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팀이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합병비율이 삼성물산 주주가치를 훼손했다는 분석자료를 다수 제출한 가운데 삼성 측은 경제·경영학 지식을 총동원해 특검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윤아무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프록시팀장은 24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삼성그룹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제17회 공판 증인으로 출석했다.

윤 팀장은 2015년 7월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의뢰로 ‘2015년 상장회사 의안분석 보고서’를 작성해 “주주가치 및 주주권익 훼손이 우려된다”며 국민연금에 삼성물산 합병안 반대 의견을 권고했다. 특검은 해당 보고서의 분석 요지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공소장에 기재했다.

윤 팀장은 해당 보고서에서 삼성물산 합병안에 대해 “이번 합병으로 지배주주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 지분을 2015년 6월22일 종가 기준 7조6557억 원에 상당하는 4.06%를 간접적으로 확보하게 돼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높이게 된다”고 분석했다.

윤 팀장은 이어 “양사 경영진이 합병 비율을 결정한 시점이나 합병가액을 결정한 것에 있어 모든 주주의 이익을 공정하게 고려했는지 합리적 의심이 제기된다”며 “이는 합병 목적이 사업시너지 효과를 제고하기 위한 전략적 측면보다 경영권 승계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합병 반대를 권고한 판단 근거에 대해 윤 팀장은 ‘이사회의 충실 의무’를 일관되게 지적했다. 그는 ”삼성물산 이사들은 회사 이익과 주주의 이익을 위해 합병에서 삼성물산이 적정 가치로 평가받을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면서 ‘레브론(Revlon) 원칙’을 언급했다. 미국 델라웨어주 대법원은 기업 매각 시 적대적 M&A인지 우호적 M&A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매각 대상 회사의 이사들은 회사의 가치를 최대한 높게 가져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레브론 기준을 확인한 바 있다.

▲ 서울 서초구 삼성물산 사옥 모습. ⓒ 연합뉴스
▲ 서울 서초구 삼성물산 사옥 모습. ⓒ 연합뉴스
특검은 윤 팀장의 진술에 대해 “특정 증권사의 리서치 자료를 생각하면, 예를 들어 삼성생명의 돈을 받아 자산 운용을 할 가능성이 있고 업계에서는 삼성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면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독립돼 있기에 삼성물산 합병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고 강조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합병은 이재용 부회장이 대통령에게 뇌물을 공여한 대가로 청탁한 삼성그룹 현안으로 지목되고 있다. 윤 팀장의 진술은 삼성물산 대주주인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결정의 적절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근거가 된다. 특검은 국민연금, 보건복지부 등이 대통령 및 청와대의 지시로 삼성물산 합병을 지원했다고 파악하고 있다.

‘기업 운영 윤리’ 논의 없이 계산기만 두드리는 삼성 측 변호인

하지만 삼성 측 법률대리인 이현철 변호사(법무법인 기현)는 윤 팀장 보고서의 신뢰성을 공격하고 나섰다. 이 변호사는 “증인은 보고서를 작성한 팀의 팀장인데 기업 평가 실무를 해본 경험이 없다. 팀원인 김아무개 회계사는 2년 가량의 경력으로 실제 기업 실사 실무를 담당한 경력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삼성 측은 보고서 분석 방법의 문제점을 세부적으로 반박하는데 집중했다.

이 변호사는 “기업의 본질적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이론·실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게 DCF”라며 “보통 5년 간의 미래현금 흐름을 추정하는데 회사 사업계획이나 전망, 매출액, 원가 등을 추정해야 한다. 이를 위한 자료가 프록시팀에 있었느냐”고 반문했다.

윤 팀장이 적용한 ‘EV/EBITDA(기업 내재가치와 기업가치를 비교하는 투자지표)’ 기업 가치 평가 방식이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삼성물산 및 제일모직 기업가치 산출 방식에 오류가 있으니 “1(제일모직):0.35(삼성물산) 합병비율이 삼성물산 주주 가치를 훼손한다”는 결론도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윤 팀장은 DCF에 대해 “추정이 많이 들어간다. 또 기업 내부 자료에 접근 가능해야 정확한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고 알고 있다”며 “그런 정보에 접근이 어려웠다. 최대한 추정을 안하는 방법을 택했다”고 반박했다.

삼성 측은 ‘레브론 원칙’에 대해서도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게 아니라 회사를 매각하는 상황에서 주주가 매각 대금을 받고 회사를 떠나는 경우 예외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라면서 “합병에 대입하면, 다 레브론 원칙이 적용되는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윤 팀장이 2014년 영업이익으로 삼성물산 기업가치를 평가한 것에 대해서도 “2013년 삼성물산이 호주에서 6조5천여 억 원 수준의 굉장히 큰 사업을 수주했다”면서 “(이 때문에) 영업이익이 그 전년도와 비교해도 상당히 올랐고 2015년 1분기와 비교해도 상당히 높다. 그 부분이 왜 이리 높은지, 2014년 영업이익이 정상적인 것인지 검토했느냐”고 반박했다.

이 밖에도 삼성 측은 “(기업 가치 산출 시) 비지배지분을 공제했느냐” “(차용한 데이터가) 제대로 된 데이터인지 아닌지, 산정 방식은 제대로 된 건지 전문가라면 지적할 수 있는데 했느냐”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합병 시너지 효과 부정하는 이유로 계열사 간 협업을 드는데, 계열사 간 협업에도 비용, 리스크가 있고, (합병으로 인한) 내재화의 장점이 있다” 등의 반론을 제기했다.

삼성 측은 이를 위해 신현한 연세대 경영학 교수 의견서, ‘회사법상 비상장 주식 평가 쟁점과 대안’ 제목의 논문, 딜로이트 안진 및 삼정 KPMG 회계법인 분석보고서 등을 제시했다. 삼성 측은 삼성물산 주가 책정 구조를 도표화 한 ‘주문/호가 도표’, 국민연금 및 일반주주 삼성물산 주식매도 흐름 도표 등을 작성해 제시했다.

삼성 “보고서 작성자 전문성 의심된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다룬 상법 382조 3항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특검팀 박주성 검사가 기업 ‘매각’과 관련된 ‘레브론 원칙’을 기업 ‘합병’에 적용할 수 없다는 삼성 측 주장에 대해 거론한 법 조항이다.

▲ 최순실씨 측에 400억 원대 뇌물을 건네거나 약속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월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최순실씨 측에 400억 원대 뇌물을 건네거나 약속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월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 팀장은 보고서에 “이런(레브론) 원칙과 정신에 입각해 양사 합병 결정 이후, 어떤 원칙에 의해 매수가격을 정하는게 좋을 지에 대해 고차하는 것”이라며 “미국법 적용 가능성 여부나 이와 관련된 이사회 법리논쟁이 아님을 밝힌다”고 적은 바 있다.

박 검사는 “우리나라 상법 제382조 이사들 충실의무에 따라 이번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점은 없는지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 가치 산정 기준이 DCF냐 EV/EVITDA냐’ 하는 문제와 관련해 박 검사는 “삼성에버랜드(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관련 재판) 1심 판결에서는 전문가 증인의 신뢰성을 문제 삼아 ‘DCF 방법’을 배척한 사례가 있다”며 “‘DCF 평가 방법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DCF는 이론적 논란이 있고 기업 가치가 제대로 승인되지 못하고 있다’고 기재돼 있다”고 밝혔다.

특검은 “삼성 측이 제시한 ‘1:0.35’ 비율은 피고인 이재용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비율이었고, 삼성물산의 자산가치를 반영하지 못한 비율이었다”고 지적했다. 또 “제일모직 쪽의 이득을 고려하더라도 국민연금은 1300~1500억 원 손실이 발생한다고 인식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이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에서 합병 찬성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특검 측은 “7조6557억 원은 이재용 피고인이 특검 제1회 조사 시 인정한 개인 재산과 거의 맞먹는 금액”이라며 “본인 돈으로 7조 가량을 투입해 삼성 전자 지분을 확보하는게 당연함에도 아무 투자 자금 없이 그에 상응하는 의결권을 확보했다는 것을 객관적 위치에 있는 증인이 진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양사 합병을 통해 삼성전자 지분 4.06%(7조6557억 원 상당)을 확보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의 지분확보를 통한 계열사 지배권 강화가 삼성 측이 ‘불합리한’ 합병을 밀어붙인 배경으로 특정하고 있다. 

삼성 측은 “삼성물산이 이미 지배주주 지배력하에 있었다면 삼성물산이 보유했던 삼성전자 4.06% 지분도 사실상 지배하에 있었다는 점에서 (합병 전 후는) 차이가 없다”며 “이를 지배권 강화로 몰고가는 건 주관적 편견”이라고 주장했다.

삼성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 프록시팀이 설령 이해관계가 없을지라도 균형잡힌 종합적 시각이 부족하고 전문성 부족했다”며 “평가방법을 적용하는데 있어서도 여러가지 중대한 결함이 있어 합병이 부당하다고 입증하는 자료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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