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외사정으로 피임하는데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봉만대 영화감독)
“봉감독이 피임에 성공한 이유는 정자의 운동성이 없어서 그래요. 그냥 하셔도 아마 안될 거에요.”(서민 교수)

‘교육방송’ EBS ‘까칠남녀’의 방송내용이다. ‘까칠남녀’는 겨드랑이 털, 피임, 결혼, 졸혼(결혼졸업), ‘김치녀’라는 용어 등 최근 남녀차별과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는 주제들을 선정해 남녀 패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국내 최초 젠더 토크쇼(월요일 오후 11시35분 방송)다. 

EBS에서 이만큼 ‘핫’한 프로그램이 나온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화제를 모았고 실시간 반응도 쏟아졌다. 교육적인 것 같기도, 적나라한 것 같기도 한 이 프로그램이 어떻게 EBS에서 등장했을까. 미디어오늘이 EBS ‘까칠남녀’를 기획하고 제작한 김민지‧이대경 PD를 만났다. 인터뷰는 6일 오전 서울 도곡동 EBS 사옥에서 진행됐다.

▲ EBS '까칠남녀'의 봉만대 감독.
▲ EBS '까칠남녀'의 봉만대 감독.
-‘까칠남녀’는 ‘국내 최초 젠더 토크쇼’다. 제작발표회에서 'EBS에서 용기내서 만들었다'는 말을 한 만큼 제작부담이 있었을 것 같다.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 계기는.

김민지PD(이하 김민지):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로 우리사회의 성갈등에 대한 논의가 폭발했다. 페미니즘 열풍이 일기도 했다. 작가들과 가벼운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젠더이슈에 대한 토크쇼를 기획해보자고 했다.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편성 쪽에서도 문제의식에 공감해주셨던 것 같다. 그래서 다소 파격적이고 민감한 이슈임에도 EBS에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편성 쪽은 오히려 좋아하셨다.

이대경PD(이하 이대경): 기획안 처음 봤을 때 ‘이거 해야 될 이야기다’라고 생각했다. 사내에서도 ‘해야 할 이야기다’라는 공감대는 있었지만 막상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PD들이 많았던 것 같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지원하는 남자 PD가 없었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잘다뤄야한다는 부담이 컸던 것 같다. 하지만 저는 꼭 이런 이야기라고 해서 딱딱하게 다뤄야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충분히 재미있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합류하게 됐다.

-프로그램을 만들기 전 원래 개인적으로 젠더 이슈에 관심이 있었나.

김민지: 저는 여성으로, 딸로,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입장에서 어렴풋이 삶에서 차별이나 부당함을 마주했던 것 같다. 이후 대학에 와서 젠더나 페미니즘 관련 수업들을 들으면서 더 깊이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대경: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인터넷에서 웹툰 작가들에 대한 ‘예스컷’ 운동 같은 것이 커뮤니티 마다 화제가 됐다. 그때 큰 관심을 가지게 됐고, 이때 나오는 남성들의 반응이 흥미로웠다. 남성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고, 세대별로도 의견이 갈렸다. 물론 공감가는 의견도 있었지만 같은 남자지만 ‘왜 저렇게 생각할까’라는 생각도 했다. 이후 계속 관련 의견들을 찾아보곤 했는데 마침 이 기획안을 만난 거다.

▲ '까칠남녀'의 이대경PD와 김민지PD. 사진제공:EBS
▲ '까칠남녀'의 이대경PD와 김민지PD. 사진제공:EBS
-젠더문제를 이야기하다보면 중립적이지 못하다는 평가가 따라온다. 또한 한국사회에서 교육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이 깔려있지 않나. 이런 배경 속에서 ‘교육방송’에서 젠더문제를 말한다는 어려움은 없었나.

김민지: 젠더 이슈는 중립적일수가 없지 않나. 방송 프로그램은 제작진의 가치 판단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팩트가 아닌 것을 다룬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가치 판단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여권이 많이 신장됐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여성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사회에서 차별을 받는 것이 많고 사안을 다룸에 있어 판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인 상황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서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에 가치판단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사실 지금까지 젠더 이야기를 다뤘다고 하는 것이 ‘백분토론’처럼 딱딱하게 다루거나 ‘마녀사냥’처럼 섹슈얼한 연애문제를 다루거나 하는 식이었다. 매체에서 젠더이슈를 전면으로 다룬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EBS에서 이런걸 하나?”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지만 오히려 교육방송이어서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대경: 사실 저는 다양한 관점을 열어놓은 이 프로그램의 포맷이 중립을 향한 포맷이라고 생각한다. 내용적으로 중립을 지향한다기보다 형식적으로 중립을 지향한 것은 있다.

-중립적인 관점을 고려했다고 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패널 구성이다. 여성과 남성을 3:3으로 앉혔다. 각각의 패널들을 배치한 이유는.

김민지: ‘남녀성비를 완전히 3:3으로 맞춰야지’하고 처음부터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캐릭터를 찾다보니까 그런 구도가 나왔다.

이대경: 기본적 방향은 다양한 관점을 섭외하는 게 우선이었다. 한명 한명 씩 패널을 뽑은 이유를 설명하자면, 정영진씨 같은 경우 여성주의적 시각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팟캐스트 ‘불금쇼’를 하면서 비슷한 논쟁이 있을 때 여성주의를 공격하는 남성의 지지를 얻기도 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 이야기를 풀 하나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봉만대 감독의 경우 에로영화 감독으로 유명한데,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섹슈얼한 문제가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김민지: 사실 봉만대 감독도 페미니스트의 입장은 아니다. 전형적인 남성의 입장에 일치해서 발언한다. 트위터 반응을 보니 ‘반성하는 남자’라는 별명이 붙었더라. 만약 자신의 의견이 틀린 것 같다면 고집 부리지 않고 정정하고 사과하고 입장을 바꿔나가는 포지션이다. 사전 인터뷰때 봉 감독이 자기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폭력의 문제는 반대한다’고 하더라. 젠더문제도 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최근 영화계 성폭력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고도 하더라.

은하선씨 같은 경우는 ‘이기적 섹스’라는 책으로 화제를 모았다. 섹스칼럼니스트로서 도발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 우리 프로그램의 파격적인 포맷에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대경: 서민 교수의 경우 남자지만, 여성에 가까운 느낌이다. 남자인데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을 풀어나가는 것이 어떤 식으로 보일까, 궁금했다.

▲ '까칠남녀'의 서민 교수.
▲ '까칠남녀'의 서민 교수.
서유리씨의 경우, 흥미로운 캐릭터다. 정영진씨의 ‘불금쇼’를 좋아하는 남성 집단에서 서유리씨를 좋아한다. 게임이나 서브컬쳐 문화에 익숙하고 그들의 정서를 이해하는 여성연예인이다. 어떻게보면 ‘경계선’을 넘나드는 캐릭터다.

김민지: 이외에도 전문가 패널로 손희정씨가 출연하는데 최근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페미니스트 중에서도 ‘넷페미’라고 부르는 활동 영역이 있는데 젠더 이슈에 있어서 최근 논의되는 사안에서 목소리를 활발하게 내고 있어서 토크에 있어 큰 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MC 박미선. 그동안 ‘변방의 MC’이지 않았나. 그리고 그동안 소구된 이미지가 억척 아줌마 정도로만 인식돼왔다. 섭외할 당시에 젠더이슈에 굉장한 관심을 보이셨다. 이미지를 탈바꿈해서 진행을 잘하는 탑MC로 이미지메이킹을 하고 싶어서 MC박미선을 소개하게 됐다. 진행을 잘하셔서 인터넷에서도 박미선씨 칭찬이 끊이질 않더라.

이대경: 현장에서도 정말 잘해줬다. 노련미나 내공이 ‘신의 한 수’였다.

▲ '까칠남녀'의 MC 박미선.
▲ '까칠남녀'의 MC 박미선.
-시작한지 얼마 안됐지만 봉만대 감독의 ‘체외 피임’ 발언 등 문제(?) 발언이 나오고 있다. 토크쇼인 만큼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많이 나올 것 같다는 우려가 있는데.

김민지: 사실 내부에서도 ‘체외사정’이라는 단어를 프로그램에서 써도 되느냐는 논의가 있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중학교 ‘성과건강’이라는 교과서에 나오는 단어다. 초중고등학생도 다 알고 있는 단어다.

봉만대 감독의 발언이 굉장히 화제가 됐는데 사실 왜 그렇게 화제가 되는지 잘모르겠다. 편집을 할 때도 봉만대 감독을 마녀사냥을 하기 위해 발언을 그대로 내보냈다기 보다, 일반적으로 남성들이 생각하고 있는 피임 인식을 보여주고 싶었다. 실제로 봉만대 감독의 말은 사전인터뷰나 대본에 없었는데 현장에서 튀어나온 말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한 남자가 자라오면서 배우고 학습한 것들이, 실제로 제대로 학습되지 않지 않았나. 무지에 대해 사람을 탓하기 보다는 다같이 공감하기 위한 멘트였다고 생각한다.

-남녀의 이야기를 함께 듣는다는 취지지만, "엄연히 남자와 여자 역할이 따로 존재한다", "돌봄에 최적화된 것은 여성이다"는 식의 남성 패널의 발언에서 보듯 차별적인 의견이 방송을 타고, 이것이 적절한 '의견'으로 취급되는 것에 대한 문제가 지적된다. 편견이 담긴 이야기를 방송이 마이크를 대주며 하나의 정당한 의견으로 격상시킨다는 건데.

김민지: 정치토론에서도 여‧야가 나와서 대립을 한다. 당연히 하나의 이슈를 가지고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 우리 토크쇼에는 7명의 패널이 나오고, 입장이 다 다르다. N분의 일의 말에 시청자들은 공감이나 분노를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다양한 의견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게 일이다. 그것이 우리의 기획의도고, 특별한 주장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만든 것은 아니다.

이대경: 어떤 특정한 발언이 심각한 ‘헤이트 스피치’라면 걸러내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걸러내는 것을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많이 걸러낸다면 그것 역시 왜곡과 폭력이 될 것이다.

▲ 까칠남녀의 두 제작진.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까칠남녀의 두 제작진.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수위가 높은 만큼, 심의문제에도 예민할 것 같다. 특히 콘돔에 관한 에피소드에서 ‘페미돔’이 나왔는데 편집이 많이 됐다고 들었다.

김민지: 피임과 관련된 에피소드에서 페미돔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사용방법을 설명해줬다. 페미돔이 너무 비싸고, 사용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리는 부분은 다 방송에 나갔고, 편집한 부분은 ‘페미돔 후기’ 부분이었다. 후기가 방송에 나가기에는 애매했다.

이대경: 재방송도 청소년 보호시간이다. 아니, 그런데 사실 청소년이 더 봐야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김민지: 맞다. 사실 어머니들이 많이 접속하는 카페에서 “밤에 봤는데, 너무 교육적이다, 아이들도 보여줘야겠다”는 후기가 많았다. 사실 20~30대도 피임법을 잘 모른다. 교육이 정말 안돼있다.

이대경: ‘까칠남녀’는 교육방송이다.

-지금까지 겨털, 졸혼, 피임이라는 아이템을 다뤘다. 앞으로 어떤 아이템을 다룰지 귀띔해줄 수 있나.

이대경: 준비하고 있는 것 중 ‘시선 강간’아이템을 하고 싶다. 여성들이 불쾌감을 느끼는 것도 동의를 하지만 남자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심리에 대해 잘 다루고 싶다. 그리고 ‘꽃뱀’같은 논쟁도 있다. 솔직히 아이템 고갈은 없을 것 같다. 10년은 갈 수 있을 것 같다.

김민지: 최근 한 걸그룹이 팬이 ‘안경몰카’를 쓰고 온 것을 잡아낸 적 있지 않나. 몰카 문제도 다루고 싶다. 사실 요새 뉴스를 보면 젠더 이슈가 끊임없이 나온다. 편성만 허락해준다면 ‘까칠남녀’를 EBS의 장수 프로그램으로 만들 자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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