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여론조사를 통한 ‘언론의 정치’로 얼룩지고 있다. 언론사들이 여론조사 업체에 의뢰해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이를 받아서 확대재생산하는 방식의 보도가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신뢰도다. 지난해 총선에서 민심 흐름을 전혀 읽지 못했음에도 여론조사 업체와 언론사간의 ‘공조’는 이번 대선에서도 가동되고 있다. 

이 가운데 논란을 부른 여론조사 기관은 코리아리서치였다. 공영방송 KBS와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가 의뢰해 남녀 유권자 2011명을 대상으로 지난 8~9일 진행한 이 업체의 5자 대결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36.8%)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32.7%)를 제쳤다.

하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이 업체의 조사 방식에 대한 점검을 위해 관련 자료를 요청하는 등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도마 위에 오른 건 RDD(Random Digit Dialing·무작위 전화여론조사) 샘플 추출과 응답 부적격 사례 판정이었다. 3월 조사에서는 국번 8000여개가 사용됐는데 이번 조사에서는 60개만 사용되는 등 무작위 추출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과 함께 응답 부적격 사례 비율이 지나치게 낮아졌다는 점이 논란이다.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김재광 한국과학기술원(KAIST) 수리과학과 교수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샘플 2000명을 데드라인 안에 맞춰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무리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코리아리서치 측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조사 대상에게 3번 전화를 다시 걸어 응답을 받는 ‘콜백’ 시스템을 새로 도입해 조사에 사용된 전화번호 개수가 줄어들었다”는 입장이다.

▲ 지난해 8월18일 오전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문재인(왼쪽)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지난해 8월18일 오전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문재인(왼쪽)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일부 누리꾼들과 문 후보 지지자들은 KBS와 연합뉴스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정부 및 구여권과 따로 떼어서 생각하기 어려운 공영언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 언론사들이 특정 후보에 대한 공격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난이 나오는 것이다. 트위터 아이디 @nyxdevil00는 “대상자 60명에 응답률 90% 여론조사는 믿을 만한 건가”라고 비판했고 @settlersaga1은 “말도 안 되는 여론조사를 띄워서 여론을 호도하는 짓은 제대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지지 그룹 더불어포럼 공동대표인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씨도 지난 10일 KBS 여론조사 기사를 페이스북에 공유하고 “KBS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나는 믿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이 언론사에 대한 불신으로, 언론사에 대한 불신이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으로 꼬리를 물고 있는 것.

KBS 선거방송단 관계자는 11일 “여론조사 방법을 놓고 RDD 등 큰 틀만 결정했을 뿐 조사 수행과 관련해서는 조사 업체에 일임해 결과만 받는다”며 “우리도 업체에다 자세한 내용을 확인 요청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KBS 보도본부 간부들은 이번 건에 대해 특별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KBS의 한 기자는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여론은 있지만 여론조사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 “선관위 조사 결과가 나오면 문제점이 확인될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들이 무분별하게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경마 보도를 쏟아내는 데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5개 정당 후보가 확정되기 전부터 언론은 양자 대결을 부각하면서 여론을 몰아갔다”며 “언론이 여론조사 보도를 쏟아내는 건 그만큼 팔리기 때문인데 이런 식의 경마 보도는 중요한 정책과 정치가 빠져 있는 ‘인기투표 보여주기’와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여론조사 표집을 잘하기 위해선 많은 비용이 든다. 한국 언론의 다수는 싸구려 조사를 통해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며 “이럴 경우 여론조사 품질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조사 단가와 언론의 조급증 때문에 한국에는 당일치기 여론조사가 많다. 뉴욕타임스의 경우 제대로 비용을 들여 조사를 진행하며 품질이 의심되는 여론조사는 인용 보도하지 않는다”면서 “정작 유권자들은 한국의 여론조사가 담고 있는 정보가 왜곡인지 아닌지도 확인할 수 없다. 당일치기로 ARS를 쫙쫙 돌려서 하는 전화 여론조사는 신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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