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꿈은 문재인의 미래가 될까.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 시절 만들어진 국가미래 전략보고서인 ‘비전 2030’을 계승·발전해서 ‘국가비전 2050(가칭)’을 만들 계획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비전2030을 작성하는데 참여했던 변양균 전 장관의 인맥들이 속속 정권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동연 아주대 총장이 경제부총리에 내정된 것이 대표적이다.

이름도 내용도 ‘문재인식’ 정책으로 크게 달라지겠지만,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국가개혁 과제를 어떤 방향으로 계승·발전할 지 주목되는 이유다. 그렇다면 국가비전 2030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까.

노무현의 꿈, 대한민국의 미래

좁게 살펴보면 비전2030은 2006년 8월에 발표된 ‘함께 가는 희망한국-비전2030’이라는 책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넓게 보면 참여정부가 내세웠던 동반성장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장기 국가계획을 지칭하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제로 △저출산·고령화 △양극화 △저성장 △세계화 등을 꼽았다. 이는 10년 후 현재 대한민국이 정확히 직면하고 있는 과제이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바라봤던 10년 전보다 훨씬 악화된 문제들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 2007년1월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특별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연합뉴스
▲ 2007년1월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특별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연합뉴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무현 정부의 장기 플랜은 복지를 확대하면서 동시에 분배문제를 경제로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성장과 분배, 경제와 복지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내고 ‘동반성장’을 이끌겠다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고민이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의 하나로 장기 국가 발전 플랜을 내세운 것이 국가비전2030이다.

과거 정부에서 내세웠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짧은 기간동안 경제 성장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세웠던 것과 달리 비전 2030은 한 세대 동안 한국 사회가 추구해야 할 경제와 복지의 목표,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정운영의 목표지점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비전2030에서 내건 50대 핵심과제를 살펴보면 △국민·직역연금 개혁 △비정규직 대책 △부동산 가격 안정화 △사법제도 개혁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 등 구체적인 과제들과 분야 별 주요 투자계획이 나온다.

국가비전 2030에서 빠진 것은 북한과의 관계에서의 방향 설정이다. 국가장기비전을 수립하는 데에 있어 최대의 변수이긴 하지만,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너무 많고 정확한 예측이 어려워 책임있는 통일 관련 비전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차원에서다.

좌우에서 쏟아진 비판, 폐기된 비전

“‘좌파정부’, ‘분배정부’라고 비난만 잔뜩 받았지, 과감한 분배 정책을 쓰지 못했다. 예산을 더 주고 싶었지만 관련 부처에서 사업을 빨리 빨리 만들어오지 않았다. 해마다 목표치를 주고 공무원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무조건 사업을 만들어오라고 했어야 했다. 

(…)지금 당장은 하지 못하더라도 장기 계획은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뒤늦게 ‘국가비전 2030’을 만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정책구상이 아니라 성장과 복지를 함께 이루기 위한 장기국가재정계획이었다.”(노무현재단, 2014)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밝힌 국가비전2030 구상 계기다. 의욕만큼 성과는 좋지 않았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이후를 생각하며 국가비전 2030을 세웠을 때는 이미 임기가 1년이 겨우 남았을 시기였다.

국가비전2030이 발표됐을 당시 국민적 공감대, 특히 정책을 지지해줄 소위 ‘편’이 없었다는 점도 당시 평가절하된 가장 큰 이유다. 보수 진영으로부터는 주로 분배를 강조한 ‘좌파’적인 정책비전이라는 이유로, 진보 진영으로부터는 재원마련 방안 부족과 세계화 전략에 포함된 한미FTA 같은 시장개방정책을 이유로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임기 초반부터 민주노총 철도파업과 전교조파업 등을 거치며 지지기반이 될 수 있었던 진보사회진영과 정부 간 거리가 멀어진 점도 국민의 공감대를 얻지 못한 이유로 꼽힌다. 사회각계각층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하지 못하고 관료집단을 통해 덜컥 나온 국가비전이 국민의 시각에서 공감을 얻기는 쉽지 않다.

양재진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비전2030의 입안과정 분석과 재조명’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권위주의 사회가 아닌 민주사회의 전략적 기획과정에서는 반드시 이해관계자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는 노력이 합리적인 정책설계만큼이나 중요하다”며 “입안과정에서부터 핵심 이해관계자들이 소통하고 정권 초에 국민에게 비전이 제시되고 핵심정책들이 시행돼 성과를 보여줬다면 비전2030은 여당의 정책프레임으로, 또 정권이 바뀌어도 정치적 생명력을 갖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설계도로 크게 기여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내용적 차원에서 재정계획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국가비전2030의 작성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진 김용익 전 민주연구원장(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도 지난 2011년 한 토론회 발제문을 통해 국가비전 2030에 대한 문제점으로 “재원조달 방안이 모호하고 참여정부 임기 동안의 재정 소요를 작게 잡은 것이 비전 2030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린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장은 통화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다음 대통령도 이어받아 할 수 있는 장기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했다. 정부 말기였는데 다음 정부 재정 계획까지 구체적으로 아우르는 장기계획을 세우면 이상하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문재인의 과제, 노무현의 미래일까

참여정부 5년의 실책으로 꼽히는 지점들은 비정규직 확대로 이어진 노동의 유연화 정책, 한미FTA 등 통상 협상 확대 등이다. 재벌 개혁에도 비교적 소홀했다는 비판도 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통화에서 “노무현정부는 지나치게 재벌들의 선의에 의지했고 국제 자본의 무시무시한 힘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측면이 있었다. 재벌기업들에 힘을 주고 국가를 개방하면 이를 통한 (경제에 미치는) 순효과가 클 것으로 예측했다”고 평가했다.

정태인 소장도 “노무현 정부 당시 비정규직법은 굉장히 잘못 만들어졌다”며 “(법 제정을 통해 비정규직 확대로 이어지는) 입구를 막아야 하는데 출구에서조차 정규직화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이 남긴 과제를 해결하고 한층 더 발전한 국가비전을 보여줄 수 있을까. 출범한 지 열흘 정도 지난 현재로서는 그의 여러 행보를 통해 노무현의 한계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을 뿐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 지난 20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8주기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노무현 재단
▲ 지난 20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8주기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노무현 재단
한 가지 상징적인 건, 인천국제공항의 정규직화 지침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내린 것이다. 이는 노무현 정부 당시 비판을 받았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보로 풀이된다. 또한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을 통해, 질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이를 기반으로 국민들의 소득을 끌어올려 소득주도형 성장을 이루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이는 노무현 정부와는 차별된 경제 해법이다.

오건호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는 일자리에 대해 양적으로 접근을 했다면 문재인 정부 기조는 질좋은 안정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방향으로 보인다”면서도 “공공부문은 개선되겠지만 결국 일자리의 총량은 민간 부문에서 만들어진다. 공공부문 일자리 정책이 민간시장의 일자리를 견인하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 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정태인 소장도 “노무현 정부는 양극화를 막지 못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기조는, 복지 이전에 시장에서 먼저 분배가 돼야 성장 한다는 것이다. 시장에서의 재분배와 복지정책을 통해 전체적인 소비를 늘리고 투자를 유도하는 전략”이라며 “노무현 정부 당시 수출을 통해 투자를 늘린다는 점과 정책기조가 달라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역시 재정계획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 등 공약이행에 들어갈 재정을 대부분 지출개혁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노무현 정부의 국가비전 2030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는 임기 초반부터 국민들과 국가비전에 대해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합의에 이른 국가비전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증세라는 해법이 필요하다는 점도 충분히 공론화 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가개혁과제 추진을 위해 여러 사회계층과의 소통 문제도 관건이다. 오 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앞장서서 돌격하는 스타일이었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한데 모아서 가는 스타일”이라며 “노무현 정부에서는 시민사회와의 협치가 쉽지 않았지만 문재인 대통령과는 협치가 잘 이뤄질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현재 청와대 인선을 보면 자신의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국정운영 동력을 가지고 가겠다는 모습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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