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과는 언론계에 없었다.

SBS는 지난 2일 “차기 정권과 거래? 인양지연 의혹 조사” 리포트 보도 진상규명을 위해 언론사 내부 시스템을 외부인사(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에 공개했다. 사측은 조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SBS노동조합은 그렇게 만든 진상조사보고서를 외부에 공개했다. 초고에서부터 최종보도까지 데스킹 과정을 거치며 어떻게 왜곡됐는지 볼 수 있었다. 그간 자신들의 잘못된 보도에 적극적으로, 구체적으로 사과하는 언론은 드물었다. 내부의 민낯을 모두 공개하기로 한 노조 역시 비판을 감수했다. 23일 오전, SBS를 찾아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장을 만났다.

윤창현 본부장은 “SBS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이번 한 두 사건만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며 “켜켜이 쌓여온 나이테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이야기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윤 본부장은 “JTBC가 태블릿PC를 보도하는 그날도 SBS는 박근혜가 국회에서 개헌안 던진 걸 열 꼭지 넘게 보도했다”며 “이후 시장의 평가·국민의 평가가 끝났고, 화들짝 놀라 방향전환을 했다”고 말했다. SBS는 방송에서 자사보도에 사과했고, 김성준 앵커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당시 인사개편 등의 조치를 “일종의 급변침”이라고 표현했다.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태블릿PC 보도 직후인 지난해 10월28일 오후 SBS 목동사옥 1층에서 열린 정치권력과 경영진의 보도개입 중단 및 공정방송촉구 조합원 결의대회에서 윤창현 본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태블릿PC 보도 직후인 지난해 10월28일 오후 SBS 목동사옥 1층에서 열린 정치권력과 경영진의 보도개입 중단 및 공정방송촉구 조합원 결의대회에서 윤창현 본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그는 “저쪽으로 가다가 돌아보니 ‘어? 이 길이 아니네’해서 방향전환을 한 것인데, 이는 비상식적이었다”며 “태블릿PC보도 이후 SBS의 보도를 보면 취재가 전혀 안 돼 있는 상황에서 찌라시 수준의 기사가 나갔고, (게이트 이전 보도에 대한) 원죄가 너무 크니까 조직 내에서 누구도 제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SBS는 특검이 시작되며 취재내용이 채워졌고, 블랙리스트 원본을 입수해 블랙리스트 보도를 주도했다.

긍정적인 변화였지만 부작용은 남았다. 윤 본부장은 “이 과정에서 보도책임자들에게 ‘위축효과’가 나타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보도책임자들이 기자들에게 취재가 부족하다고 문제제기 하면 ‘아직 박근혜 정권에 미련이 남은 거 아니냐’는 시선이 작동했다는 뜻이다. 윤 본부장은 “노동조합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문제제기 했던 것은 ‘우편향 돼있으니 왼쪽으로 꺾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저널리즘 원칙에 대한 것이었다”며 “시청자들을 잡아야 하는 부담이 존재했고, 그 보도(세월호-문재인 거래설)는 이런 연장선에서 발생한 사고”고 지적했다.

윤 본부장은 “과거를 봐도 4대강 사업을 비판했던 박수택 기자를 논설위원실에 격리시키는 등 저널리즘(원칙을 지키는) 기자들을 표 안 나게 쫓아냈고, 최금락·하금열 등 쫓아냈던 사람들은 다 청와대로 가는 문화가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졌다”며 “지난 9년간 후배들이 러프한 소스를 가지고 정제해 기사를 날카롭게 벼리는 능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알고싶다’로 대변되는 PD저널리즘만 일부 남고 기자들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은 실제 대부분 사라졌다. 기자들에겐 심층취재를 통해 성장할 기회와 공간을 잃은 셈이었다.

SBS는 이번사태를 계기로 지난 18일 보도본부장-보도국장을 기존 김성준-정승민 체제에서 장현규-최원석으로 교체했다. 이에 SBS본부는 성명을 통해 “신임 장현규 보도본부장과 최원석 보도국장 모두 비서팀 출신”이라며 “보도본부 내에서는 ‘또’ 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고 전하며 “특히 근본적 조직 혁신을 추진했던 S-TF발 개혁의 좌초, 최순실 게이트와 5.2 세월호 관련 보도로 SBS 위상을 추락시킨 참사의 중요한 배경이 인사 실패였던 점을 감안하면 보도본부 구성원들의 우려는 매우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 지난 1월25 언론노조가 최순실이 임명한 김성우 전 홍보수석의 SBS 보도농단 의혹에 대해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 1월25 언론노조가 최순실이 임명한 김성우 전 홍보수석의 SBS 보도농단 의혹에 대해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윤 본부장은 “대주주가 소유-경영 분리를 목적으로 지주회사를 만들었지만 사실은 회사 인사를 좌지우지 하고 있고, 실제 경영을 하고 있다”며 “한번이라도 확인해 본 사람을 쓰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이번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 SBS본부는 “조합은 신임 보도본부장이 보도국 재직 시 지속적으로 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고, 보도 자율성 확보에 대한 소신을 피력해 왔다는 점과 최근 1년 사이 3차례에 걸친 수뇌부 인사와 조직개편으로 보도본부가 불안정한 상황인 점 등을 고려하고자 한다”고 이번 인사를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SBS본부는 얼마 전 조합원·조합원 가족과 함께 세월호 미수습자 수색 작업이 진행 중인 목포신항과 광주로 역사순례를 다녀왔다. 윤 본부장은 “5·18, 세월호 문제를 말은 하지만 현장에서 그 분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직접 보거나 체험할 기회가 별로 없으니, 이 시대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이 공짜로 얻어진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두 달 전부터 계획한 일이지만 시점상 성찰과 다짐의 의미가 부여됐다.

“세월호 가족대책위에 우리가 두 가지 큰 빚을 졌다고 말했어요. 언론이 똑바로 했다면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렸을 텐데, 또 하나는 그럼에도 그분들이 쓰러지지 않아서 온 국민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했죠. 5·18 때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은 모조리 사표를 내고 나갔지만 수도권 언론은 전부 계엄사령부 얘기를 받아썼잖아요. 세월호 때도 똑같았죠. (가족들에게 집회) 그만하라고 하는데 언론들이 앞장섰고, 배후가 어쩌니, 얼마나 잔인하게 굴었나요.”

보도참사를 수습하고 보도공정성을 확보하는 것만큼 중요한 SBS노조의 과제는 지배구조 개선이다. SBS지주회사 SBS미디어홀딩스(대표이사 윤석민·이웅모)는 SBS 지분의 약 37%를 갖고 있다. SBS 방송콘텐츠 판권은 지주회사 SBS미디어홀딩스의 SBS콘텐츠허브와 SBS플러스 등에 있다. 판매수익이 자회사로 가는 구조로 두 회사는 전년대비 30%가까운 영업이익을 달성했지만 SBS는 지난해 약 90억원의 적자를 냈다. 콘텐츠는 SBS가 만들지만 수익은 자회사가 가져가는 기형적 구조다.

윤 본부장은 “MBC·KBS도 광고시장이 줄어들고, CJ·SKT 등의 진입으로 콘텐츠 제작경쟁은 치열해지는 환경에서 수익성이 줄어들면 콘텐츠 제작기반이 약화된다”며 “공공성의 책무가 콘텐츠를 통해 수행되는데 수익기반이 약화되면 이를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건이 악화되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MBC·KBS·YTN 등은 (권력이) 직접 장악하니까 무식하게 통제됐지만 우리는 교묘하게 장악돼왔다”며 “대주주의 목줄을 쥐고 떡고물을 던져가면서 소위 ‘알아서 기도록’ 컨트롤됐다”고 주장했다.

▲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장이 지난 3월24일 서울 목동 SBS 사옥에서 SBS 미디어홀딩스 지주회사 체제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SBS본부
▲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장이 지난 3월24일 서울 목동 SBS 사옥에서 SBS 미디어홀딩스 지주회사 체제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SBS본부

대주주의 전횡문제는 SBS를 비롯한 민영방송의 개혁과제다. 윤 본부장은 “가장 큰 문제는 민영방송 사주들이 지난 ‘이명박근혜 정권’ 언론장악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온 것”이라며 “미디어법으로 방송생태계가 망가지는 걸 수도 없이 얘기하며 구성원들은 피터지게 싸웠고, 우려가 지금 현실로 나타나고 있지만 당시 민방사주들은 막판에 찬성해주면서 떡고물을 받아먹었다”고 지적했다.

윤 본부장은 “민방 사업자를 심사할 때도 공적 책무를 건강하게 수행할 자격이 되는지 등을 근본적으로 봐야한다”고 강조했으며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대주주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SBS는 올해 방송사업자 재허가 심사를 받는다. 윤 본부장은 “방송허가를 받는 것도 중요한 문제지만 SBS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가 많이 실추됐는데 이를 근본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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