통이었으니까. PD수첩을 처음 만들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어떠한 명맥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비리나 스캔들을 일으키지 않았다. PD수첩은 부정한 짓을 하거나 청탁을 받아 이 판에 먹물을 튀긴 적은 없었다. 물론, 제대로 다뤄야 하는 것을 다루지 못해 ‘제 노릇 못한다’는 비난과 비판은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 많이 힘들겠지만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재정비해서 떠난 손님들 입맛에 맞출 수 있는 가게가 돼야 할 거다.”

[이제는 말할 수 없는 MBC 기획 1-①] 시민의 희망이었던 MBC, 시민의 절망이 되다
[이제는 말할 수 없는 MBC 기획 1-②] 김재철·안광한·백종문, 그들도 한때 파업 전선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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