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5대 개혁과제를 제시하고 지난달 31일까지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1년 치 세비(국회의원이 지급받는 수당·활동비)를 반납하겠다고 약속했던 옛 새누리당 의원들.

약속 기한 하루 전날인 지난달 30일이 돼서야 ‘꼼수 발의’로 약속을 이행했다고 주장한 자유한국당 의원 26명과 달리 바른정당으로 옮긴 의원 6명은 31일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바른정당 김무성·정병국·오신환·유의동·홍철호·지상욱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부분에 대해선 각 의원이 자신의 환경에 맞는 방법으로 그 책임을 다하겠다”고만 했다. 그런데 약속대로 즉각 세비 반납을 하겠다는 의원은 없었다.

▲ 바른정당 의원들이 지난달 31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4·13총선 때 내건 5대 개혁과제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왼쪽부터 오신환·유의동·정병국·김무성·홍철호·지상욱 의원. 사진=민중의소리
▲ 바른정당 의원들이 지난달 31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4·13총선 때 내건 5대 개혁과제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왼쪽부터 오신환·유의동·정병국·김무성·홍철호·지상욱 의원. 사진=민중의소리
굳이 1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 없는 ‘법안 발의’ 자체를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약속 이행’이라고 주장했지만, 바른정당 의원들은 지키지 못할 포퓰리즘 공약을 한 것에 대해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했다. 그러나 공약한 세비 반납에 대해선 “또 다른 포퓰리즘 논란”이라고 빠져나갔다. 결국 구체적으로 어떻게 책임을 지겠다고 명확한 입장을 밝힌 의원은 한 명도 없었다.

당선에 눈이 멀어 제대로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고 아무런 반성조차 없는 자유한국당 의원들보다 바른정당 의원들이 더 ‘책임 있는’ 입장 표명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년 전 ‘대한민국과의 계약’이 대국민 사과만으로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고 언론의 관심이 멀어지기만 기다린다면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하등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디어오늘은 6명의 바른정당 의원 측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를 물어봤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실망스러웠다. 어떤 식으로든 ‘세비 반납’ 계획을 언급한 의원은 유의동 의원 뿐이었다. 나머지 의원들은 세비 반납 형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하거나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했다.

▲ 지난해 4·13총선을 앞두고 김무성 옛 새누리당 대표 등 국회의원 후보 56명이 서약한 ‘대한민국과의 계약’ 전면광고.
▲ 지난해 4·13총선을 앞두고 김무성 옛 새누리당 대표 등 국회의원 후보 56명이 서약한 ‘대한민국과의 계약’ 전면광고.
5대 개혁과제 서명에 참여한 오신환 대변인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기자회견에선 세비 반납이라는 포퓰리즘적 공약을 한 것에 대해 당 정책 공약이었지만 깊이 들여다보지 못한 점을 사죄한 것”이라며 “향후 나머지 계획은 각 의원이 책임성 있게 개인의 상황이나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오 대변인 역시 “특별히 준비된 계획은 없다”고 했다.

정병국 의원 측은 일단은 정책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부터 살펴보겠다고 했다. 정 의원 측은 “5대 개혁과제 관련 발의된 법안이 통과되고 예산이 반영되게 노력하는 게 국회의원이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일”이라며 “그 외에도 법안에 더 필요한 부분이나 개선점을 찾는 정책토론회 등을 진행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김무성·홍철호·지상욱 의원은 세비 반납은커녕 정책적인 구상도 내놓은 게 없었다. 세 의원 측 모두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아 정해진 것이 없다’는 말뿐이었다.

그나마 유의동 의원 측만이 “(세비) 금원과 취지에 맞도록 (반납) 계획을 갖고 있다”면서 “구체적인 시행 내용과 방법은 추후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 의원 측은 지난 기자회견에서 명확히 세비 반납 계획을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해 “그날은 5대 개혁과제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것과 국회의원의 세비라는 돈을 걸고 국민에게 약속한 성숙하지 못한 모습에 대해 반성한 것”이라며 “언제까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고 한다면 이 반성과 이행이 서로 혼선되고 이슈가 제대로 전달 안 될 것 같아 의원 개별적 상황에 맞게 하겠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자유한국당 의원 26명과 바른정당 의원 6명은 지난해 3월15일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의 서명이 담긴 신문광고 ‘대한민국과의 계약’을 내고 “국민 여러분, 이 광고를 1년 동안 보관해 주세요”라고 공언했다.

이 광고에는 “서명일로부터 1년 후인 2017년 5월31일에도 5대 개혁과제가 이행되지 않을 경우, 1년 치 세비를 국가에 기부 형태로 반납할 것임을 엄숙히 서약한다”고 적혀 있다.

이들이 내건 5대 과제는 △갑을개혁 △일자리규제개혁 △청년독립 △4050자유학기제 △마더센터이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지난 1년간 하도급거래공정화법(갑을개혁), 규제개혁특별법·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일자리규제개혁), 청년기본법안(청년독립), 고용정책기본법 개정안(4050자유학기제),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개정안(마더센터)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마더센터 관련법은 지난달 19일에, 4050자유학기제 관련법은 지난달 30일 자유한국당 의원 26명이 ‘20대 총선 5대 개혁과제 대국민 계약 이행’ 보도자료를 내기 직전에 국회에 접수돼 ‘꼼수 발의’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법안들 모두 해당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어서 이들이 공약한 개혁과제가 제대로 ‘이행’됐다고 보는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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