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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들 불행배틀에서 사라진 대구시립희망원

[미디어현장] 최한별 비마이너 기자

2017년 04월 21일(금)
최한별 비마이너 기자 medi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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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립희망원을 처음 접한 것은 지난해 5월이었다. 희망원이라는 시설에서 직원이 거주인을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익명의 투서가 경찰과 대구시,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각종 시민단체에 날아들었다. 대구시에 있는 시민단체들은 경찰과 대구시가 이 의혹을 철저히 조사하지 않고 있다며 ‘성역없는 수사’를 요구했다. 그 때는 몰랐다. 이 ‘성역없는 수사’ 요구가 이렇게 길고 깊어질지.

1980년부터 천주교대구대교구가 대구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해온 희망원은 처음엔 노숙인 시설로 시작해 점차 몸집을 불렸다. 현재는 노숙인 시설 두 개, 장애인 거주시설 하나, 정신장애인 요양시설 하나를 운영하는 대형 시설이다. 희망원에서 발생한 문제는 말 그대로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 엮여 나왔다. 직원이 거주인을 폭행하는 일뿐만 아니라 거주인 노동 착취, 보조금 횡령 등의 정황이 드러났다. 희망원에는 오후 6시가 넘거나 주말이 되면 당직 직원 2명과 간호사 1명 만 남았다.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밤이나 주말에 발생하는 사고에 제대로 대처할리 만무했다. 2014년부터 약 2년8개월 간, 희망원에서는 거주인 129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1월31일 기준 희망원 거주인이 999명이었으니, 총인원 대비 12% 이상이 사망한 셈이다. 희망원에서는 자의적인 감금도 이루어졌다. ‘심리안정실’에는 희망원 내부 규칙을 어긴 생활인들이 최대 40일까지 갇혀 있었다.

▲ 지난 4월15일 광화문 해치광장 경사로에 대구시립희망원에서 사망한 거주인 309명을 의미하는 영정 309개와 ‘3대 적폐’로 인해 사망한 이들을 추모하는 합동 분향소가 설치됐다. 사진=비마이너 제공
▲ 지난 4월15일 광화문 해치광장 경사로에 대구시립희망원에서 사망한 거주인 309명을 의미하는 영정 309개와 ‘3대 적폐’로 인해 사망한 이들을 추모하는 합동 분향소가 설치됐다. 사진=비마이너 제공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졌는데, 정작 이 사안을 따라가는 나는 덤덤했다. 부끄러운 사실을 털어놓자면, 장애인 언론사에 있으면서 워낙 ‘쟁쟁한’ 시설 문제를 많이 보다보니, 희망원 문제는 상대적으로 ‘덜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남원 평화의 집 사건처럼 직원이 거주인을 무지막지하게 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CCTV도, 인천 해바라기 시설 사건처럼 직원에게 맞아 온 몸이 시퍼렇게 멍든 채 사경을 헤매다 사망한 거주인도 없었다. 희망원에서는 방치돼 죽어간 사람들, 자신에게 돌아와야 마땅한 몫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희망원은 다른 시설보다는 우선순위가 좀 떨어지는 사건으로 분류됐고, 잦은 대구 출장에는 ‘없는 살림에 이렇게까지 가야 하나’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지난 11일은 희망원 거주인 이아무개씨의 폭행치사 등 2개 혐의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지는 날이었다. 이씨는 동료 생활인들에 대한 폭행치사와 폭행 및 상해 등 3개 혐의로 기소됐다. 이씨는 2010년에 같은 방에서 생활하던 A씨 어깨를 밀어 급성경막하출혈을 일으켰고 결국 그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이유로 폭행치사 혐의를 받았다. 이밖에도 또 다른 생활인 B씨에게 배식을 하다 뜨거운 국물을 흘렸다며 국자로 머리를 쳐 상해를 입힌 혐의와 C씨가 코를 심하게 곤다며 발로 머리를 찬 폭행 혐의도 받고 있다.

이씨는 오른쪽 다리가 절단된 장애인이다. 그러나 그는 희망원에 있는 장애인 거주시설 ‘글라라의 집’ 1호실의 ‘호실장'이었다. 직원 부족으로 발생하는 돌봄의 공백을, 희망원은 ’덜 장애인‘인 호실장들에게 담당시켰다. 고령의 나이(사건 당시 이씨는 65세)에 호실장의 업무까지 담당해야 했던 이씨의 스트레스는 A씨와의 실랑이로 이어졌다. 역시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 위해 이씨는 배식 업무에 참여해야 했고, B씨와 갈등이 빚어졌다. 새벽 5시로 정해진 희망원 기상시간을 고려한다면, 코를 심하게 골았다는 C씨와의 갈등도 이해가 간다.

재판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진짜 범인’은 쏙 빠진 채 ‘어떤 생활인이 더 나빴나’를 겨루는 듯한 법정 공방이 견디기 어려웠다. 이씨는 희망원에 들어오기 전에는 범죄 경력이 전혀 없었다. 그가 희망원에 들어온 1988년 이후, 그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겼던 것일까. 그의 폭행의 배경에서 희망원이라는 시설의 존재를 지울 수 있나.

검찰은 이씨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 역시 모든 혐의에 이씨가 ‘유죄'라고 판단했다. 판사는 이씨에게 2년형을 선고했다. 나는 마음이 무너지는데, 정작 이 씨는 담담했다. 1988년에 희망원에 입소해 시설에서 이미 30년을 살아온 그에게는 2년 더 유예된 자유가 그리 큰 형벌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일까.

선고가 끝나고, 이씨는 휠체어를 탄 채 피고인 대기실로 돌아갔다.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배심원과 시민들은 기념촬영을 위해 재판정에 남았다. 재판정을 나서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희망원 ‘식구’가 징역 2년형을 받은 그 자리에, 희망원은 없었다. A씨의 죽음에, 그리고 이 씨에게 붙여진 ‘살인자’ 딱지에 분명 책임이 있는 희망원은, 그 자리에 없었다. 나는 그날, 그 재판정에서 시설의 민낯을 봤다.

▲ 최한별 비마이너 기자
▲ 최한별 비마이너 기자
시설 문제는 얼마나 잔인한 일이 일어났는가로 판가름 나서는 안 된다. 가난해서, 장애인이어서, 혼자 살아갈 여건이 되지 않아서 시설로 몰리는 사람들이 있다. 살아남기 위해 의식주와 자유를 맞바꿔야 하는 사람들이다. ‘탈시설’은 바로 이 문제를 사회에 제기하는 언어다. 시설 문제가 ‘불행 배틀’이 되는 순간, 우리는 탈시설 운동의 본질을 잃고 만다.

이씨가 항소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이번 항소심에서는 희망원이 장소적 배경으로만 축소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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