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이명박에서 박근혜 정권까지 MBC는 9년 동안 철저하게 망가졌다. 부당한 권력에 비판적인 MBC 언론인들은 2012년 파업 이후 비제작부서로 쫓겨나고 해고당했다. 뉴스는 정권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PD수첩’ 등 송곳 같던 시사 보도 프로그램은 무뎌진 지 오래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통해 근현대사에 드리운 그늘을 조명하던 MBC는 이제는 말할 수 없는 방송사가 돼 버렸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언론장악 빗장을 푼 방송사 노동조합 활동도 위축됐다. 미디어오늘은 87년 체제 30년을 맞아 전·현직 MBC 언론인과 전문가들의 생각을 담고 권력의 언론장악 구조를 분석해 MBC 사태를 되짚으려 한다.>

지난달 박혜진 전 MBC 아나운서는 미디어오늘 인터뷰를 고사했다. “우선 해직기자들의 목소리가 먼저 나와야 한다”는 이유였다. 이용마 MBC 해직기자를 인터뷰하고 나서야 그는 인터뷰를 수락했다. 박 아나운서는 “난파하는 MBC호 또 우리 언론을 살리려고 모든 걸 걸고 싸워왔던, 또 억울하게 해직된 선배들의 목소리를 알리고 응원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혜진 아나운서는 2014년 5월 MBC를 퇴사했다. MBC는 보도자료까지 내어 박 아나운서 퇴사 소식을 ‘홍보’했다. 이 때문일까. “울타리 밖에서 혼자 한번 부딪혀 보고 싶다”는 박 아나운서의 퇴사의 변이 적어도 내게는 뉴스데스크 앵커 시절만큼 시원스레 들리지는 않았다.

그는 MBC 관련 인터뷰는 그동안 거부해왔다. “내가 앞장서서 할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무도 귀담아 들어주지 않던 가장 어려운 시기에 광장에서 소리치던 분들이 있는데 시민의 힘이 모이고 조금 희망이 보인다고 그때 침묵하고 탈출한 사람이 이제와 분노를 이야기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건 민망하다.” 자신을 ‘탈출한 사람’이라고 규정하며 분노의 감정을 다스려왔던 그. 지난 3일 이뤄진 인터뷰는 박 아나운서 일정을 고려해 서면으로 이뤄졌다. 그의 글은 허투루 버릴 것이 없었다. 글자 하나하나에 고민을 담은 듯했다.

▲ 박혜진 전 MBC 아나운서는 MBC 경영진에 대해 “부당 인사로 힘을 휘두르며 구성원들의 손발을 묶고 있다”며 “방송의 질은 떨어지고 가장 중요한 신뢰도 잃었다”고 비판했다. 사진=박혜진 아나운서 제공
▲ 박혜진 전 MBC 아나운서는 MBC 경영진에 대해 “부당 인사로 힘을 휘두르며 구성원들의 손발을 묶고 있다”며 “방송의 질은 떨어지고 가장 중요한 신뢰도 잃었다”고 비판했다. 사진=박혜진 아나운서 제공
- 근황이 궁금하다.

“2014년 봄에 퇴사해 프리랜서로 활동한 지 곧 3년이다. TV활동을 많이 하진 못했지만 라디오, 팟캐스트 등 다른 플랫폼으로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지금은 tbs 라디오 ‘주말아침 박혜진입니다’를 통해 한 주간 중요한 이슈와 시사를 정리하고 있다. 또 지난해 8월부터 한반도 평화포럼이 주최한 ‘통일은 과정이다’ 토크쇼를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진행하고 있다.”

- 개인적으로 퇴사 후 눈에 띄는 활동은 뉴스타파에서였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 1주기 특집 다큐를 진행했고 지난 1월에는 ‘촛불2017’ 특집 방송도 맡았다. 뉴스타파와는 어떻게 협업하게 된 건가?

“뉴스타파 ‘세월호 100일 다큐멘터리’는 퇴사 후 첫 활동이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분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진실을 밝히는 일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라도 하고 싶었다. 그때 때마침 함께하자는 연락이 왔다. 기존 언론이 ‘기레기’ 소리를 들으며 제대로 된 보도를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뉴스타파는 참사 시작 무렵부터 세월호가족대책위원회, 416기록단과 꾸준히 참사 원인을 밝히기 위해 수없이 많은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며 집중 취재를 하고 있었다. 그날의 사실과 진실이 숨겨져 있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숨겼던 현장의 진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내 역할이 필요하다면 머뭇거리거나 주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 세월호 1주기 특집 다큐의 경우 각종 작품상을 받을 정도로 화제였다. 세월호 다큐를 맡으면서 어려운 점도 많았을 것 같다.

“제작진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의 씻을 수 없는 아픔과 슬픔의 이야기로 상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여전히 차가운 바닷속에는 미수습자 9명이 있었고 사건의 진실도 가라앉아 있었다. 의미가 있다면 힘든 상황 속에서 대안 언론과 독립 PD들이 진실규명을 위해 집요하게 매달려 조금이나마 국민들이 진실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언론의 역할과 책무가 어때야 하는지 되새기게 해줬다.”

▲ 박혜진 아나운서는 2014년 7월 보도된 뉴스타파 100일 다큐멘터리 ‘세월호 골든타임, 국가는 없었다’ 진행을 맡아 세월호 참사 비극을 시청자들에게 전했다. 사진=뉴스타파 화면 캡처
▲ 박혜진 아나운서는 2014년 7월 보도된 뉴스타파 100일 다큐멘터리 ‘세월호 골든타임, 국가는 없었다’ 진행을 맡아 세월호 참사 비극을 시청자들에게 전했다. 사진=뉴스타파 화면 캡처
- 세월호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도 있을 것 같은데?

“아이들을 간절히 기다리며 울부짖던 팽목항과 세월호를 삼켜버린 바다를 잊지 못하겠다. 그 바다 위에 배를 타고 갔을 때 온몸이 떨리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촬영 후 내 아이를 바닷속에 잃어버리는 악몽을 꾼 적이 있다. 입 밖으로 터져 나오지도 않는 속울음에 눈물까지 흘리다 벌떡 일어났다. 캄캄한 밤중에 아이가 있는지 더듬어 확인하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미수습자와 유가족들은 매일같이 이런 악몽 같은 현실에 살고 있다. 그들에겐 안도의 한숨이 허락되지 않는다. 생때같은 아이를 잃은 엄마의 마음을 어떻게 다 알 수 있고 위로할 수 있겠나? 마음이 너무 아프다.”

- 세월호가 인양되는 것을 어떻게 지켜봤는지?

“다시 세월호를 보기까지 3년이 걸렸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인 것 같다. 부디 나머지 9명이 따뜻한 가족 품으로 꼭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진실도 함께 인양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 3주기와 관련해 다큐멘터리 진행을 맡게 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뉴스타파와 앞으로도 함께 하는 것인가?

“3주기엔 안산에 간다.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세월호 참사 3주기 기억식을 진행할 계획이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뉴스타파와 언젠가 또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MBC 뉴스데스크 메인 앵커였다. MBC의 화려한 시절이던 2006년 3월부터 MB정부 언론장악이 본격화하기 직전인 2009년 4월까지 그는 MBC 뉴스데스크(평일) 앵커를 맡으며 앵커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신경민 앵커(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클로징 멘트만큼이나 박 아나운서의 클로징은 이목을 집중시켰다. 2008년 12월25일자 클로징은 종합편성채널을 탄생시킨 MB정부 미디어법을 겨냥한 것이었다. “조합원인 저는 이(방송법 강행 처리에 대한 전국언론노동조합의 총파업)에 동참해 당분간 뉴스에서 여러분을 뵐 수 없게 됐습니다. 방송법 내용은 물론 제대로 된 토론도 없는 절차에 찬성하기 어렵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 멘트에 대해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반했다”며 제재 조치인 ‘경고’를 내렸다.

▲ 박혜진 아나운서가 2009년 2월 서울 명동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미디어법 반대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박혜진 아나운서가 2009년 2월 서울 명동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미디어법 반대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MBC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 당시 “울타리 밖에서 혼자 한번 부딪혀보고 싶다”고 했지만 2012년 파업 이후 방송 출연 배제에 따른 결심으로 해석하는 쪽이 많았는데?

“파업에 참여한 이유로 방송에서 배제됐는지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나운서국의 몇몇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일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당시 MBC는 고인 물 같았다. 미래와 희망을 얘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방송에 대한 열정을 분출시킬 기회를 찾기 쉽지 않았다. 지난했던 파업이 실패로 돌아가자 모두가 많이 지쳤고 두려웠고 열패감으로 힘들어했다. 그 시간을 견디기 어려웠고 때론 자괴감이 밀려왔다. 돌파구가 필요했고 마음과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먼저 휴직을 했다. 잠깐 한국을 떠나있었다. 다행히 그 시기 주변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포장되지 않은 새로운 시선이 생긴 것 같았다. 그러고 나니 다시 방송이 더 하고 싶어졌고 그게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두렵지만 새로운 도전을 선택하게 된 이유다.”

- 박 아나운서는 ‘MBC 뉴스데스크 앵커’로 기억된다. 클로징 멘트가 가감없던 시절이었다. 본인의 클로징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당시 클로징 멘트뿐 아니라 모든 뉴스의 앵커 멘트를 직접 썼다. 애정이 있었고 모든 뉴스를 공부하고 이해하고 정확히 전달하려는 열정도 있었다. 함께 진행했던 신경민 앵커 클로징이 워낙 강렬해서 내 멘트가 이슈가 된 적이 많지는 않다. 기억에 남는 건 우선 2009년 미디어법 개정에 반대하는 파업에 참가한다는 클로징 멘트를 했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를 받았던 일이다. ‘앵커가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에 대해 개인의 견해를 밝힐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 후 방송의 공정성, 균형성 논란, 그 해석을 두고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지만 방통심의위의 ‘정치적 내용 규제’는 더 심각해졌다. 신경민 앵커가 하차하고 얼마 후 나도 앵커에서 하차했다. 그때 했던 클로징도 마지막이라 아무래도 기억이 난다. ‘여러분의 눈과 귀, 그리고 심장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봄이 오면’ 뵙겠다는 말이었던 것 같다.”

▲ MBC 뉴스데스크 앵커 시절 박혜진 아나운서와 신경민 앵커. 사진=MBC 화면
▲ MBC 뉴스데스크 앵커 시절 박혜진 아나운서와 신경민 앵커. 사진=MBC 화면
- 퇴사 후 종편에 출연한 적이 있나? 혹시 출연하지 않았다면 미디어법 개정에 반대했던 소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봐도 되는 건가?

“종편 출연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소신을 유지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미 한 번 나간 적이 있다. JTBC ‘톡투유’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다. 당시 미디어법 개정에 반대했던 이유는 공정한 방송, 신뢰받는 방송이 무너질까 우려했던 것이다. 모두 알다시피 우려 속에 종편이 들어섰고 대부분 우려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만 일부 종편 보도는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다.”

- 앵커 혹은 아나운서가 정치 이슈에 소신을 밝히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부담이 되지 않나? 박 아나운서가 맡은 프로그램이나 MBC 이후의 행보는 모두 사회적 무게가 있는 것들이었다. 혹시 예능 쪽에는 관심이 없었나?

“‘한국 사회에서는 어렵다’라는 말이 가장 안타까운 말이다. 방송인이 소신을 밝히는 것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을 수는 있지만 논란을 피하고자 자유와 소신을 억압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예능에도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미지의 영역이라 자신이 없을 뿐이다.”

- 최근 MBC 뉴스데스크 시청하나? 2008년과 지금을 비교한다면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MBC 뉴스 안본 지 오래다. 보지 않았으니 비교도 어렵다.”

- 유독 MBC는 스타 아나운서가 많았다. 그런 유능한 아나운서들이 크게 성장할 수 있는 특별함이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 MBC에는 어떤 것이 결함되어 있다고 보이나?

“MBC 문화는 특별했다. 방송 제작에 자유로움과 호기가 있었다. 옳지 않음을 강요하는 선배와 상사에게 소위 맞장 뜨는 결기도 있었다. 선배들은 여유가 있었고 언론인으로서 소명의식이 선명했다. 더 좋은 방송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논의하는 과정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쏟아졌고 열정이 넘쳤다. 지금은 그 자리에 감시와 탄압이 자리했다. 권력에 편승한 소수가 사회적 공기인 방송을 마음대로 이용하고 있다. 부당 인사로 힘을 휘두르며 구성원들의 손발을 묶고 있으니 방송의 질은 떨어지고 가장 중요한 신뢰도 잃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지난해 6월 개최한 ‘공정언론 바로세우기 콘서트’ 사회를 맡은 박혜진 아나운서와 노종면 YTN해직기자. 사진=이치열 기자
▲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지난해 6월 개최한 ‘공정언론 바로세우기 콘서트’ 사회를 맡은 박혜진 아나운서와 노종면 YTN해직기자. 사진=이치열 기자
- 박 아나운서가 떠난 이후에도 많은 후배 아나운서들이 회사를 떠났다. 회사를 떠나는 후배들에게 어떤 말을 해줬나? 아니면 남아있는 이들에게는 무슨 말을 했나?

“퇴사 후 MBC는 더 내리막길로 향했기 때문에 사실 남아있는 선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상당수 선후배가 방송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타 부서로 발령 났다. 몇몇 선배는 병까지 얻어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MBC가 다시 정상화 되는 길에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해도 뚜렷한 방법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회사를 떠난 선후배들도 돌파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특별히 어떤 말을 꺼내지 않아도 될 만큼 서로 공감하고 응원하고 있다.”

- MBC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나? 아니면 속 시원한가? 현재 시점에서 MBC를 볼 때는 드는 생각과 감정은 무엇일까?

“13년을 MBC에서 일했다. 가끔 그립기는 해도 돌아가고 싶은 그 친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MBC를 볼 때면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도 든다. MBC를 욕하는 시청자에게도 미안하다. 어쩔 수 없이 남아있는 선후배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

- MBC 정상화가 이뤄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우리는 광장의 촛불로 체험했다. 꾸준하고 적극적인 관심과 행동은 변화를 이끄는 힘이 있다. 언론은 대기업 소유주의 것도, 나라의 지도자의 것도 아닌 국민의 것이다. MBC 정상화를 위해서는 많은 제도적 법률적 변화가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론의 주인인 국민이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감시·비판해야 한다. 언론의 본질적 속성인 감시견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지금은 언론이 제대로 가는지, 제 역할을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국민이 언론의 감시견 역할을 해주셔야 할 것 같다.”

- 국민들이 MBC에 실망하고 TV 앞을 떠나고 있다. 그들에게 한 말씀한다면?

“나도 MBC를 잘 보지 않게 됐다. 그래서 그분들을 잘 이해한다. 언젠가 MBC가 새롭게 태어나는 날이 온다면 많은 분들이 MBC를 다시 응원하고 시청해주실 거라고 믿는다. MBC가 다시 자랑스러운 MBC가 되는 날이 올 거라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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