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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의 압박면접과 저널리즘 원칙

[기자수첩] 여·야, 진보·보수 모두 공격적 인터뷰…“지난 4년 동안 제대로 질문하지 못했거나 무시당했기 때문”

2017년 04월 17일(월)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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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보도담당 사장 손석희 앵커는 박근혜 탄핵에 이은 조기대선에서 ‘악명 높은’ 대선면접관으로 등장했다. 대선 후보들은 손석희에게 탈탈 털릴 수 있는 ‘위기’를 각오하고 통과의례처럼 ‘뉴스룸’에 출연해 압박면접에 응하고 있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다.

직설화법은 2000년대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부터 유명했던 손석희의 스타일이다. 일종의 ‘아이스브레이킹’이 없기 때문에 지지자 입장에선 예의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지만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을 한 발 물러섬 없이 집요하게 던지며 뉴스수용자의 궁금증을 해소시키고 있다.

손석희의 대선면접에서 고배를 마신 이는 아쉽게 대선무대를 떠났다. 지난 2월20일자 ‘뉴스룸’에 출연한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20여 분간의 인터뷰에서 ‘선의’라는 표현 하나를 놓고 집중 추궁 당했다. “박근혜·이명박도 선한 의지로 정치를 하려 했는데 법제도를 따르지 않았다”는 발언을 주워 담기에는 이미 늦은 뒤였다. 안희정 지사는 ‘통섭’ 같은 철학적 개념을 동원했지만 손석희를 비롯한 대중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이 무렵 20%까지 올랐던 안희정 지사의 지지율은 인터뷰 이후 급속히 꺾이기 시작했고, 민주당 경선에서 탈락했다. 안희정 지사는 4월5일 충남도정 직원조회에서 “손석희 ‘뉴스룸’에서 곤욕을 치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처럼 손석희는 생방송 인터뷰에서 궁금증이 해소될 때까지 비슷한 질문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인터뷰이가 진심을 털어놓게 만든다. 2016년 11월28일 출연한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에겐 ‘박근혜 즉각 퇴진이 조기대선을 의미하는 것이냐’는 질문을 9차례 반복했다.

▲ 2월20일자 '뉴스룸'에 출연한 안희정 충남도지사. ⓒJTBC
▲ 2월20일자 '뉴스룸'에 출연한 안희정 충남도지사. ⓒJTBC
손석희는 문재인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한 날(4월3일) 곧바로 “국민의당에서는 이번 선거가 문재인 대 안철수 양자대결 구도로 간다. 이렇게 주장했는데 문 후보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다. 두 번째 질문은 아들의 취업 특혜 의혹이었다. 그는 문 후보에게 “이제 그만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만 10년 넘게 논란이 되풀이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동안의 해명이 명쾌하지 않았기 때문 아닌가”라고 물었다. 세 번째 질문은 “안보가 불안한 후보다 이렇게 반대 진영에서 얘기하는데 뭐라고 답하겠느냐”였다.

손석희는 안철수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한 날(4월4일) 곧바로 “(대선이) 1대1구도로 간다고 말했는데 현실적으로 다른 후보들도 있는데 단일화작업 없이 1대1로 간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국민들이 만들어주는 연대가 뭐냐”고 물었고, “광주경선에서 불법동원 의혹 제기됐다.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나”고 물었다. 안철수 후보는 “위법적 부분 발견되면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 답했는데 손석희는 이 답변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한 듯 같은 질문을 세 번 반복했다. “사실이라면 새 정치와 동떨어진 구태”라고도 지적했지만 안 후보는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만 답했다. 결국 안철수 후보는 같은 답변을 세 번 반복했다. 손석희는 “상황파악이 잘 되시지 않은 것 같아 더 질문하지 못 하겠다”고 말했다.

▲ 4월4일 '뉴스룸'에 출연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JTBC
▲ 4월4일 '뉴스룸'에 출연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JTBC
손석희는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대선후보들에게도 날선 질문을 던졌다. 이재명 성남시장에게는 “(사이다 발언이) 시원하기는 한데 대통령은 안 될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오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고, “문재인 전 대표보다 비교 우위라는 점은 뭐로 증명하겠나”라고 묻기도 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에게는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다. 끝까지 갈 것인가”라고 물었고 “당선 가능성과는 현실적으로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그럼에도 출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물어 심 후보가 “선거 다 끝난 것처럼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하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 같은 질문들은 기자들 입장에서 실제 답변을 듣고 싶지만 다음에 다시 만나기 어려워지지 않을까 싶어 묻기 어려웠던 민감한 것들이다.

손석희의 ‘압박면접’에 응수하는 방법 중에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같은 ‘자폭’ 전략도 있다. 홍준표 후보는 4월4일 손석희와 인터뷰에서 손석희 몇몇 질문에 “인터넷에서 찾아봐라”, “오랜만에 만나서 좋은 이야기하지 뭘 자꾸 따지냐. 작가가 써준 거 읽지 말고 편하게 물어라”라며 막말을 내뱉었다. 손석희를 싫어하는 보수층을 결집하려는 의도적인 도발이었지만 이후 4월7일자 한국갤럽 호감도 조사에서 그는 비호감 1위(77%)라는 불명예를 껴안았다.

손석희는 4월11일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를 스튜디오로 불러 국민의당이 사드 배치 철회입장이었는데 안철수 후보가 사드 배치 찬성입장인 것에 대해 집중 추궁하며 “선거 유·불리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것이냐”고 물었고 박지원 대표는 “손석희 앵커께서는 늘 우리를 좀 회색적으로 보시는데 그러실 필요 없다”고 답해야만 했다. 박지원 대표는 이어 “왜 꼭 국민의당만 JTBC에서 그렇게 파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서운함을 드러냈지만 손석희에게 통할 리 없었다. 손석희는 “그런데 왜들 그러십니까? 저희는 민주당 문제도 다루고 있다”고 응수했다.

▲ 4월5일자 JTBC '뉴스룸' 팩트체크 코너의 한 장면. ⓒJTBC
▲ 4월5일자 JTBC '뉴스룸' 팩트체크 코너의 한 장면. ⓒJTBC
인터뷰가 끝날 때마다 각 후보의 열성지지층이나 캠프 관계자는 손석희가 편파적이고 필요이상으로 공격적이며 집요하다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뉴스룸’은 이 같은 피드백과 상관없이 4월5일 팩트체크 코너에서 문재인 후보 아들 특혜채용 논란을 다루고 다음날 6일 팩트체크 코너에서 안철수 부인 특혜임용을 다루는 식으로 자신들의 저널리즘을 선보였다. 이런 가운데 민주언론시민연합은 4월12일 모니터보고서에서 “KBS와 MBC가 ‘검증’을 ‘새로운 의혹제기’로 대신하는 가운데, JTBC에선 꾸준히 괄목할만한 후보 검증 보도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석희는 4월10일자 뉴스룸 ‘소셜라이브’에서 “검증해봤더니 훌륭하다하는 경우는 어느 언론도 없다. 양측에서 다 욕을 먹는게 숙명”이라고 말했다. 손석희는 4월12일자 앵커브리핑에서 “선거철이나,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 벌어지면 언론은 늘 어느 쪽으로 부터든 공격을 받는다. 저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질문할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상황이란 것은 지난 4년 동안 제대로 질문하지 못했거나 질문했어도 무시당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 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 ⓒJTBC
▲ 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 ⓒJTBC
20세기 여론전문가 월터 리프먼은 “우리는 먼저 보고 나서 정의를 내리는 게 아니라 정의를 먼저 내리고 나서 본다”고 지적했다. 스테레오타입(고정관념)이다. 스테레오타입은 뉴스시청에서도 반복된다. KBS리포트, 조선일보 1면기사, 한겨레 사설 등 뉴스를 접할 때 우리는 해당 언론사의 정치적 지향성과 소유구조, 특정 후보와의 관계들을 미리 정의한 뒤 수용하곤 한다. 개별 기자들이 뛰어넘기 힘든 일종의 색안경이다.

반면 손석희가 진행하는 ‘뉴스룸’은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고 모든 후보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는 저널리즘 원칙을 채널의 고정관념으로 만들어냈다. 그래서 사람들은 뉴스가 있을 때 손석희를 찾고, 손석희는 악명 높은 대선면접관으로 이에 화답하고 있다. 십 수 년 간 정치권으로부터 폴리널리스트라는 달콤한 유혹을 물리치고 인터뷰이와의 사사로운 인간적 관계를 만들지 않으며 대가를 바라지 않았던 삶이 갖는 손석희만의 무게감이 오늘의 ‘압박면접’을 가능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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