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있는 젊은 방송,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사회, MBC가 함께 합니다”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MBC 신사옥 경영센터 1층 로비 전광판에는 이런 문구의 글이 적혀 있다. 원래 이 문구는 앞에 ‘품격 있는 젊은 방송’이 없었다. 지난달 28일 보도본부장이던 김장겸 신임 사장이 취임하면서 이 문구가 추가됐다.

김 신임 시장은 취임사에서도 “‘품격 있는 젊은 방송’으로 MBC를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품격’은 “편향적 보도와 선정적 방송의 유혹에서 벗어나 저널리즘의 기본자세를 확고히 할 때 갖출 수 있다”고 했고, ‘젊은 방송’은 “사고방식과 조직을 혁신해 새롭게 변화시키자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송일준 MBC PD협회장은 “품격과 젊음에 대한 모독”이라고 일갈했다. 송 회장은 특히 김 사장이 보도책임자였던 MBC 뉴스의 품격에 대해 “광화문 광장에서 울렸던 ‘엠XX’ 고함이 들리는 듯하다”며 “너무나 부끄러워 더는 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임명현 MBC 기자가 자신의 석사학위 논문에서 2012년 MBC ‘공정방송’ 파업 이후 기자들의 주체성 재구성에 대해 ‘잉여화·도구화된 기자들의 유예된 저항’이라고 표현했듯, 송 회장도 김재철 체제 이후 MBC엔 인간의 품격은 사라지고 반인륜적, 반품격적 만행만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사장이 쓴 ‘젊음’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송 회장은 “공영방송을 모리(謀利)의 수단으로 삼아 부패한 권력을 옹위하며 국민을 배신하는 자들이 주창할 단어는 아니다”며 “쌍팔년도 군사독재 시대의 낡은 사고에 젖어 있고 부조리의 극치인 현실에 안주하면서 이상을 포기한 늙은 자들이 내세울 단어는 적어도 아니다”고 나무랐다.

‘가장 품격 없는 자들이 품격을 내세우고 가장 늙은 자들이 젊음을 선전하는 전도된 현실’에서 퇴직을 앞두고 지난해 MBC PD협회장을 맡은 송일준 전 ‘PD수첩’ 책임PD. 그는 지난 2008년 시사교양국 부국장으로 재직 당시 ‘PD수첩’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점검한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 방송을 진행했다가 검찰에 체포, 기소까지 됐지만 끝내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다음은 최근 ‘탄핵’ 다큐멘터리 불방 사태 등 MBC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정상적인 상황 등과 관련해 16일 송 회장과 만나 나눈 일문일답이다.

▲ 송일준 MBC PD협회장은 최근 ‘MBC 스페셜’ “탄핵” 편 불방 사태에 대해 “김장겸 체제 MBC가 박근혜 일파와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상징적 조치”라며 “계속 촛불 국민의 열망을 배신하는 행위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송일준 MBC PD협회장은 최근 ‘MBC 스페셜’ “탄핵” 편 불방 사태에 대해 “김장겸 체제 MBC가 박근혜 일파와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상징적 조치”라며 “계속 촛불 국민의 열망을 배신하는 행위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MBC 스페셜 ‘탄핵’ 다큐멘터리가 불방됐다. 이런 식으로 불방된 적이 있었나?

“‘PD수첩’만 해도 방송 민주화 이후 1990년 5월 만들어졌는데 그 이후에도 사장 등 지시로 방송이 뜬금없이 연기된 적은 있었지만 방송이 끝까지 안 되고 사장(死藏)된 적은 없다. 문제가 돼 연기돼도 사원들이 싸워서 결국 다 방송됐다. 내용이 마음에 안 들고 민감하니 그럴 수 있어도 절차적으로 보고하고 제작, 편집해서 방송해야 하는데 갑자기 승인해준 적 없다고 오리발 내미는 건 말도 안 된다. 김도인 신임 편성제작본부장은 김현종 전 본부장에게 ‘들은 바 없다’고 하는데 그것도 난센스다. 프로그램 인수인계는 일선 PD들이 하는 거고 결국 본인이 탄핵 아이템은 싫다는 거다. 정상적으로 진행된 제작 절차를 완전히 무시한 행위로 김 본부장도 김장겸 체제의 일원으로 사고방식을 같이 한다는 뜻이다.”

-그럼 절차적 문제로 불방이 됐다기보다 ‘탄핵’이라는 주제 때문이라는 건가?

“회사에서 내용이 아주 문제가 많다거나 취재 대상의 인권 침해 등 여러 다른 문제의 소지가 크다면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못 내보내는 건 이해가 간다. 그런데 ‘탄핵’ 편은 편집본에 대해 시사를 하고 문제 삼은 게 아니다. 그렇게 중단시킬만한 확실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탄핵을 다뤄 뭐가 문제인지. 하다못해 종편도 탄핵을 방송하는데 전혀 설득력이 없다. 기존 안광한 사장·김현종 본부장 체제서 탄핵을 거의 국민 80% 이상이 지지하니 MBC도 안 다룰 수 없어서 PD에게 하라고 한 건데 김장겸 사장으로 바뀌고 갑자기 상황이 변한 거다. 김 사장 취임 후 뉴스를 보면 알 수 있듯 김장겸 체제 MBC가 박근혜 일파와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상징적 조치다. 계속 촛불 국민의 열망을 배신하는 행위라고밖에 볼 수 없다.”

-김장겸 사장은 취임사에서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겠다고 했는데 또 부당인사 논란을 빚었다.

“애초에 제작 자율성은 김장겸 사장 되기 전부터 무너져 있었다. 그 상황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자 더 무너뜨리겠다는 거다. 제작 자율성은 경영진의 자유일 뿐이다. 우수한 기자와 PD가 얼마나 많이 현업 밀려나 있나. 어디서 그런 경력사원을 데려올 수 있겠나. 경영진이 볼 때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일할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얘기다. 경력사원 채용도 지금 외부 상황이 상당히 유동적인데 만약 노조가 파업하면 자기들에게 이의 제기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일 하는 사람을 보강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 제작진들이 지난 2010년 12일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명예훼손 혐의 무죄판결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앞줄 맨왼쪽부터) 이춘근 PD, 조능희 전 CP, 송일준 PD.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 제작진들이 지난 2010년 12일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명예훼손 혐의 무죄판결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앞줄 맨왼쪽부터) 이춘근 PD, 조능희 전 CP, 송일준 PD.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요새 PD들 분위기는 어떤가?

“불합리, 부당하고 사리에 전혀 안 맞는다는 걸 다 아는데 어떤 몸짓을 하든 무시하거나 힘으로 억누르고 인사 조치를 통해 보복하니까 눈 뜨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느 정도 소통이 돼야 뭘 해보는데 전혀 안 되다 보니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다고 넋두리한다. PD들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걸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청자의 좋은 반응을 받으면 재미를 느낀다. 그런 적극적 즐거움이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새로운 걸 시도하면 위에서 용인해 주고 얼마든지 제작 현장에서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었는데 이제 그런 즐거움과 보람이 거의 사라진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많은 후배 PD들이 MBC를 떠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돈만 많이 준다고 직장에 있나, 보람이 있어야지. 좋은 방송사라고 시청자에게 말을 들어야지 어딜 가면 욕이나 듣는데 돈 많이 준들 남아 있겠나. 이제 MBC가 돈 많이 주는 언론사도 아니다. 조직 분위기가 상명하복에 자율성이 없다 보니 여기 붙어 있어야 할 매력이 없는 거다. 그런데도 남아있는 이들은 다시 MBC에 좋은 날이 올 거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사람이 상당수다. 예능 PD들도 아무 의미 없이 프로그램 만드는 게 아니다. PD가 자율성이 없어 답답한데 MBC에서 욕 듣고 예능 할 필요가 뭐가 있나. 나가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돈도 많이 준다면 마음이 움직이는 거다. 과거 같으면 돈 덜 받아도 MBC PD로 인정받는 것만으로 수억 원의 값어치였는데 지금의 MBC에선 그런 자부심과 자긍심을 느낄 수 없다.”

-PD 출신인 안광한 전 사장은 특별퇴직공로금에 수억 원의 ‘전관예우’를 받는다고 한다.

“박근혜·최순실이 대한민국을 농단했듯 박근혜 세력에 부역해 끝까지 운명을 같이한 사람들이 국민의 재산 공영방송을 사유화해 농단하고 있는 거다. 박근혜가 탄핵되고 쫓겨났으면 대통령 옹호 일변도로 방송한 MBC 경영진도 책임지고 쫓겨나야 할 텐데 더군다나 MBC를 감독할 방문진 이사들도 똑같은 이들이다. 남은 기간 MBC 살코기를 뜯어 먹을 수 있을 때까지 뜯어 먹자는 것. 김재철 전과 후 MBC 사장 임금이 얼마나 올랐나. 이렇게까지 돈에 집착하는 걸 보면 더는 챙길 명예나 존경, 신뢰도 없는 마당에 돈이나 왕창 당기자는 심사가 아닌지 의심이 든다.”

2008년 4월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 방송을 진행하던 송일준 PD.
2008년 4월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 방송을 진행하던 송일준 PD.
-과거 공영방송이 이끌었던 ‘PD저널리즘’ 전성기를 SBS나 JTBC에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는 것 같다.

“다행이면서 한편으론 속이 쓰리다. MBC 같은 공영방송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속이 쓰리다. 사실 전혀 기대를 안 했던 JTBC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해주고 있고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PD수첩’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극적인 소재가 많았는데 ‘PD수첩’이 빠지고 약화하니 일정 부분 역할을 해 주는 것 같아 다행이다. MBC에도 남아 있는 PD들이 최선을 다한다고 하는데 MBC 전체 이미지가 너무 망가져 있고 비합리적 인사 운영과 아이템 검열 등 자율성 침해로 정말 다뤄야 할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를 못 다루고 있다. 최근 탄핵 국면에서 내부적으로 요구해 방송이 나가는 걸 보면 안에서는 ‘저 정도도 힘들었겠구나’ 하는데 밖에선 아무 반향이 없어 안타깝다. 자율성을 보장해 주면 훨씬 더 잘할 수 있는 PD들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어느 거리에 구둣가게가 하나 있는 것보다 모여 있으면 구두 거리가 되듯 잘 되는 시사·탐사 프로그램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SBS나 JTBC가 그런 명맥을 이어 다시 ‘PD수첩’이 복귀했을 때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하면서 시청자들을 다시 끌어올 수 있는 마당을 유지해 줘서 고맙다.”

-MBC에서 PD로 있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도 ‘PD수첩’인가?

“한때 검찰과 정보기관, 청와대 등 3대 권력 기관을 거침 없이 다루고 방송의 자유를 누렸던 공영방송이 권력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시작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 고발 방송을 하고 나서부터다. 이후 MB정권이 공영방송을 완벽히 장악해 버렸다. 그때부터 권력 옹호 일변도의 방송만을 해 온 게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불러온 큰 책임이 있다. 시작은 ‘PD수첩’ 죽이기였다. ‘PD수첩’ 같은 가장 국민의 지지를 많이 받고 세던 방송도 저렇게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거다. 정권에 완전히 장악된 공영방송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세월호 참사 등 국가적 비상사태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제대로 못 했다. 권력이 일시적으로 비판적 언론을 길들여 편했을지 모르나 결과적으로 자기 무덤을 판 꼴이 됐다. 집을 지키는 개도 평상시 짖어줘야 도둑이 오는지 안다. 낯선 사람이 오는데도 꼬리 치면 어느 날 도둑이 마음먹고 와도 안 짖어 집이 망하게 된다. 지금 공영방송도 그런 상황인데 죽은 권력에 끝까지 부역하고 있다.”

-후배 PD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굉장히 어려울 거다. 내가 프로그램 제작 현장에 있대도 엄청 어려울 것 같다. 하겠다는 것 못 하게 하고 위에서 뻔히 싫어하는 거 알면서도 들이밀면 찍힐까 봐 걱정하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인 건 맞다. 하지만 이미 권력에 충성해 온 부역 방송은 국민으로부터 파면당한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부당한 지시에 더 적극적으로 항거하고 마땅히 해야 할 소재와 이슈를 발제해 못 하게 하면 맞서 싸우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이 투사가 될 순 없다. 그러니 권력이 무너지고 압제하던 사람의 힘이 약해졌다고 이제 와서 일어나는 것을 절대 비겁하다고 볼 필요도 없다. 대다수 사람이 지금껏 그렇지 못했더라도 부끄러운 게 아니다. 힘과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왔다고 생각하면 좀 더 용기를 내고 싸울 필요가 있다. 그런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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