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최근 당내 경선토론에서 ‘3D 프린터’를 ‘삼디 프린터’라고 발음한 것을 두고 언론이 정책 검증은 제쳐 두고 ‘발음법’ 논란까지 보도하며 소모적 논쟁을 부추기는 모양새다.

앞서 문재인 후보는 지난달 30일 SBS 경선토론에서 4차 산업혁명 관련 공약을 설명하면서 “민간 부분에서도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 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 혁명의 기회”라며 “우리의 IT 경쟁력을 바탕으로 전기차, 자율주행차, 신재생 에너지, 삼디(3D)프린터, 인공지능, 산업로봇 등 신성장 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 청년들이 창업 붐을 일으키는 창업 국가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지난 5일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무소속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국가 경영은 ‘3D프린터’를 ‘삼디프린터’라고 읽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잠깐 실수로 잘못 읽었다고 하기엔 너무도 심각한 결함이다. 국정 책임자에게 무능은 죄악”이라고 문 후보를 비판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7일 MBC ‘뉴스데스크’ 리포트 갈무리.
7일 MBC ‘뉴스데스크’ 리포트 갈무리.
그러나 ‘3D프린터’를 ‘삼디프린터’로 읽은 것 자체가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내용의 본질도 아니며 단순한 발음법 차이를 두고 ‘심각한 결함’, ‘무능’ 등을 운운하는 것 역시 과도한 비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임한솔 정의당 선대위 부대변인은 7일 논평을 통해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양 진영 간의 경쟁이 퇴행으로 치닫고 있다. 이른바 ‘3D’ 논쟁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면서 “단순 말실수를 두고 후보까지 직접 나서 공방을 벌이는 게 과연 촛불시민의 염원에 부응하는 개혁 경쟁인지 양 후보 측에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임 부대변인은 “가뜩이나 선거 기간도 짧은데 정책 토론은 뒷전에 두고 그런 유치하고 한심한 논쟁을 벌이기엔 시간이 아깝다”며 “무엇을 어떻게 부를지는 때로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매년 5월1일을 ‘근로자의 날’로 부르지 말고 ‘노동자의 날’로 부르자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제안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쓰리디냐 삼디냐’는 아니다”고 말했다.

한 3D프린터 전문업체도 비생산적인 ‘3D’ 발언 논란 과열을 잠재우기 위해 가세했다. 이 업체는 “실제로 3D프린터를 ‘삼디’라고 읽는 분들이 많고 우리도 크게 잘못된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3D프린터를 ‘삼디’로 읽는 것에서 비롯해 우리 업체도 탄생한 것이니 ‘심각한 결함이니, 무능한 사람이니’ 이런 말은 너무 과한 비꼼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도 공영방송을 비롯한 언론은 대선 후보 간 검증 공방과 관련한 보도에서조차 문 후보의 ‘삼디’ 발언을 도마에 올리고 있다.

MBC는 7일 ‘뉴스데스크’에서 “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 대한 검증공세가 거세지고 있다”면서 리포트 시작부터 “문재인 후보가 ‘쓰리디’가 아닌 ‘3D(삼디) 프린터’라고 읽은 부분을 안철수 후보가 꼬집었다”고 전했다.

KBS 역시 이날 ‘뉴스 9’에서 “가족 의혹에 ‘3D’ 발음까지…文-安 난타전”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통해 “문 후보의 이른바 ‘삼디 프린터’ 발언을 놓고도 공방이 이어졌다”며 “이에 문 후보는 자신의 SNS에 ‘우리가 홍길동이냐’며 ‘3을 삼으로 읽지 못하고 쓰리로 읽어야 하냐’고 반박했다”고 보도했다. 후보 간 의혹 검증 보도엔 전혀 들어갈 필요가 없는 내용이었다.

7일 KBS ‘뉴스 9’ 리포트 갈무리.
7일 KBS ‘뉴스 9’ 리포트 갈무리.
외려 언론이 지적하고 파고들어야 할 것은 각 후보가 주장하는 4차 산업혁명 공약이 과연 ‘일자리 혁명’이 될 수 있는지 냉정히 따져보는 일이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 캠프 비상경제대책단이 지난 6일 4대 경제단체를 초청한 간담회 자리에서 이동응 한국경영자협회 전무는 “4차 산업혁명을 위해서는 노동시장 유연성이 확보돼야 한다”며 “전통적인 근로 제공 방식은 4차 산업혁명을 수용하기 어렵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노동연구원과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이 6일 ‘노동 4.0과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개최한 국제콘퍼런스에선 사무엘 그레프 독일 카셀대 교수(사회과학대)가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세 가지 위험 요소로 △대규모 고용축소 △노동의 탈경계화 △새로운 노동형태의 등장과 사회보장 부재를 지목했다.

경기일보는 4일자 사설에서 “4차 산업혁명의 기본 틀은 산업 자동화로, 첨단 기술이 인간의 산업 활동을 대체한다는 개념”이라며 “4차 산업혁명 정책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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